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나는 노자의 《도덕경》을 천천히 읽고 있다. 그중에서도 '도(道)'와 '무위(無爲)'라는 말 앞에서 오래 머문다.
'도'는 애써 만들어 내는 게 아니라, 본디 그렇게 흘러가도록 이미 갖추어진 질서다. 억지로 손대지 않아도, 만물은 저마다의 자리로 흘러간다.
물처럼.
물은 누가 길을 내어주지 않아도 낮은 곳을 찾아 흐르고, 굽이굽이 돌아 결국 바다에 이른다. 서두르지 않아도, 다투지 않아도, 제 갈 길을 간다.
아이를 떠올렸다.
나는 그동안 아이를 "잘 되게" 하겠다고 간섭하고 통제했다. 아이가 가진 속도는 무시한 채, 내 기준으로 아이를 끌고 가려했다. 아이를 위한 선택이라 믿었지만, 그 안에는 불안과 조급함이 더 많았는지도 모른다.
지난해, 아이와 함께 수학 문제 풀이를 시작했다. 매일 3장씩 결코 많은 분량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잘하는 것보다 중요한 건, 꾸준히 하는 습관이라 믿었다.
하지만 아이는 그 시간을 유독 힘들어했다.
처음에는 물러서지 않았다. 하기 싫다고 말하는 아이에게 "그래도 해야지!"라고 다그쳤다. 수학을 가르치려다 사이가 먼저 틀어졌다. 좋은 습관을 만들고자 시작했던 일인데, 나에겐 화로, 아이에겐 상처로 돌아왔다.
힘들다며 소리치고 눈물을 보인 날도 있었다. 나는 꼭 이렇게 해야 하나 싶었다.
'지금 내가 지키려는 건 아이의 미래일까. 아니면 내 불안일까.'
결국 문제 풀이를 멈췄다. 대신 스스로 방정리를 하고, 집안일을 돕게 하였다. 함께 운동하며 체력을 길렀다. 쉽지만 더 기본이 되는 활동을 통해 작은 효능감부터 다시 쌓아 올렸다.
그렇게 방학이 되었고, 예전보다 시간이 많아졌지만 서두르지는 않았다. 심심함으로 일상을 채우도록 했다. 아이의 표정은 한결 밝아졌고, 성취가 쌓이면서 전에는 없던 자신감이 싹트기 시작했다.
그러던 어느 날 아이가 먼저 말을 꺼냈다.
"나 수학 공부 해볼래."
잠시 말을 잇지 못했다. 아이가 스스로 변화하는 모습을 눈앞에서 본 나는 가슴이 벅차올랐다. 그제야 강물이 왜 서두르지 않는지 조금 알 것 같았다.
겨울 방학 동안 아이는 엄마와 함께 수학 공부를 하고 있다. 강제성도, 정해진 분량도 없다. 이리저리 굽이치는 아이의 속도에 맞춰 조금씩 나아갈 뿐이다.
아이를 믿는다는 건, 아이의 속도를 믿는 일이라는 걸 이제야 조금 배운다. 강물처럼, 돌아가더라도 제 길을 가도록. 그 곁에서 더는 서두르지 않는 사람이 되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