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 잠에서 깨자마자 편두통이 느껴졌다. 개운한 아침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주말이라는 점은 기분이 좋았다. 어제는 저녁에 오래간만에 약속이 있어서 하루 종일 식사 준비를 할 시간이 없었다. 남편이 어느 틈엔가 짜파게티를 사 와서 끓이고 있었다. 아침부터 짜파게티라니... 죄책감이 들지만 맛있었다.
식사를 마치고 나는 서둘러 병원에 갔다. 다시 임신 준비를 위해서 약을 처방받으러 가야 했다. 다행히 병원이 가까워서 자전거를 타고 나갔다. 게다가 병원과 우리 집 사이에 내가 매일 운동을 하는 공원이 있으니 오는 길에 걷기 운동까지 하고 오면 딱이다.
토요일에는 오전 진료밖에 없어서 사람들이 특히나 많다. 그리고 주말은 남편들과 함께 오는 비율이 높아 기다리면서 앉아있을 의자를 찾기도 어려웠다. 담당 선생님께서 시술이 많이 잡혀있어 직접 보지는 못하고 처방전만 받고 나왔다. 요번에도 때때마다 잘 챙겨 먹고, 잘 준비해 봐야겠다.
공원에 도착했을 때 문득 남편과 공원을 걸으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다. 집에서 쉬고 있을 걸 알았지만 전화를 해서 불렀다.
2020.04.25 매일 걷기 12일차!
남편을 기다리는 동안 힘차게 걸었다. 오늘은 머리에 상념이 많아 아무것도 듣지 않고 그냥 걸었다. 따스한 햇살과 시원한 바람을 느끼며 그저 걸었다. 남편의 퇴사와 임신 준비와 그 두 가지가 불러올 미래의 변화에 대해서 생각했다. 남편이 퇴사를 하고 공기업에 취업한다면 더 이상 서울과 경기도에서 살 수 없다는 말이 된다. 남편 전공을 고려했을 때 도시와는 멀어진 삶을 살아야 한다. 연고가 없는 곳에서 아이를 키우며 내가 잘 살 수 있을까 조금 겁이 났다. 지금 걱정해봐야 아무런 소용도 없지만 그래도 고민이 하고 싶은 청개구리.
걷는데 손톱만큼 작지만 작은만큼 깜찍한 들꽃을 발견했다. 예쁘다. 사진을 찍으면서 멈춰 서서 잠시 감상의 시간을 가졌다. 매일 조금씩 달라지는 자연을 감상할 수 있는 게 정말 좋다.
두 바퀴쯤 걸었을 때 남편이 왔다. 남편이 날 발견하고 건넨 첫마디가 "누가 그렇게 로봇처럼 걸으래?"였지만 나는 이게 바로 걷기에 정석이라며 응수했다. 우리는 사이좋게 걸으며 속에 있는 생각과 걱정들을 두서없이 늘어놓았다.
한참을 이야기 나누며 걷고 있는데 저 멀리서 해맑은 아이의 목소리로 부른 동요가 들려왔다. 듣자마자 노스탤지어를 느끼게 하는 소리였다. 그리고 눈에 들어온 여러 마리의 플라스틱 말. 여기저기 페인트가 벗겨져 있지만 모두 늠름한 표정을 하고 아이 손님을 기다리고 있었다. 불쑥 어릴 때 한 장면이 떠올랐다. 딱 저렇게 생긴 말을 타고 나를 바라보며 미소 짓는 부모님을 바라보던 아이였을 때의 내 모습이. 행복했다, 는 감정이 선명하게 기억났다. 나도 아이가 생긴다면 꼭 태워주어야겠다고 다짐한다. 단돈 몇 천 원에 행복한 한 순간을 평생 간직할 수 있다면!
아이 손님을 기다리는 늠름한 말 6총사
남편과 대화도 나누고 추억에도 잠기면서 걷다 보니 금방 네 바퀴를 채울 수 있었다. 내 인생에 고민이 어느 것 하나 해결되진 않았지만 그래도 고민이 깊을 땐 걷는 게 답이란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