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모치 해변에서 만난 장원영2 _ 2025년 12월

by 김대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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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편에 이어지는 내용입니다.

1편을 먼저 읽고 와주세요!



셋째 날은 모모치 해변에 갔다. 버스 타는 법을 몰라서 지하철역에서 30분을 걸었다. 전날도 많이 걸었던 터라 발바닥이 굉장히 아팠다. 한참을 걷다 보니 유치원생과 초등학생과 중학생으로 보이는 여러 무리가 스쳐 지나갔다. 굉장히 큰 부지가 담으로 둘러싸여 있었는데, 나오는 연령대가 매우 다양한 걸 보니 여러 학년을 다 합쳐 놓은 학교 같았다. 키가 내 허리에 닿을락 말락 하는 쪼꼬미들이 동그란 모자를 쓰고 총총 뛰어가는 모습이 정말 귀여웠다. 나도 빨리 저렇게 귀여운 애기 키우고 싶다고 생각했다.
모모치 해변에 가니 사람이 거의 없었다. 여자 한 명이 바다를 보고 앉아 있었는데, 해변에는 이 사람 빼고는 정말 아무도 없었다. 처음엔 남자친구가 잠시 화장실에 갔나 싶었다.
우린 해변에 도착하자마자 너무 힘든 나머지 벤치에 바로 쓰러졌다. 누워서 바다를 보니 세상 평화로웠다. 이게 힐링이지. 누워서 한참을 멍때렸더니 웬 커플이 서로 좋아라 하면서 내 눈앞을 뛰어다녔다. 커플 사진을 남겨주면 좋을 것 같아서 말을 걸었다.
“사진 찍어드릴까요?”
“오, 네. 감사합니다!”
“두 분 너무 잘 어울리세요.”
“아, 정말요? 감사합니다.”
“지금 계속 찍고 있으니 포즈 계속 바꾸시면 될 것 같아요.”
좋은 일을 했다는 생각에 무척 뿌듯했다. 저 멀리 일본인 모녀도 사진을 찍어줄 사람을 찾고 있는 것 같아서 말을 걸까 고민했는데, 못 했다. 차마 거기까지 용기를 내진 못했다. 모~ 바카바카!

