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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리뮤 Oct 02. 2019

에슐리를 대하는 우리 부부의 자세

달라, 달라, 너무 달라

 "오늘 저녁 외식할까?" 남편이 물었다. 


"아니, 우리 돈 아껴야지. 집에서 대충 먹자," 나는 마음에도 없는 소릴했다. 나는 혹시나 남편이 바로 외식을 포기할까봐 긴장했다. 


"저녁으로 뭐 먹을게 있나?"


"음... 딱히 특별한건 없지만...," 이 정도 대답이면 자연스럽게 외식쪽으로 결정이 날 것이라 예상했다.

 

내 예상대로 남편은 '오늘만'이란 단서를 달고 외식을 하자고 졸랐고, 나는 마지못해 '어쩔 수 없네'라며 응했다. 남편 행동의 예측 가능성이 날로 높아지고 있다. 이 정도면 당장 알파고랑 붙어도 승산이 있을 것 같다. 가끔은 남편의 수가 너무 일찌감치 보여서 그가 입도 떼기 전에 화가 날때가 있다. 남편이 술 생각을 할때면, 뒷통수만 봐도 느껴지는 이상야릇한 능력이 생겨버렸다.

 

 우리는 퇴근 후, "뭐 먹을까" "뭐 먹을래" "뭐 먹지?"를 사이좋게 주거니받거니하다가 '에슐리'를 가기로 했다.

 "아, 에슐리는 한끼 식사로 너무 비싼데...,"라고 했더니 "아, 그럼 안되겠네. 아쉽다. 그럼 나 혼자 먹고 올게."라는 남편. 나는 당황하지 않고 "그래, 혼자 많이 먹고 와. 난 집에서 대충 먹을께. 아참, 내가 말했던가? 자기랑 안 놀거라고?"라고 협박했다. 남편은 껄껄거리더니 "아잉, 나랑 놀아줘야지. 오늘 저녁 에슐리 고고닷!!"하고 말했다. 이 역시 내 예상범주의 대화 내용으로 진즉에 에슐리에서 와플 구워먹을 생각에 군침을 흘리고 있었다.


에슐리에 도착해서 자리를 잡으면 항상 내가 먼저 음식을 담아온다. 우리 두 사람 사이의 암묵적 합의인데, 천천히 먹는 내가 먼저 다녀와야 식사 속도가 맞는다는 계산이다. 


나는 여러 종류의 피자와 스파게티를 기본 세팅을 깔고, 고기와 치킨 등 육류 몇 조각 그리고 까르보나라 떡볶이와 신메뉴 중 맛보고 싶은 것을 약간씩 담아온다. 에슐리를 갈때마다 항상 지난번과 다른 음식들을 먹어봐야지,하면서 막상 도착하면 지난번이랑 다를바없이 늘 먹던 것만 담게 된다. 그리고 여기에 오면 따듯한 아메리카노 한 잔을 꼭 마시는데 그 덕분에 오늘밤도 제시간에 잠들긴 글렀다.


 남편의 첫 접시도 나와 비슷하다. 지난번이랑 1도 다르지 않다는 면에서 비슷하다는 말이다. 그의 접시는 무조건 고기 반, 스시 반이다. 나는 스시를 무척 좋아하지만 부페에서 나오는 스시는 거의 먹지 않는다. 맛도 별로인데 포만감이 금방 오기 때문에 부페에서 기피하는 음식 중에 하나이다. 에슐리에 그렇게 많은 음식 종류가 있는데 첫 접시부터 우리 두 사람이 고른 메뉴에 교집합은... 놀랍게도 없다. 심지어 치킨도 서로 조리방식이 다른 치킨을 골라왔다. 남편은 튀김, 나는 구이.


 나의 두 번째 접시는 보통 샐러드다. 그 이유는 첫 접시에 대한 죄책감 때문이다. 그래도 초록잎 채소 몇개는 먹어주어야지 밤에 두 발 뻗고 잘 것 같은 기분이랄까. 샐러드를 반 정도 채운 다음에는 그날 첫 접시에 담았던 메뉴 중 마음에 들었던 것 몇개를 더 넣고, 아까 한 바퀴 돌때 공간이 없어서 못 담았던 메뉴를 조금 추가한다. 내가 에슐리에 온 본래 목적은 와플에 있기 때문에 두 번째 접시는 가볍게 담는다.


 남편의 두 번째 접시는 고기 70에 스시 20 그리고 다른 새로운 메뉴가 10이다. 거의 고기를 먹으러 에슐리에 온 사람이라고 봐도 무방하다. 그럴거면 에슐리 가격 만큼의 고기를 사다가 집에서 구워먹는게 더 경제적이고 만족감도 높았을테지만, 전부 맛볼 수는 없어도 '선택의 가능성'이 주는 유혹에 매번 넘어간다.


 보통 우리 부부는 두 접시를 비우면 그제야 대화를 한다. 그렇다고 아예 아무말 없이 먹기만 하는 것은 아니지만 "이거 맛있네" "이거 맛이 왜이러지?" "이 메뉴 먹어봤어?"이런게 대화라고 할 수 있는건지 모르겠다.


 본격적인 대화를 하기 전에 나는 기다리고 기다리던 와플을 가지러 간다. 와플 반죽을 와플기계에 붓고, 뚜껑을 닫고, 타이머를 누르고, 기다린다. 90초를 기다리면 노릇노릇하게 구워진 와플이 완성된다. 그러면 옆에 놓인 여러 종류의 토핑 중에서 초코시럽과 생크림을 적당히 담아 자리로 돌아간다. 사실 예전에는 여러 종류의 디저트로 세 번째 접시를 몽땅 채웠는데 와플이 생긴 이후로는 오롯이 와플만을 담아온다.  남편의 세 번째 접시는 조각 케이크 3 조각이 전부다. 항상 엄청 많이 먹을 것처럼 말해놓고 남편도 두 접시 이상은 못 먹는다.


여기서 놀라운 것은 마지막 접시까지 우리 두 사람이 고른 메뉴는 완전히 다르다는 점이다. 생각해보면 그래서 우리 부부가 에슐리에 자꾸 다시 오는지도 모르겠다. 식성이 워낙 극명하게 다르다보니 그나마 여기에 와야 서로 한 공간에서 각자 만족하는 식사를 할 수 있으니 말이다. 맵고, 짜고, 자극적인 맛을 좋아하는 남편과 느끼하고 담백하고 고소한 맛을 좋아하는 부인. 에슐리에서는 우리 부부도 서로 교집합이 될 수 있다!


좀 우스운 이야기지만 연애시절, 우리의 이 달라도 너무 다른 식성 때문에 헤어져야 하나 고민한 적도 있었다. (남편은 이 사실을 전혀 모른다) 내 인생 피자집에 데려가 정말 끝내주는 정통 이탈리안 피자를 사줬는데, '동네 피자맛'이라는 그의 평가에 '아, 이 사람과 살면 평생 내가 느끼는 감동을 공감 받지 못하겠구나!' 아찔해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정은 참 질기고 무서운 것이었다. 매사에 너무 다른 우리 두 사람이지만 그래도 무엇을 하든 생각나는 사람은 그이 뿐이었다.  취향이 맞는다라는 것은 분명 축복일게다. 하지만 아니라도 슬퍼하긴 이르다. 세상에는 '에슐리'와 같은 교집합의 세계도 있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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