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크리스마스를 맞이하여 필자는 트리용 전구를 구매했다. 기존의 나무 형태로 구성된 트리 장식은 식상했던 터라 전구를 벽에 붙이는 방식을 선택했었다. 잘 부착하기만 한다면 식탁이 있는 뒷면의 벽은 금빛 비가 내리는 것과 같은 모습을 볼 수 있을까 하는 기대를 하면서 말이다.
한 가지 애로 사항이 있었다. 나무에 하는 장식이 아니다 보니 벽면에 하나하나 부착을 해야 하는 것이었다. 장식이 화려한 만큼 전구를 붙여야 할 넓은 공간이 필요했다.
만족할 만한 설치를 위해 고려할 점은 세 가지였다.
첫 번째, 벽에 구멍이 생기면 안 된다.
크리스마스 분위기를 위해서 벽에 작은 구멍 정도야 괜찮겠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필자의 생각은 달랐다.
"Simple is the best"
깔끔함을 지키기 위해 벽과 천장 사이에 있는 틈 사이로 고정 팁을 붙이기로 했다.
두 번째, 장식이 최소 한 달은 보수 없이 지속하어야 한다.
구멍 없이 장식을 벽에 고정하기 위해선 여러 개의 붙임 팁이 필요했다. 장식의 넓이가 2m 가 넘었기 때문에 20센티 간격으로 촘촘히 붙였다.
셋째, 2m 길이의 전기 연장선이 필요했다.
불이 들어오는 장식이라 전선 연결은 필수였다. 전기 플러그가 있는 벽면과 장식 사이의 거리가 1m 50cm가량 있었기 때문에 연장선을 연결하여 사용해야 했다.
고려한 조건을 만족하여 무사히 설치를 마쳤다.
2킬로에서 5킬로까지 중량을 지탱하는 팁들은 장식을 고정하기 전 부착된 상태로 24시간을 기다려야 했는데, 필자는 어차피 액체류의 제형도 아니고 부착식인데 5시간이나 10시간이나 큰 차이가 없을 거로 생각했다.
슬프게도 장식을 설치한 이틀 후부터 문제가 생기기 시작했다. 장식을 고정하기 위해 붙여놓은 고정 팁들이 한둘씩 떨어지는 것이었다. 특히 전기 연장선의 무게가 더해진 쪽 붙임 팁이 더 빨리 자주 떨어지는 것이었다. 필자의 와이프가 제안하길,
"고정 팁 사용설명서대로 24시간 동안 기다렸다 붙여보자."
필자는 그렇게 하겠다 했지만 앞서 말했듯 큰 차이가 없을 거로 생각하며 반신반의하는 마음과 함께 24시간을 기다렸다.
큰 기대 없이 재부착한 장식은 하루가 지나고 이틀이 지나고 일주일이 지나도 끄떡없었다. 와이프는 뿌듯해했으며 간편하고 사소한 거라 여겼던 장식도 올바른 쓰임이 되려면 시간이 필요하다 느꼈다.
자녀들의 영어 공부도 마찬가지 아닐까? 배운 내용이 머릿속에 정리되고 소화되는 시간이 분명히 필요하다. 배움을 소화 없이 계속 밀어 넣기만 한다면 체하거나 고정 팁처럼 쉽게 떨어지는 것과 같은 문제가 생길 것이다.
조바심에 노출된 아이들은 여유가 없다. 당장 눈앞의 정답 맞히기에 집중을 하면 깊은 수준의 학습에 도달하지 못한다. 특히 영어는 생김새가 같은 단어 일지라도 쓰임이 다른 경우가 있는데 예를 들면 ‘like’ = ‘좋아하다’라는 단어를 보자. 앞서 말한 ‘like’를 좋아하다 라고 암기만 해서 중학교에 들어가면 학교 시험에서 실수하는 상황이 발생할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like’ = ‘ 00 와 같이’라는 쓰임도 있기 때문이다. 여유가 없는 학생은 이러한 쓰임의 차이를 알기가 어렵다.