“가위바위보 해서 진 사람 바다에 들어갔다 올래?”
갑작스러운 친구의 제안이었다. 도파민 터지는 일은 빼지 않지.
“콜.”
“이걸 이렇게 쉽게 수락한다고?”
“에이, 바다에 들어가는 게 뭐라고.”
가위바위보 하자고 친구를 10분 넘게 설득했다. 확률 50%밖에 안 되는데, 너가 안 걸리면 되는 거 아니냐며. 고작 바다에 들어가는 거 가지고 뭐 저렇게까지 망설이나 답답했다.
“그럼 둘이 같이 들어가는 걸로 하자.”
“안 돼. 혼자 들어가야 재밌지.”
가위바위보는 내가 졌다. 승부의 세계는 냉정한 법. 상의를 벗고 모모치 해변의 겨울 바다에 입수했다. 친구를 설득하는 동안 해변은 한국인으로 꽤 많이 차 있었다. 바닷물이 너무 차가워서 부끄럽다는 감정이 들 새도 없었다.
모래를 씻어내고 원래 있던 벤치로 돌아오니 아까 벤치에 혼자 있던 여자가 이번에는 해변에 홀로 앉아 있었다. 혼자 여행 온 거구나. 이때가 기회다 싶었다.
“혹시 사진 좀 찍어주실 수 있나요?”
“네, 잠시만요.”
그녀는 열정적으로 우리의 사진을 찍어주었고, 한 장을 찍을 때마다 나는 쉴 틈 없이 말을 걸었다.
“이따 머할 거예요?”
“혼자 놀러오신 거예요?”
“저흰 이제 후쿠오카 타워 가려고 하는데, 같이 가실래요?”
그렇게 그녀와 동행하게 됐다. 그녀는 긴 생머리에 키가 작은 편이었고, 아마 153cm 정도였을 것이다. 눈이 크고 동그란 귀여운 스타일이었다. 스무 살이라는 점을 제외하면 다 괜찮았다. 스무 살은 좀 사고였다. 스무 살은 아무래도 무리데쓰.
그녀는 혼자 여행 온 게 아니었다. 중학생 때부터 친한 친구랑 둘이 왔는데, 여행 스타일이 너무 달라서 따로 다니기로 했다고 했다. 그녀의 친구는 저녁 먹는 시간에 맞춰 우리와 합류했다.
이제부터 그녀를 ‘장원영’이라고 부르겠다. 술자리에서 그녀들은 서로를 카리나, 장원영이라고 불렀는데, 편의상 해당 명칭을 그대로 사용하겠다.
카리나를 만나기 전에, 장원영은 카리나를 고집이 세고, 자기랑 잘 안 맞는 사람이라고 소개했다. 둘이 여행하는 건 이번이 처음이라 지금 싸우기 직전이라며. 우리는 그 말을 듣고, 처음 보는 사람한테 자기 친구가 고집 세다고 소개하는 사람은 처음 봤다며 크게 웃었다. 그녀는 친구한테는 비밀로 해달라며 애원했다. 말하면 손절당할 수도 있다며. 카리나가 내 책을 읽진 않겠지. 만약 이 페이지를 읽고 있다면, 사실이 아니니 부디 넘어가 주시라.
카리나가 저 멀리서 걸어올 때 장원영이 뱉었던 첫마디도 가관이었다.
“뭐야. 너 어제랑 왜 이렇게 달라? 어제는 쌩얼이었잖아. 갑자기 달라져서 적응이 안 되네. 뭐지 진짜?”
둘이 대체 어떻게 친해진 걸까. 나중에 얘기 들어보니 찐친은 맞았다. 근데 여자들은 찐친 디스는 잘 안 하지 않나. 처음 겪는 일이라 신기했다.
우리는 저녁으로 규카츠를 먹었다. 안 그래도 튀김류를 잘 못 먹는데, 어색해서 먹기가 더 힘들었다. 목 컨디션이 안 좋아서 말도 잘 못하는 상황이었는지라 친구가 혼자 분위기 띄우느라 고생 좀 했다. 내 목 컨디션이 너무 안 좋았다. 순간순간 나도 모르게 기침이 튀어나왔고, 말 한마디만 해도 목에 가래가 낀 기분이 들 정도였다.
2차로 갈 장소를 모색하던 중, 구글 지도로 찾은 식당은 다 자리가 차 있었다. 무작정 길을 걷다가 로컬 분위기가 물씬 풍기는 바에 들어갔다. 한국어 메뉴는 당연히 없었고, 메뉴를 시키기까지 10분이 넘게 걸렸다. 사케 한 병 주문하는 것조차 애를 먹었다. 병으로 된 가장 싼 사케를 달라고 했더니 720ml 병을 보여주며 4,500엔이라고. 모츠나베와 구운 명란젓, 사케, 생맥주를 시켰다. 규카츠를 너무 배부르게 먹은 탓에 안주를 다 먹진 못했지만, 굉장히 맛있긴 했다. 특히, 모츠나베의 단백한 국물은 가히 예술이더라.
두세 시간을 마셨을까. 장원영은 많이 취한 것 같았다. 카리나는 얘 평소에 나랑 마시면 맨날 빼는데, 오늘 왜 이렇게 달리는지 모르겠다며 당황해했다. 카리나는 돈키호테에 들러야 한다며 그만 가자고 했지만, 장원영은 너 혼자 다녀오라며, 자기는 새벽까지 더 마시고 싶다고 졸랐다.
내 친구 말로는 내가 화장실에 갔을 때, 장원영이 카리나한테 이렇게 말했다더라.
“이런 감정 머지. 나 이런 적 처음이야. 나 어떠캐야 대.”
친구가 내일 화상 면접을 봐야 해서 이제 가봐야겠다고 하니 장원영은 친구 혼자 가고 나는 남아서 같이 놀자고 했다. 자기랑 새벽까지 술 마시자고. 스무 살이 참 당돌했다.
그나저나 나보고 여자 경험 많을 것 같다고, 그동안 몇 명 사귀어봤냐고, 여행 와서 모르는 사람이랑 노는 거 자기가 몇 번째냐고 계속 물어본 이유가 나한테 관심 있어서였구나. 오늘이 처음이라고 답하니 거짓말 좀 그만 치라며. 진짠데. 나 그 정도 아닌데. 아니 그 정도 맞긴 하다. 이게 알파남의 삶이지.
“오빠, 내일 연락 안 할 거지?”
“할게.”
“거짓말. 술 깬 다음에 내가 어제 왜 그랬지 하면서 현타 느낄 거잖아.”
“나 그 정도로 안 마셨어. 내가 볼 땐 너가 그럴 거 같은데?”
“나도 아니야.”
술집을 나오니 장원영은 몸을 제대로 가누지 못했다. 길을 걸으면서 그녀를 슬쩍 보니 눈이 거의 풀려 있었다. 장원영은 카리나에게 기대면서 걸었는데, 카리나는 장원영을 밀치며 진지하게 화를 냈다. 정말 어떻게 친해진 거지. 몇 년 동안 손절 안 하고 잘 지내는 게 신기했다.
“친구 귀찮게 하지 말고, 나한테 기대.”
“초면에 너무 실례되는 행동이잖아요.”
“괜찮아. 기대.”
장원영은 내게 기댄 채 우리는 손을 잡고 텐진 거리를 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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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만간 3편이 업로드될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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