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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보통PD 빅대디 Aug 02. 2024

우리 모두의 삶은 특별합니다

에필로그 - 아듀! 인간극장

대학생 때 다큐멘터리 피디가 되고 싶다고 마음먹고 나서 처음 꿨던 꿈이 <인간극장> 피디였습니다. 20대 후반에 처음 인간극장 팀에 함께 하게 되어서 정말 기뻤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네요. 입봉 전까지 박봉에 밤샘을 밥 먹듯 해야만 하는데도 꿈의 길을 걷고 있다는 그 마음 하나로 정말 즐거웠던 시간들이었습니다.


<인간극장>이란 프로그램을 처음에 조연출로 10여 편 진행했었네요. 메인 조연출이었던 8편에 후배가 촬영본 날려 먹어서 책임져준다고 추가 촬영 나갔던 텀 한 개. 운전면허가 저밖에 없어서 따라 나갔던 남의 조연출 텀도 두어 개. 사건이 좀 있어서 전 팀이 달라붙어 편집하느라 한편 통으로 처음 편집해 보게 되었던 텀도 한 개. <인간극장>이란 프로그램의 시스템을 익히고, 스케줄이 흘러가는 모든 과정을 익힌 것도 그렇지만, 인간극장의 모토가 진짜라는 걸 몸으로 경험하는 시간이었습니다.


평범한 사람들의 특별한 이야기


어쩌면 지극히 평범한 일상을 살고 있는 사람들 속에 있는 특별한 이야기를 찾아 세상에 꺼내놓는 일은 상당히 재미있는 일이었습니다. 그리고 3년 만에 찾아온 기회에 진짜 인간극장 피디가 되어 꿈을 이루게 되었습니다. 1년 4개월, 7 가족의 인간극장 출연자들을 만났습니다. 인간극장은 20일의 촬영 기간을 기본으로 했었는데요. 거의 출연자들과 밥도 같이 먹고, 어쩔 때는 방 하나 빌려서 잠을 같이 자게 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말 그대로 식구가 되죠. 어떤 출연자 분은 촬영 다음날 밭일 하고 뒤를 돌아봤는데 너네가 없어서 엄청 허전했다면서 전화가 오시기도 했어요. 방송이 다 마치고 나면 꼭 아내와 함께 출연자 분들을 만나 뵈러 갔습니다. 함께 만나 방송 후에 방송국 분들께, 주변 사람들에게 들었던 말들도 전해 드리고, 함께 식사하던 시간들이 너무 좋았습니다. 아내와 함께 그곳에 가면 진짜 가족이 되는 기분이었거든요.


이번에 그때의 이야기를 기록으로 남기면서 출연자 분들과 다시 연락을 하게 되었습니다. 너무 오랜만에 연락드려 죄송하다 말씀드리면 하나 같이 돌아오는 대답이 잊지 않고 연락해 줘서 고맙다는 말이었어요. 그리고 더 감사했던 것은 안 그래도 가끔 생각하고 있었다는 말이었죠. 길을 걸으면서 통화하다가 눈시울이 붉어졌던 것은 안 비밀입니다.ㅎㅎ


인간극장은 안녕이었지만, 지금도 사람들의 이야기를 다큐멘터리로 담고 있습니다. 사실 프로그램이라는 그릇만 다를 뿐, 안에 담기는 내용은 똑같습니다. 평범한 사람들의 특별한 이야기. 80세를 훌쩍 넘기셨던 노학자의 삶에도, 지방 도시에서 태권도 사범을 하는 20대 청년도, 지역 소멸이 걱정되는 곳에 귀농한 시골언니에게도, 갓 창업해 식물 가게를 운영하는 사장님에게도 각자의 특별한 스토리가 있었습니다. 다만, 그 모두가 자신의 삶이 너무 바빠서, 혹은 내 삶에 어떤 이야기가 있는지 찾아내지 못해서 세상에 그 이야기를 꺼내놓지 못하고 있을 뿐이었죠.

<인간극장> 이후에도 많은 분들의 '인간'적인 '이야기'들을 계속 다큐멘터리로 담고 있습니다

많은 분들이 인간극장에 대본이 있냐, 연출이 있냐 물어보시더라고요. 다른 분들이 어떻게 하시고 있는지는 잘 모르지만, 적어도 제가 아는 분들은, 연출을 거의 하지 않으십니다. 대신 더 진중하게 기다리며, 세밀하게 관찰합니다. 왜냐면 믿음이 있거든요. 분명 모두의 삶에는 이야기가 있다고 말이죠. 그리고 감사하게도 제가 만난 모든 출연자 분들은 그 이야기를 솔직하게, 진실하게 꺼내 주셨던 것 같습니다. 정말, 다시 한번 이 자리를 빌려 감사를 표현하고 싶습니다.


2015년 5월 27일.

마지막 인간극장 3부가 방송된 날 태어난 딸.

그리고 2015년 5월 29일.

마지막 인간극장 5부 방송 종료.

그렇게 저와 인간극장의 인연은 막을 내렸습니다.


지금 이 글을 읽는 여러분의 삶에도 분명 이야기가 있을 거예요. 언젠가 그 이야기를 세상에 꺼내게 될 때, 인연이 닿아 만날 수 있게 된다면 참 좋겠습니다. 잠시 쉬었다가 인간극장이 아닌 곳에서 만난 또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로 다시 돌아오겠습니다. 감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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