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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리뮤 Feb 05. 2020

"여보세요? 자기 울어?"

커피와 딩크족과 난임클리닉

에두아드 마네 <브랜디와 자두> (1877)


"여보세요? 자기 울어?"

 몇 초간 대답이 없자 남편이 물었다. 나는 카페에서 벽을 마주 보는 자리에 앉아 굵은 눈물을 소리 없이 흘려보냈다. 흔한 표현으로 나는 수도꼭지다. 틀면 나온다. 그렇지만 정말이지 울 생각은 없었다.


"병원 다녀왔어. 근처에 난임클리닉을 가보는 게 어떻겠냐고 추천하시더라"까지는 담담하게 말했는데 올해는 꼭 아이를 갖자고 결심했던 게 벌써 1년 전이라는 생각을 하자마자 눈물이 차올랐다.


최근에 남편에게 딩크족으로 사는 건 어떻게 생각해? 라든가 아이가 없는 것도 괜찮지 않아? 라며 은근히 아이를 갖지 않는 삶에 대해서 생각하고 있다는 뉘앙스를 풍겼다.


나는 이것들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스스로에게는 묻지 않았다. 나는 나를 속일 것이 뻔했다. 그런 삶도 나쁘지 않지. 내가 포기하지 않아도 되는 일들이 얼마나 많은데. 나는 지금의 삶이 더 좋아,라고.


이렇게 부지불식간에 공공장소에서 눈물을 흘릴 거였으면서. 


결혼 2년 차. 급할 건 없지만 정말 급하지 않나? 양가 부모님은 우리 부부가 결혼한 순간부터 기대하던 소식이고, 남편과 나도 대외적으로는 아이는 자연스럽게 생기면 나을 거라고 말해왔다. 실질적인 노력은 크게 하지 않았으면서도 아이가 생기지 않는 게 속상했다. 남몰래 남편을 미워하기도 했다. 남편 탓을 하면 마음이 조금은 풀렸다. 아이가 생기지 않는다는 사실 보다도 나를 괴롭혔던 감정은 사실 죄책감이다. 내가 몸이 너무 약한가, 내 몸에 어딘가 문제가 있나, 내가 더 이상 매력적이지 않나...


남편은 울어서 갈라진 내 목소리에 놀란 것 같았다. 나를 달래는 남편의 다정한 목소리에 겨우 진정했던 마음이 또 울컥한다. 벽을 마주 보는 자리를 잡길 잘했다고 생각한다. 혼자 커피 마시던 여자가 전화를 하면서 닭똥 같은 눈물을 흘리면 사람들은 무슨 생각을 할까.


그냥 뭐랄까. 인정하지 않으려 했지만 내가 정말, 무지하게, 너무나, 애타게 아기를 가지고 싶어 한다는 사실을 더 이상 숨길 수 없어 눈물이 났다. 오늘 산부인과에서 본 아기의 고사리 같은 손과 심장을 녹이는 웃음소리가 떠올랐다. 치명적으로 귀여운 생명체. 나도 안고 싶고, 눈 맞추고 싶고, 손을 잡고 싶다. 아이 때문에 잠도 제대로 못 자고 힘들다는 친구의 푸념에 위로를 건네면서도 사실 내 마음 저 밑바닥에는 그 고단함을 갈망하는 내가 있다.


내 시간을, 내 체력을, 내 삶을 온전히 갈아 넣어도 좋을 만큼 뜨겁게 사랑하는 생명체를 품고 싶다. 


그게 진실이다.

내가 무슨 변명을 하고, 무슨 말을 하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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