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의 호기심과 부모의 걱정 사이
집에서 물고기를 키운 이후, 내게는 새로운 잔소리가 하나 생겼다.
어항 물을 갈고 청소를 하는 아이의 서툰 손을 볼 때마다 마음이 조마조마 해진다. 결국 참지 못하고 한마디를 건넨다.
"물 쏟지 않게 조심해야지. 여긴 잘 마르지 않아서 곰팡이가 생길 수도 있어."
그리 중요한 일도 아닌데, 그 말 한마디를 삼키는 일이 왜 이렇게 어려울까.
얼마 전 캠핑장에서의 일이다.
경칩이 막 지난, 아직은 이른 봄. 아이와 개울가를 산책하다가 투명한 구슬처럼 엉겨 붙은 개구리 알을 발견했다.
"아빠, 저기 개구리 알 엄청 많아."
"우와, 정말 그러네. 개구리 알맞네."
"나 저거 집에 가져가서 올챙이 키워볼래."
순간 망설임이 올라왔다.
저 많은 올챙이들을 어떻게 키울까. 물은 어떻게 갈아주고 먹이는 또 어떻게 줘야 할까.
신난 아이의 얼굴 뒤로 나의 불편함을 애써 감추며 말했다.
"그래, 우리 올챙이 한번 잘 키워 보자."
집으로 돌아오는 날이었다.
아이에겐 불행히도, 그리고 나에게는 다행히도, 개구리 알을 담은 플라스틱 통에서 물이 새고 있었다.
결국 아이는 집에서 올챙이를 키우려던 계획을 접어야 했다. 아이 얼굴은 실망으로 가득했지만, 나는 마음속에는 '다행'이라는 안도감이 조용히 자리 잡고 있었다.
아이에게 드넓은 자유와 호기심, 그리고 스스로 해냈다는 성취감을 심어주자 말하면서도, 현실에서는 나의 결벽과 자주 부딪힌다.
문득 오래전 일이 떠올랐다.
아이가 처음으로 혼자서 유리컵에 우유를 따라 마셨던 날. 나는 대견함에 박수를 치며 기뻐했지만, 그 마음 뒤에는 불안이라는 다른 얼굴이 숨어 있었다.
'컵을 깨면 어쩌지, 우유를 쏟으면 안 되는데.'
이제 오랜 시간 내 그림자처럼 따라다녔던 이 결벽을 조금 내려놓아 보려 한다. 우주는 원래 질서에서 무질서로 흘러가는 법칙에 순응하며 흘러가고 있지 않던가.
집이 깨끗하고 정돈되어 있으면 물론 좋다. 하지만 아이에게 집은 늘 정돈되어 있어야 한다는 강박을 심어주고 싶지는 않다.
조금 어질러진 집에서라도, 아이의 호기심이 더 마음껏 자랄 수 있다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