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아무래도 다시 글을 써야 할 것 같아. 네가 좀 필요해졌거든. 내 기분을 가장 잘 아는 게 아무래도 너다 보니... 내 이야기 이번에도 잘 들어줄 거지?
너도 알다시피... 오늘 유난히 우울했어. 그런데 신기한 건 그 깊은 우울감을 느끼면서도 그게 내 감정이 아니라는 생각에 더 당혹스러웠다는 거야.
누군가 억지로 나를 눌러놓은 기분. 나는 빠르게 생각했어.
입덧 때문인가. 아니면 하루종일 누워있다 보니 무기력해져서? 아니면 호르몬주사 부작용? 그것도 아니라면... 입덧약 부작용일 수도.
그 많은 이유 중 하나 일수도 아니면 그것들의 총체적 결과물일 수도 있다.
맘카페에 들어가 검색해 보니 내가 맞고 있는 주사 부작용이라는 말도 있었고, 입덧약 부작용이란 말도 있었다.
지난주에는 예고 없이 하혈을 하는 통에 눈물바다였다. 첫째 임신 때는 전혀 겪어본 적이 없던 일이라 변기통에 툭툭 떨어지는 붉은 핏방울을 바라보며 지금 한 생명이 내 몸 밖으로 흘러내려가는 건가? 아찔했다.
상황에 대한 판단을 해볼 새도 없이 눈물이 터져서 엉엉 울어버렸다. 남편은 그래도 차분하게 아직은 모른다며 얼른 병원에 가보자고 했다. 정신없는 상황들이 지나가고... 다행히도 아가는 정상발달 중이었고, 심장소리도 확인할 수 있었다.
다만, 유산의 위험 때문에 절대안정이 필요하다고 했다. 당장 내가 아니면 대체할 수 없는 수업들이 쌓여있는데 그것 또한 아찔했다.
그런데 내 마음속 누군가는 지금 이 상황을 기뻐하고 있었다. '드디어 너 쉴 수 있구나!'
번아웃이었는지도 모른다. 첫째가 태어나고 2개월 후에 강의 복귀를 했고... 육아와 일을 병행하며 쉼 없이 달렸다. 아기가 태어나고 얼마 지나지 않아 퇴사한 남편은 아직도 일을 하지 않고 있고, 사실상 내가 가장 노릇을 하고 남편이 육아를 담당하던 중이었다.
일 할 수 있음에 무한히 감사하다가도, 매번 반복되는 스트레스 상황들에 넌덜머리를 느끼고 있었다. 게다가 둘째를 임신하게 되고서는 매 수업이 끝날 때마다 "죽겠다" 싶을 정도로 힘이 들었다. 숨이 턱 끝까지 차며 죽음의 레이스를 하는 느낌이었다.
그런데 하혈을 하고 나서야 "내가 무리했나?" 싶은 생각이 들다니... 뭐가 잘못되어도 한참 잘못됐다. 쉬고 싶었지만 명분이 없었는데... 피를 보고 나니 나 스스로도 이젠 정말 쉴 수밖에 없잖아? 하고 백기를 든 거다.
쉬면 안 된다는 죄책감(?)과 책임감(?)에 괴로웠지만 단 일주일이라도 강제로 휴식을 취할 수 있다니 묘한 기쁨이 올라왔다.
나... 사실 그냥 다 놓고 싶어.
오늘 이유는 어찌 되었든 깊은 우울에 빠져들며 계속해서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다는 생각만 들었다.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버거워서 다음 주에 강의 복귀를 할 생각을 하면 숨이 막혀왔다. 어쩌다 이렇게 되었지?
입덧도 이렇게 괴로운 건 줄은 몰랐다. 첫째 아이 임신기간엔 정말 큰 어려움이 없었다. 쏟아지는 잠, 먹덧, 약간의 입덧... 물론 임신 막달의 괴로움은 아직도 생생하지만 대체적으로 양호했던 첫 임신기간의 기억이다.
그런데... 둘째는 입덧도 너무 빠르고, 너무 심하다. 심지어는 우리 예쁜 첫째가 안겨오는데 첫째 아이 목덜미에서 올라오는 달큼한 땀냄새에 미간이 찌푸려졌다. 잠깐이라도 그 냄새에 인상을 쓴 나 자신이 놀랍고, 죄책감이 들었다.
이제 겨우 7주 차에 접어들었는데... 남은 기간을 어떻게 버텨야 할지 모르겠다.
그냥 아이 케어나 일... 집안일 따위 모두 신경 쓸 필요 없는 외딴섬에 홀로 갇혀서 혼자 묵묵하게 시간과 싸우고 싶다는 생각이다.
지금 내가 느끼는 감정들이 진짜 내가 아님을 알기에... 시간이 지나고, 상황이 달라지면 또 내 감정도 달라질 것을 알기에... 그냥 어떻게 해서든 시간을 빨리 흐르게 하고 싶다.
지금은 무슨 용기로... 둘째를 낳고 싶다고 생각했나 모르겠지만 분명 미래의 나는 고마워하고 있을 것이다.
지금 이 구역감을, 이 우울감을, 이 무기력을, 이 깊은 어둠을 견뎌내고 있는 오늘의 나에게.
그래도, 나의 이 모든 괴로움이 유산의 고통보다는 훨씬 달 것이라 생각하며 버텨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