‘I like you’ = ‘나는 너를 좋아해’
‘l love you like your parents’ = ‘나는 너를 사랑해 너의 부모님처럼’
(나는 부모의 마음처럼 너를 좋아해라는 의미가 된다)
여기 또 다른 사례가 있다.
'딸 선유가 중학교 1학년 때였다. 어느 날 선유는 갑자기 공부가 싫어지는데 공부를 안 하면 어떻게 되느냐고 물었다. 나는 진심으로 “공부든 뭐든, 해도 그만 안 해도 그만이다. 건강하고 행복하게 사는 것이 훨씬 더 중요하다.”라고 말해주었다. 공부하는 것이 고통스럽고 너를 더 불행하게 한다는 느낌이 들면 얼마든지 안 해도 좋다.'
(그릿, 김주환)
그릿의 저자 김주환 교수님의 실제 사례이다. 중요한 메시지는 하기 싫으면 하지 말라는 것이다.
오히려 어설픔은 하지 않으니만 못하니 그냥 마음껏 놀으라고 말해주었다 했다. 오히려 딸아이의 공부 부재를 적극 격려까지 하면서 말이다.
이유는 그래야지 공부를 다시 하더라도 어쩔 수 없이 하는 것이 공부가 아니라 내가 선택해서 학습 한다는 자율성을 주고 싶었다는 이야기다.
그렇게 여러 주 동안 전혀 공부하지 않은 딸아이의 결과는 어떻게 되었을까?
책에 따르면 공부의 부재 선언이 있기 전 선유는 300명 중에 150등 정도 했다고 한다. 이후 여차여차하여 선유는 서울대 경제학과에 진학한다. 과정이 있었겠지만, 공부를 완전히 손 놓은 시점부터 공부에 대한 두려움이나 혐오감에서 완전히 벗어나 자발적 공부를 할 수 있었으며 성적은 날로 향상되는 결과를 얻었다고 말한다.
필자가 하고 싶은 말은 '결국 서울대 경제학과에 진학했다' 가 중요 메시지가 아니다.
여기서 핵심은 부모는 자녀를 믿고 기다렸고, 공부하는 것은 자녀 스스로 선택임을 깨우쳐 주는 것이 중심이다.
요즘은 조기교육이 그 어느 때 보다 열성적으로 이뤄지고 있다.
자녀의 의지라기보다는 길잡이라는 명목하에 부모의 조바심이 반영된 결과물이 아닐까?
필자의 경험상 부모의 선택으로 내 아이가 공부하는 것은 딱 중학교까지다.
대입으로 가는 핵심 관문인 고등학교에선 통하지 않는다. 자녀 스스로 자발성이 배제된 채 마주한 고등학교 공부의 현실은 더는 부모가 채워 줄 수 없을 만큼의 난이도와 학습량의 소화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분명한 것은 득과 실이 존재한다는 것이며 조기 교육보다 중요한 것은 내 자녀가 자발적 학습 동기를 체득할 기회의 제공은 부모의 적절한 기다림이 채워 줄 수 있다고 필자는 주장한다.
영어 공부의 측면으로 돌아오자. 부모의 조바심으로 영어 공부를 할 수 있는 선은 중학교 3학년까지다.
공교육을 기준으로, 중학교 영어 공부는 교과서 및 부교재 등의 암기로 어느 정도 성적 유지가 가능하다.
즉, 부모의 의지로 시키는 강제적 학습으로 최대 중간 수준의 성적까지 가능하단 것이다.
고등학교는 어떨까? 입시의 마지막 관문인 수능 영어 및 고등기 영어시험은 단순 학습으로 성적 유지가 불가능하다. 필히 내 아이의 자발적인 학습이 이뤄지지 않는 한, 좋은 결과를 기대하기 힘들다. 등 떠밀려서 공부하기엔 양도 너무 많고 어렵기까지 하다. 무엇보다 고등학교 3년은 결코 짧은 시간이 아니기 때문에 일정한 학습 에너지를 유지하려면 학생 본인의 학습 근력이 필수다.
학습 근력은 마음 근력에서 온다. 마음 근력은 공부의 주체인 자녀의 자발성에서 비롯된다.
자발성은 기다림의 결과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