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의 고집과 생떼가 유독 매서운 날이 있다. 처음에는 푹신한 쿠션처럼 그 뾰족함을 받아낸다. 하지만 실랑이가 길어지면, 어느 순간 그 쿠션은 딱딱한 벽으로 변한다.
"너 혼나기 전에 그만해!"
목 끝까지 차오른 말이 결국 튀어나온다. 혼자였다면 아마 더 큰 목소리로 아이를 밀어붙이거나, 아니면 차갑게 등을 돌려 아이를 고립시켰을지도 모른다.
다행히 그날은 아내가 있었다.
아내는 서두르지 않았다. 차분하게 아이의 감정을 어른의 품으로 받아내며 진정되길 기다렸다. 그리고 부드럽고 단호한 말로 가르쳤다.
나는 그 자리를 벗어나 방으로 들어갔다. 침대에 누워 숨을 고르다 문득 생각했다. 만약 아내가 아니었다면, 내 감정의 발톱으로 아이의 마음을 할퀴었을지도 모른다고. 그 순간 아내는 흔들리는 나를 붙잡아주는 거대한 지지대였다.
반대로 아내의 인내가 무너지는 날이 있다. 그럴 땐 내가 아내와 아이 사이의 빈 공간으로 들어간다. 그날은 내가 아내의 동아줄이 되는 셈이다.
육아는 거친 파도와 닮았다. 그 안에서 아내와 남편은 서로에게 기댈 수 있는 유일한 버팀목이다. 한 명이 무너지면 다른 한쪽이 그 파도를 온몸으로 막아낸다.
우리는 한 번, 동시에 무너진 적이 있다. 그날 아이의 표정이 서늘하게 남아있다. 궁지에 몰려 도망칠 곳을 찾는 작은 동물처럼, 겁에 질려 있었다.
그날 이후, 우리는 약속했다.
어떤 상황에서도 절대 동시에 몰아세우지는 않기로. 아빠에게 혼나면 엄마에게, 그리고 엄마에게 혼나면 아빠에게 달려가도록 길을 터주었다. 가장 외롭고 무서운 순간, 아이가 마음 편히 기대고 쉴 수 있는 최소한의 안식처는 남겨 두기로 한 것이다.
육아에 몰입할수록, '가르쳐야 한다'는 마음은 더욱 조급해진다. 힘을 줄수록 더 깊이 빠져드는 늪처럼 말이다.
그래서 우리는 번갈아 버틴다. 조금 더 여유 있는 사람이 그날의 버팀목이 된다. 부부는 결국 한 배를 탄 원팀이니까.
기러기는 V자 대형으로 먼 거리를 날아간다. 맨 앞의 기러기가 바람을 온몸으로 막아주면, 뒤를 따르는 무리들은 훨씬 적은 힘으로 날아갈 수 있다.
그리고 지치면 서로 자리를 바꾼다.
아이의 행복이라는 목적지를 향해 우리 부부는 그렇게 의지하며 날아가고 있다. 조금 더 빨리 날아가기 위해서가 아니라, 조금 더 멀리, 끝까지 날아가기 위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