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운동 나가기가 덜컥 겁이 났다. 실은 결혼 2년간 아이가 생기지 않아 최근 난임센터를 다니면서 임신을 준비하고 있는데 생리 예정일이 이틀 지난 어제까지 아무런 징조도 흔적도 없었기 때문이다. 두 달째 노력 중인데 이렇게 빨리 아이가 찾아온 건가 싶어 두근거리기도 하고, 혹여 걷는 운동조차도 초기에는 하지 않는 게 좋을까 생각이 많아졌다.
엊그제 임신테스트기를 두 번이나 해봤는데 결과는 단호하게 한 줄. 괜히 실망하기 겁나서 어제는 검사를 안 했고, 주말까지 생리가 없으면 정말 확신을 가져도 되지 않을까 생각했다.
그런데 아침 식사를 하고 화장실에 갔는데 피가 조금 묻어있는 게 보였다. 그 전에는 생리 시작하기 하루 전쯤부터 허리가 뻐근하고 아랫배가 당기는 생리통이 있었는데 이번엔 그런 느낌이 없어 마지막까지도 혹시나 생리가 아니라 착상혈이 아닐까 희망을 놓지 못했다. 네이버 검색으로 이것저것 알아보다가 임신 극초기에도 30분 정도의 가벼운 걷기는 괜찮다는 말에 채비를 하고 공원에 나갔다.
2020.04.24 매일 걷기 11일 차!
오늘도 바람이 매서울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는 괜찮았다. 임신에 대한 확신을 놓지 못한 상태라 평소처럼 활력 있게 걷기보단 느긋하게 천천히 걷기로 했다. 어제 오디오북 한 권을 다 들었기 때문에 오늘은 가볍게 팟캐스트를 틀었다. 즐겨 듣는 재테크 팟캐스트와 과장창(과학으로 장난치는 게 창피해?의 줄임말)이라는 과학에 대한 재미난 수다 팟캐스트를 들었다.
부동산 투자 시작 4년 만에 순자산 10억을 달성했다는 분의 이야기와 코로나19 바이러스에 관한 과학 상식을 연이어 들었다. 귀로 재밌고 흥미로운 이야기들이 쏟아져 들어오는데 자꾸 신경은 아랫배에 쏠린다. 미묘하게 배가 당기는 느낌이 든다. 생리통일까, 임신 초기 증상일까. 마음속으로는 이번에도 아니여도 괜찮다고 수십 번 되뇌었고, 실제로도 느긋하게 기다리려 하는데 쉽지 않다.
나는 궁금한 걸 참는 게 어렵다. 카톡의 새 알람은 확인하는 즉시 읽어야 직성에 풀리고, 즐겨보는 프로그램의 새 에피소드가 올라오는 날이면 얼른 확인하고 싶어 안달이 난다. 생리 예정일까지 기다리는 몇 주도 나에겐 몇 년처럼 느껴졌다. 타고난 성격을 하루아침에 바꿀 수도 없고, 누군가의 조언 한 마디에 바뀔 수도 없다. 궁금하고 조급하면 또 스스로를 달래며 기다리고 기다릴 수밖에.
2 바퀴를 느릿느릿 걷고 났을 때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장에서 신호가 왔고 화장실에 갔다. 마주하기 싫은 현실이 새빨간 옷을 입고 나를 기다렸다. 빼도 박도 못하는 새빨간 현실. 안녕, 잘가 나의 희망.
현실을 확인 한 직후, 명백해진 생리통을 느끼며 다시 걸었다. 나는 되레 활기차게 걸었다. 우울했는데, 괜찮다. 이제 걱정 없이 오늘의 할당량을 채우고 열심히 걸을 테다. 내일은 또 내일의 태양이 떠오르고, 우리 부부는 이제 막 걸음을 뗀 것이나 마찬가지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