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 내가 아빠 흰머리 뽑아 줄게.”
아직 작은 손이지만, 소근육 힘이 제법인 녀석은 요즘 엄마 아빠의 새치를 뽑는 재미에 푹 빠져 있다.
“그래, 하나에 백 원씩 스무 개만 뽑아줘.”
한 손에는 족집게를 쥐고, 다른 한 손으로는 능숙하게 가르마를 탄다. 제법 그럴싸한 솜씨다. 눈이 빠질 듯 집중한 얼굴을 보고 있으면 절로 웃음이 난다. 그러다 문득, 어린 시절 어머니의 흰머리를 뽑아드리던 내 모습이 겹쳐 떠오른다.
끝이 없을 것만 같던 집안일을 잠시 멈춘 휴식 시간, 어머니는 형과 나를 불러 흰머리를 뽑아 달라 하셨다. 숱 많은 머리칼을 쓸어 넘기실 때마다 우리는 보물 찾기라도 하듯 하얀 머리카락을 찾아냈다. 누가 더 많이 찾는지 은근히 경쟁도 했다.
그때의 나는 어머니의 흰머리가 싫었다. 그 안에 담긴 시간을 몰랐기에, 그저 어머니가 늙어간다는 사실이 서글펐다. 그래서였을까. 대가도 없이 더 많이, 더 빨리 뽑아내려 애를 썼다. 마치 흰머리를 없애면 시간이 멈추기라도 할 것처럼.
이제는 내가 그 자리에 앉아 있고, 아이가 내 머리 위를 유심히 들여다보고 있다.
“아빠 늙는 거 싫어.”
그 시절의 나처럼, 아이도 아빠가 흰머리 가득한 노인이 되는 게 속상한 모양이다. 나는 웃으며 말해준다.
“괜찮아. 아빠는 흰머리가 많아져도 선우가 잘 크고, 우리가 지금처럼 재밌게 지낼 수 있다면 그걸로 충분해.”
말을 하고 나서야 비로소 알 것 같다. 30년 전 어머니도 아마 같은 마음이었을 것이다. 조금씩 늙어간다는 사실보다, 그 시간을 아이들과 나누고 있다는 사실이 더 소중했을 것이다. 흰머리는 멀어지는 젊음에 대한 슬픈 기록이 아니라, 사랑하는 이와 함께 보낸 시간의 기록이었을 테니까.
아이의 손끝이 또 한 올의 흰머리를 잡아당긴다.
“하나 더 뽑았다!” 하고 환하게 웃는다.
언젠가 아이도 알게 되겠지.
자기가 뽑던 그 흰머리 한 올 한 올이, 우리가 함께 웃고 살아낸 세월의 흔적이었다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