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시쯤 눈을 떴다. 오늘은 재깍 일어나지 못하고 침대에서 한참을 뭉그적거렸다. 침대에 누워 핸드폰으로 코로나 현황을 찾아봤다. 3일째 10명. 점점 마스크 없이 외출할 수 있는 때가 다가온다는 느낌이 든다. 하지만 31번째 신천지 환자가 발생하기 전에 아무도 몰랐듯이 아직 수면 위로 드러나지 않은 숫자가 숨어 있을지 모른다. 그래도 아직까지 길거리에 대부분의 사람들이 마스크를 쓰며 조심하고 있는 모습이 떠올라 조금 안심한다.
아침을 챙겨 먹고 걷기 운동을 나설 채비를 하는데 가장 중요한 무선 이어폰이 보이질 않았다. 어제 카페에 나갈 때 남편이 가방에 챙겼었는데... 아마도 그 가방에 고스란히 담은 채 출근했을 것이다. 하나 있는 유선 이어폰은 한쪽 귀마개 고무가 없었고, 끈도 무척 끈적거렸다. 하는 수 없이 이어폰은 포기하고 공원으로 향했다.
오늘로 벌써 걷기 운동 14일 차다. 지난 2주간 하루도 빠짐없이 매일 걷기 운동을 한 것이다. 한 달이란 시간도 금세 지날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이제부터 걷기 운동 중간에 뛰기도 추가해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걷기 운동도 좋지만 무언가 몸을 큼직큼직하게 움직이며 숨이 턱 끝까지 차오르는 느낌을 느껴보고 싶었다. 운동장을 크게 한 바퀴 쉼 없이 달려도 거뜬할 만큼 체력을 만들고 싶다.
2020.04.27 매일 걷기 14일차!
아무것도 들을 것이 없어서 실은 조금 걱정이 됐다. 어제야 대화를 나눌 남편도 있었고, 혼자서 고민스러운 일도 있었기에 걸으면서도 심심할 틈이 없었지만 오늘은 상황이 다르기 때문이다. 그런데 의외로 크게 심심하지도 않았고, 지루하지도 않았다. 확실히 이어폰을 빼고 걸을 때는 주변에서 들려오는 다양한 소리와 눈 앞에 펼쳐지는 풍경을 더 세밀하게 듣고, 볼 수 있었다.
오늘따라 유치원에서 선생님을 따라 산책을 나온 아이들이 많아서 꺅, 하며 소리 지르는 아이들의 고음을 많이 들을 수 있었다. 아이들의 재잘거리는 소리와 새들이 지저귀는 소리가 하나의 앙상블을 이루고 있었다. 거기에 하늘 위에서 들려오는 비행기가 지나가는 소리와 주머니에 미니 라디오를 찔러 넣고 운동하시는 할아버지의 트로트 선곡도 지루할 뻔한 걷기 운동에 색채를 더했다.
공원 한쪽에서는 4차원 명상 음악 같은 것이 흘러나오고 두 여자분이 가부좌 자세를 하고 마주 앉아서 명상을 하고 있었다. 한국에서는 흔히 볼 수 없는 풍경이어서 눈길이 갔다. 내 앞에 걷고 있던 모든 이들의 고개 방향이 나와 같은 쪽으로 틀어져 있던 것을 보아 모두가 같은 것을 뚫어져라 보고 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되게 중국스럽다'하고 그들을 지나쳐 다시 한 바퀴를 걷었다. 다시 그들이 있었던 곳까지 도착했을 때 나는 혼자서 '큭'하고 웃고 말았다. 되게 중국스럽다 생각했는데 진짜 중국사람들이었던 것이다. 이제 명상은 끝났는지 라디오에서 중국 무협영화에서 들어본 것 같은 중국어가 빠르게 쏟아져 나오고, 그 두 사람은 요가인지, 택견인지, 태권도의 품새인지 모를 동작들을 연습하고 있었다. 그 두 사람 중 한 사람의 옷에 큼지막한 중국어가 프린트되어 있는 것을 보아 분명 중국사람들 일 것이다. 순간 잠시 다른 나라에 여행을 온 것 같은 착각이 들어 재밌었다.
어떤 사람들은 계속해서 걷다 보면 어느 순간 머릿속이 비워지며 무념무상의 단계까지 이른다는데 나는 한 시간째 팽팽 돌아가는 생각들 사이에서 쉴틈이 없었다. 몇 시간쯤 걸어야 그 단계에 오를까 궁금했지만 굳이 시험해보지는 않으려 한다. 어쨌든 오늘 하나 알게 된 사실은 걷기 운동을 할 때 음악이나 라디오 등을 듣지 않아도 충분히 즐거운 운동이 가능하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