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에서 영어 공부란 어떤 의미일까?
필자가 가입한 유명한 영어 카페에서 어느 날 게시글에 질문 하나가 올라왔다.
"대한민국 영어 도대체 왜 이런 거죠?"라는 주제의 글이었다. 이후 100여 개 가까운 댓글이 등록되었고 저마다의 이유와 근거를 게시하며 토론이 벌어졌다. 수능 영어가 공부의 전부는 아니라는 글, 모든 영어를 회화로 규정하지 말라는 글, 줄 세우기 식 영어 공부에서 비롯한 피할 수 없는 제도라는 글 등등. 댓글 하나하나가 나름의 이유를 가지고 있었다.
이에 필자가 생각해왔던, 그러나 정의 내리기 어려운 그 질문이 다시 한번 떠올랐다.
"영어를 잘 한다는 것은 어떻게 정의 할 수 있을까?"
필자가 근무했던 어학원에서 있었던 일이다.
평소 필자의 지도에 꾸준한 신뢰를 보여 주셨던 어머님께서 “선생님, 대체 영어를 잘하는 건 무엇일까요?”라고 물으신 적이 있었다. 필자는 어학원의 입장에서 말해야 하는 현실과 아이를 지도하는 선생님인 상황에서의 견해를 적절히 섞어 응대해 드렸던 기억이 있다.
“어머님, 영어를 목적에 따라 적절히 사용할 수 있으면, 충분합니다. 물론 우리 00에게는 지금, 숙제 완료와 단어 암기 그리고 과제를 완료할 수 있는 학습 지구력을 키워야 함이 선행되어야 하지 않을까요^^”
제일 중요한 것은 아이의 자발성이다. 자녀에게 어떻게 동기를 심어주냐고 물어보기 전에, 영어공부라는 하나의 과정이 좋은 기억으로 남을 수 있어야 한다. 영어에 대한 좋은 기억과 함께 피하지 않아도 되는 그래도 할만한 나름의 재미가 있구나 라고 하는 생각들이 모여서 학습 동기가 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 우리의 영어 현실은 어떤가 울며 겨자 먹기 식의 영어 공부, 외부의 성화에 이기지 못하여 마지못해 이뤄지는 공부가 대부분이지 않을까 한다. 좋은 커리큘럼을 가진 영어 교육 기관은 무수히 많다. 하지만 잘 들여다보면 자녀를 만족시켜주는 과정인지, 아니면 부모를 설득하기 위한 과정인지 헷갈릴 때도 있다. 아이에게 좋다는 명목하에 부모를 설득하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 봐야 하지 않을까?
얼마 전, 중간평가 격인 모의 토셀 시험을 실시했다. 필자가 꾸준히 지도했던 잭슨은 영어가 친숙한 아이였다. 듣기 문제 30개가 지나고 나머지 30개의 문제를 푸는 시점이었다. 총 60문제 중 40번대 중반이 지나가면서 잭슨의 표정이 급격히 어두워졌다. 아마도 잭슨에게 긴 호흡의 시험이었을 수 있다. 필자는 잭슨에게 너무 무리하지 말고 힘들면 그만해도 좋다고 말했다. 그러자 잭슨이 말했다.
"제가 지금 그만둬서 결과가 좋지 않으면 엄마가 실망할 거예요."
"엄마가 만점 맞으라고 했어요."
안타까웠다. 어느 정도 성취를 하고 있는지 중간 점검 차원에서 치는 시험이었다. 필자는 말했다.
"잭슨, 엄마를 기쁘게 하는 시험이 아니라 잭슨 자신의 실력을 평가하는 시험이야, 틀려도 괜찮고, 중간에 그만둬도 괜찮아. 멈추는 시점에서 잭슨이 스스로 느끼는 바가 중요해."
시험의 개수보다 시험을 대하는 그 마음과 상황을 잘 기억하라 당부했다.
안쓰럽기까지 했지만, 잭슨은 얼굴을 지푸린 체 엄마와의 약속을 지키려 끝까지 시험을 마무리했다.
"결과와 상관없이 지금 스스로 노력으로 마무리한 이 과정을 기억해 잭슨. 점수는 그다음이야."
아마, 많은 학생이 잭슨과 같지 않을까? 필자의 경험을 바탕으로 말하자면 잭슨의 이후 학습은 그리 긍정적이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물론 아무런 변화가 이뤄어 지지 않았을 경우다. 부모의 기대로 하는 공부의 최후 연장선은 중학교 공부까지다. 중학교 공부까지는 학생주도 학습이 아니어도 꾸역꾸역 성적을 유지할 수 있다. 하지만 고등학교 공부는 아니다. 부모의 기대와 관리만으로 만족하는 공부를 하기엔 양도 너무 많고 무엇보다 힘들다. 영어만 공부하는 것도 아니며 과목 수부터 이전의 교육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많다.
입시 영어는 특수한 경우이기 때문에 깊은 말은 하지 않겠다.
하지만 영어가 아닌 다른 과목도 공부하는 주체는 학생인 것이 공통점이다.
"그래서 무엇이 중요하단 것일까?"
영어라는 것은 결국 글이 말이 되는 과정이다. 문어체들이 쌓여야 구어체로 사용된다는 말이다. 근데 이 과정이 전혀 쉽지 않다.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여기서 필요한 시간은 공부해서 내용을 쌓는 시간, 그리고 그 내용을 대입하여 연습해보는 시간, 연습하여 사용해보는 시간, 등 생각보다 간단치 않은 과정을 거쳐야만 한다.
필자가 바라본 대한민국이 바라는 영어 공부의 지향점은 조금 보태어 말해, 수능도 잘 봤으면 좋겠고 토익도 잘 봤으면 좋겠고 나아가 회화까지 잘했으면 좋겠다는 이 모든 바람을 포용할 수 있는 기대감에서 비롯되지 않았나 싶다. 안타깝게도 앞서 말한 모든 바람을 채워주는 영어 공부법은 없다. 수능을 1등급 맞았다고 해서, 토익을 만점 받았다 해서 말하기까지 자연스럽게 잘한다는 보장이 없다는 말이다.
정작 중요한 것은 마음의 근력이다. 여유롭게 기다릴 수 있는 부모 마음 근력, 부모의 신뢰를 바탕으로 자의적 학습 근력을 키워나가는 내 자녀의 마음 근력이 꼭 필요하다.
필자는 영어를 배우는 것은 문화를 배우는 것과 같다고 생각한다. 문화를 받아들이는 것은 한 가지 단편적인 부분만 경험했다고 되는 게 아니다. 음식, 생활, 언어, 사고방식 등. 다양한 경험을 고루고루 해야만 문화를 배웠다 고 말할 수 있는 것이기 때문에. 어느 특정 부분의 편식 없는 건강한 영어공부가 이뤄져야 한다고 주장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