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의 잠들기 전 루틴은 엄마와 함께 침대에서 책 읽기다. 작년까지만 해도 아이 옆자리는 내 차지였지만, 그 자리를 어느 순간 엄마에게 내주었다. 이제는 내가 감히 침범할 수 없는 영역이 되었다.
며칠 전, 책을 다 읽고 잠드는 아이에게 인사를 하러 다가갔다. 그런데 아이가 갑자기 소리를 질렀다.
"아빠 당장 나가!"
무슨 이유인지 아이는 나와 인사 조차 하지 않으려 했다. 뭔가 녀석의 심기를 건드린 것이 분명하다. 나는 영문도 모른 채 방에서 쫓겨났다.
십 분쯤 지났을까. 조용히 방문이 열리더니 머쓱한 표정의 아이가 다가왔다. 그리고 내 귀에 아주 작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아빠, 잘 자."
조금 전의 날카로움은 온데간데없었다. 미안하고 차분한 목소리였다. 잠깐 상했던 마음이 눈 녹듯 사라졌다. 나는 아이 볼에 입을 맞추며 답했다.
"그래, 너도 잘 자고 좋은 꿈 꿔."
잠자리로 돌아가는 아이의 뒷모습을 보며 아내에게 들었던 이야기가 떠올랐다.
아이는 엄마와 직접 손으로 쓴 카드를 사고파는 놀이를 했다고 한다. 여러 카드 중에서 아이가 고른 건 마음을 다스리는 카드였다.
'파도같이 잔잔해지는 마음 - 화가 날 때 들여다보면 마음이 차분해집니다.'
그 카드를 보는 순간, 마음 한편이 찡했다. 겉으로는 소리 지르며 화를 내버리지만, 속으로는 자신의 공격성을 누구보다 고치고 싶었던 것이다. 아끼던 용돈을 기꺼이 냈다는 말에 아이의 간절함이 더 선명하게 전해졌다. 조금 전, 아빠를 다시 찾아온 것도 제 나름대로 마음을 다스리기 위한 노력이었을 테다.
"화가 나면 소리치지 말고, 너의 감정을 말해!"
"3초만 생각하고 말하는 연습을 해봐!"
조급함에 못 이겨 쏟아냈던 나의 잔소리들이 부끄러워졌다. 아이는 이미 스스로의 방법으로 분투 중이었다. 내가 조금 더 의연하게 기다려 주었다면, 아이는 자기 자신을 더 굳게 믿어보지 않았을까.
그래서 앞으로 난 아이를 즉각 고치려 들기보다, 한 박자 멈추어 서기로 했다. 훈계를 하는 대신, 아이가 쏟고 있는 소리 없는 노력을 믿어주려 한다.
녀석도 지금, 자기 방식대로 애쓰고 있는 중일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