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에선 늘 엄마에게 붙어 있던 아이가 웬일인지 나에게 달려왔다.
“아빠! 아빠가 나 이렇게 붙잡고, 내가 탈출하는 게임 하자!”
오랜만에 하는 게임이다. 나는 팔과 다리를 엮어 아이의 몸을 단단히 감싸 안았다. 간지러움을 참다못해 터져 나온 아이의 웃음소리가 집 안을 가득 채웠다. 탈출하려 안간힘을 쓰는 얼굴이 제법 진지하다. 한동안 우리는 그렇게 기분 좋은 땀을 흘렸다.
아이와 나는 원래 이런 사이였다. 몸으로 놀다 보면 시간 가는 줄 몰랐고, 아이에겐 내가 언제나 최고의 친구라고 믿었다.
그 믿음이 흔들린 날이 있었다.
아빠의 권위가 무너졌다고 느껴졌던 날, 그동안 억눌렀던 분노가 한 번에 터져 나왔다. 나는 화를 삼키지 못한 채 아이를 거칠게 몰아세웠다. 오랜 시간 공들여 다져온 우리의 관계를 내가 한순간에 무너뜨린 순간이었다.
겁에 질려 울던 작은 얼굴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
아이를 혼내고 돌아선 뒤, 나는 방에 들어가 혼자 울었다. 난생처음 불같이 화를 냈던 그날, 아이의 상처만큼 내 마음에도 생채기가 났다.
그 뒤로 아이는 엄마를 더 찾았다. 학교 이야기도, 속상한 일도 내가 없는 자리에서만 조용히 꺼내놓았다.
다가가면 돌아오던 말.
“아빠 싫어. 나가줘.”
그제야 겁이 났다. 이대로 영영 아이와 멀어지는 건 아닐까.
나는 말을 줄이기로 했다. 바로잡으려 하기보다 먼저 듣는 쪽을 선택했다. 눈앞의 변화보다 조금 더 먼 시간을 보려고 애썼다.
두어 달쯤 지났을까.
요즘 아이는 가끔 먼저 농담을 건넨다. 장난처럼 툭 치고 지나가기도 한다. 그럴 때마다 간지럼으로 맞불을 놓거나, 거꾸로 안아 올려 힘차게 흔들어준다.
말은 때로 우리를 멀어지게 하지만, 몸은 아직 우리를 이어준다. 뛰고, 안고, 구르고 나면 서로에게 나가는 말도 조금은 부드러워진다.
아이가 자라는 만큼 나는 나이가 들어간다. 예전보다 힘들지만, 이 숨 가쁜 시간이 지금은 더 소중하다. 그래서 요즘은 말을 하기 전 먼저, 한 번 더 안아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