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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리뮤 Apr 25. 2024

마흔의 첫 혼자여행 4

4. 뭐야? 혼자가 아니었어?

나는 마흔의 첫 혼자여행을 무사히 마치고 2살 딸과 남편이 기다리는 집으로 돌아왔다. 이 글을 쓰는 지금은 혼자여에서 돌아온 지 한 달이 되어가는 시점이다.


여행의 마지막날 엄청난 사건(?)이 있었기에 그날 이후로 한동안은 글을 쓸 수 없었다. 경황이 없었다는 게 더 정확한 표현일 듯하다.


이제와 밝히지만 사실 혼자여행을 떠나기 일주일 전... 나는 시험관 시술을 받았다.


첫째 시험관 준비를 할 때 5개의 난자가 수정에 성공했다. 그중 3개는 3일 배아 상태로 이식을 했고, 그중 하나가 잘 착상하여 오늘날의 우리 첫째 딸아이가 되었다. 2개 남은 배아는 며칠 더 키웠는데 둘 중에 딱 하나가 5일 배아가 되었다. 그 하나 남은 소중한 배아는 냉동을 해두기로 했다.


그리곤 임신부터 육아 그리고 일을 병행하며 그 존재를 까맣게 잊고 있었다. 정신을 차려보니 첫아이 임신시점으로부터 만 3년이 되어가고 있었고, 냉동보관 중이던 배아 만료일이 한 달 앞으로 다가왔다는 문자가 핸드폰에 찍혀있었다.


결혼 4년 만에 얻은 소중한 딸아이...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그렇게 사랑스러울 수가 없다며 매일 감탄하던 우리 부부는 종종 둘째에 대한 이야기를 하긴 했다.


첫째 아이가 너무 예쁘니, 자연스레 둘째 아이도 갖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현실의 문제를 떠올리면 마음먹기가 쉽지 않았다. 게다가 나의 지독한 다낭성증후군 때문에 자연임신을 기대하기 어렵기에 둘째를 원한다면 병원의 도움을 받아야 했다.


남편은 잘 다니던 대기업을 그만두고 자아 찾기(?) 및 육아대디로 거의 2년째 집에 있고, 내가 실질적인 가장의 노릇을 하고 있는데... 이 시기에 임신을 마음먹기란 더더욱 어려웠던 것이다.


그런데, 병원에서 동결배아 만료일을 알려주면서 연장을 원하면 미리 알려달라는 문자를 받았을 때 '아깝다'라는 생각이 가장 먼저 들었다.


정말 솔직한 심정으로 첫아이 준비 당시에 내가 쏟았던 노력(수많은 약을 복용하고, 매일 배에 자가주사를 하고, 병원 왔다 갔다 하며 마음 졸이던...)이 떠오르며 그 노력의 집약체(?)인 나의 동결배아가 이렇게 3년간 자기의 때를 기다리다 허무하게 폐기될 거란 생각을 하자 너무너무너무 아까웠다.


안돼에에에에.


그리고 이어서 '운명에 맡겨보자!'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차피 시험관 시술 확률이 100퍼센트도 아니고, 단 하나뿐인 배아이식은 더더욱 임신성공 확률이 낮으니 동결만료일이 지나기 전에 시험관 시술이 가능하며 그냥 한 번 해볼까? 했던 것이다.


나의 무모한 도전을 무슨 생각인지 남편도 응원했다. 지독한 딸바보인 남편도 말은 안 했지만 둘째 생각이 간절하긴 했나 보다.


그리고 어차피 남편의 소임(?)은 이미 3년 전에 끝났고... 앞으로의 모든 과정들은 내가 감당해야 하는 영역이라서 더 마음 푹 놓고 응원을 한 것일 수도 있다.


아무튼, 운명에 맡긴 시험관 시술 결과는...



놀랍게도 임신이었다.


부산여행을 떠날 때 마음 한편에는 이번에 임신이 되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지만, 시술 이후 며칠 꿀렁대던 배도 잠잠하고 컨디션은 말도 못 할 정도로 좋아지길래 '아 아닌가...'하고 체념하고 있었다.


그래도 혹시 모르니 여행 중에는 때에 맞춰 약을 복용하고, 자가주사를 놓고 나의 의무는 다했다.


혼자여행의 기류가 달라지기 시작한 것은 막 3박 4일 여정의 끝을 향하고 있을 때였다. 부산에 살고 있는 온라인 친구와 처음 만나 하루종일 실컷 걷고, 수다 떨고, 맛있음 음식을 먹고 저녁이 되어 헤어지려고 하는 시점부터 몸에 변화가 느껴졌다.


'어? 왜 이렇게 숨이 차지?'


평지를 잠깐 걷는데도 잠깐 주저앉아야 할 정도로 숨이 찼다. 심지어 친구에게 양해를 구하고 잠깐 쭈그리고 앉아서 호흡을 가다듬을 정도였다.


그때, 그날 아침 남편이 전화통화로 들려주었던 이야기가 스쳐 지나갔다.


평소 꿈을 잘 안 꾸는 남편이 그날 아침 일찍 전화로 신기한 꿈을 꿨다고 호들갑을 떨었다. 나는 숙소 침대에서 핸드폰으로 들려오는 남편의 수다를 들어주고 있었다. 너무 생생한 꿈이었다며 어떤 커다란 호랑이가 나와 딸이 걸어가는 주변을 계속해서 따라왔다는 것이다.


"와 그 완전 태몽스럽네!"

나는 신기하다며 맞장구쳤지만 내 몸상태로 봐서는 임신 가능성이 전혀 없을 것 같은데? 하고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만에 하나 임신이면 진짜 신기하긴 하겠다며...


그런데 그날 저녁 갑작스러운 신체변화를 느끼고는 그 꿈이 떠올라 혼자 소름이 돋았다.


지인분과 저녁 9시가 다 되어서 헤어지고 혼자 숙소에 남았을 때 수만 가지 생각이 머리에 스쳤다.

아침에 임신가능성이 없다고 단언했을 때만큼이나 강력하게 임신이란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혹시 몰라 사둔 임신테스트기를 지금 바로 써볼까, 아침까지 기다릴까 마음의 줄다리기를 하다가 아침까지 기다리기로 했다.


예전 경험상 흐릿한 두 줄 만큼 사람 애간장 태우는 것도 없었기 때문이다. 아침 소변이 가장 농도가 진하다고 하니... 그래 아침까지 기다려보자!




드디어 다음날 아침 눈을 뜨자마자 임신테스트기를 할 생각에 마음이 달떴다. 심호흡을 하고 차분하게 화장실로 가서 임신테스트기의 포장을 뜯고, 첫 소변을 테스트기 끝에 묻혔다.


소변이 테스트기 끝에 스며들며 타고 올라가는 게 보였다. 가장 먼저 대조선에 진하게 빨간색으로 물들었다. 뒤이어 검사선이 있는 쪽도 색이 변하더니 눈 깜박할 사이에 진한 줄이 생겼다.


실눈을 뜨고 여러 번 째려볼 필요도 없이 너무 확실하고 선명한 두 줄이었다!



내... 내가 또 임신이라고?

시험관 두 번 다 한방에 임신??!!

혼자여행인 줄 알았는데...

혼자가 아니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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