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달 만에 친정에 내려왔다. 남편과 딸아이 그리고 나까지 완전체가 함께 내려간 것은 거의 반년만이다. 이번 방문 목적은 명확했다. 어버이날 선물을 빙자한 나의 회복!
둘째 임신 9주 차 산모이자 온갖 입덧과 무기력으로 고생하던 나는... 엄마가 절실했다. 내가 건강할 때는 우리 엄마의 지나친(?) 애정이 부담스럽다며 배부른 소리를 하고 앉아있었지만... 아플 땐 역시나 엄마만 생각난다.
이번 방문을 통해 다시금 깨달았다. 엄마는 또 다른 말로 회복이라는 것을. 남편의 케어와 장단맞춤이 그냥 커피라면, 우리 엄마의 케어와 장단맞춤은 T.O.P라는 것을.
그 격의 차이를 뼈저리게 느낌과 동시에 내가 우리 딸에게 어떤 엄마이고 싶은지 다시 생각해보게 하는 며칠간이었다.
집에서 남편의 케어하에 골골거릴 때에는... 입덧과 컨디션 저하... 쏟아지는 졸음 외에도 내가 신경 써야 하는 것들이 많았다. 그다음 먹거리, 내가 지나간 자리에 너저분하게 어질러진 물건들, 딸아이가 여기저기 난장판 친 것들, 남편 눈치 등등등.
그런데, 친정에서는 그 무엇도 신경 쓰이지 않고 마음껏 응석 부리고 게으름 피울 수 있었다. 단지 심리적인 차이가 아니었다. 나는 이번에 우리 엄마가 어떻게 집안에 요술을 부리는지 똑똑히 보고 알게 되었다. 그전에는 마치 '공기'처럼 당연하게 느끼던 것들이 사실 한 사람의 위대한 '희생'의 결과물이었다는 것을.
우리 엄마는 24시간 레이더를 켜고 있었다. 이 레이더는 집안에 있는 모든 사람들의 동태와 기분의 미묘한 변화까지 아주 빠르고 정확하게 읽어내는 레이더였고, 특히나 자신의 딸과 손녀에게 일 순위로 맞춰져 있었다.
이 레이더는 상대가 스스로 무언가가 필요하다고 인지하기도 전에 미리 알람을 울려 엄마에게 사인을 보냈다. 맛있게 고구마 껍질을 까서 한입 베어 먹으면 어느샌가 내 오른손 옆으로 시원한 물이 한 잔 놓여있었고, 갑작스러운 입덧 증상으로 미간이 찌푸려질라치면 엄마와 이미 눈이 마주치고 있었다.
뜨신 밥, 뜨신 국, 뜨신 마사지, 뜨신 이불... 엄마가 제공하는 것은 그 무엇 하나 안 뜨신(?) 게 없었다.
그것뿐이랴. 모든 것들이 제공된 뒤에는 감쪽 같이 자취를 감추었다. 널브러져 있던 이불, 양말, 설거지거리 등은 엄마가 제공한 뜨신 무언가를 음미하고 즐기는 사이, 다시 엄마에 의해 제자리행이었다.
그러니까 엄마의 동선은 어느 것 하나 허투루 쓰이지 않았다. 모든 동작들이 유기적으로 집안을 정돈하고, 집안 식구들의 필요를 충족시키는 것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지난날 집에서의 내 모습을 떠올리니 한없이 부끄러웠다. 솔직히 고백하건대... 나는 내 머릿속 우선순위가 가정을 보살핌이 아니었다. 나는 어떻게 하면 내 개인의 자유와 가정생활의 밸런스를 유지할지에 더 관심을 기울였다. 설거지나 빨래도 내 자유시간을 확보하기 위해 종종 뒤로 밀리기도 했고, 특히 식사에 관해서는 배꼽시계가 울려야 그제야 아차, 싶은 순간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물론 나는 워킹맘이니까...라고 항변해보고 싶지만 그러기엔 우리 엄마는 투잡맘이다. 새벽부터 오후까지는 회사 청소를 하시고, 오후에 가끔씩은 아빠 농사를 도와주시거나 주말에도 농사일을 도우신다. 그 와중에 이런 요술을 집안에 부리고 계셨던 것!
'나'를 버려야 가능한 일이라는 것을 이번에서야 깨달았다. 나는 집에서 '나'를 놓지 않으려 아득바득 시간을 쥐어짜 내다보니 결국 집안 살림도... 내 시간도 애매하게 되어버린 게 아닌가 싶어 머쓱했다.
물론, 앞으로도 우리 엄마만큼의 희생은 할 수 없으리라 생각한다. 하지만 엄마가 나에게 준 이 뜨신 사랑과 희생을 나도 우리 딸에게 어느 정도는 물려주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나중에 우리 딸이 컸을 때 적어도 뜨신 밥은 뚝딱 차려줄 수 있도록 우선 요리부터 시작해 봐야지. 그리고 나도 내 동선에 마법을 조금씩 부려봐야겠다. 우리 딸, 우리 남편이 조금 더 행복해지는 방향으로 내 동선에 단 하나의 마법이라도 부려보기!
아직도 출산일까지... 남은 시간이 까마득하게만 느껴지지만 이렇게 종종 우리 엄마의 보살핌을 받으러 오면 그 시간들도 잘 견딜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