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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여 Aug 31. 2023

중년소년의 잠깐 트레블로그

14.Calzadilla de los Hermanillos - Leon 

순례길 DAY 19. Calzadilla De Los Hermanillos - Mansalla de las Mulas

지구 구석구석의 사람들이 이곳으로 모였다. 나는 의사, 공장 노동자, 심리학자, 간호사, 신부, 요리사, 건축자, 컴퓨터 프로그래머, 기업가, 학생들과 함께 걷고 있다. 20~80대 사람들. 모든 종교인, 무신론자, 영적 추구자 그리고 순례길 위의 '신' 또는 '의미'에 완전히 관심이 없는 일부 사람들. 

어떤 사람은 인생을 버리기로 결심하고, 누군가는 모든 것을 버리고 또 직장을 그만두고, 관계와 가족을 떠나고, 엄청난 돈을 쓰고, 지구를 가로질러 이곳으로 왔다. 가슴을 뭉클하게 만드는 수많은 사연들. 여기에서 벌어지는 아름답고 연약한 인간 생명체들 사이의 연대를 뭐라고 설명해야 할까? 우리 모두 길 위에서 나름의 해답을 찾을 수 있길 바란다. 


나 역시 순례길에서 해답을 얻을 수 있을 거라 믿었던 질문들이 있었다. 하지만 길을 걸으며 삶의 문제들을 들여다보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길 위에서 생각은 떠다녔고 그저 꼬리에 꼬리를 무는 질문들이 계속 머리를 어지럽혔다. 그러다 어떤 순간에 더 이상 과거의 삶에서 길어온 우물에 자신을 비춰보지 말자고 다짐하게 되었다. 생각은 흘러가게 내버려 두고 순례길을 온전히 즐기는 것. 이곳에서는 육체를 정신보다 더 중요하게 여기고 몸이 하는 이야기를 들어보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했다. 

생각을 흘러가게 내버려 두기 시작 하면서 확실히 뭐든 그냥 좋았다. 나는 길을 걸으면서 어떤 한 가지 생각에 골똘히 빠지기도 하고 이런저런 잡생각들에 정신이 팔리기도 했다. 멋진 풍경이 나타나면 사진을 찍고 멍하니 앉아서 바라보기도 했다. 가끔 친구들과 걸으면서 대화를 나누지만 거의 대부분의 시간은 혼자 걸었다. 천천히 나의 몸과 정신을 들여다보며 대화하는 시간들이었다. 스스로에 대해 알아가는 시간들이었다. 길 위에선 하늘이 나에게 말을 건다. 먼저 떠난 그리운 사람이 말을 건다. 음악이 말을 건다. 문학이 말을 건다. 그것으로 충분히 좋았다. 

순례길 DAY 20. Mansalla de las Mulas - Leon

어느덧 순례길을 떠난 지도 이십일이 지났다. 건조한 메세타 고원을 지나면서 나의 비염과 재채기 증세가 더 심해졌다. 캔디형 기침 억제제를 먹고 따듯한 물을 지속적으로 마셔야 겨우 잠을 잘 수 있는 상황이었다. 밤새 통제할 수 없는 기침 때문에 곤히 자는 동료들에게 폐를 끼치는 것 같아서 미안했다. 계속된 걸음에 지친 건 나뿐만이 아니었다. 순례길 여정에 들리는 세 번째 도시 레온에서 나와 친한 순례길 동료인 페페, 프레데리케, 마르코와 함께 에어비엔비 숙소를 잡아서 하루 더 쉬었다 갈 생각이었다. 페페는 이제 그 무거운 짐을 동키 서비스를 이용해 다음 숙소로 미리 배송할 계획이었다. 17~8kg에 달하는 짐을 지금까지 묵묵히 매고 온 것도 대단한 일이다. 마침 부활절 기간이라서 레온에서도 세마나산타(Semana Santa) 축제가 한창이었다. 보수적인 가톨릭 문화가 뿌리깊이 자리 잡은 스페인에서도 세마나산타는 가장 종교적인 색깔이 짙은 축제다. 나는 레온에 도착해 언젠가 친구들에게 해먹이고 싶었던 얼큰한 고추장찌개를 저녁식사로 대접했다. 저녁식사를 마친 우리는 내가 독일삼총사라고 불렀던 대학생 3명과 프랑스 리옹에서 온 이반과 함께 레온 시내 투어를 나섰다. 거리에는 세마나산타를 축하하기 위해 거리로 나온 수많은 인파로 가득했다. 

고추장찌개와 참치회같은 아보카도 사시미
울고있는 마리아 성상

특이한 복장의 사람들이 성상을 메고 행진하는 파소(Paso)와 그 뒤를 따르는 악대의 행렬을 지나쳐 우리는 레온의 댄스클럽으로 향했다. 이 행진을 구경하는 게 세마나산타의 주요 행사인 것 같았다. 하지만 우리들은 성상들의 행렬에는 그다지 관심이 없었다. 길었던 여행에서 쌓인 정신적 피로를 좀 풀고 느슨해질 필요가 있었다. 댄스클럽에서는 라이브 연주가 한창이었다. 스페인 스타일의 음악을 연주하는 기타 그룹이었는데 연주실력이 상당했다. 우리는 이곳에서 신나게 춤을 추고 맥주를 마시며 시간을 보냈다. 새벽 1시경에 다시 거리로 나가보니 레온의 젊은이들은 다 거리로 나온 듯했다. 도시전체가 술을 마시는 느낌이랄까. 그만큼 왁자지껄 했고 좁은 골목 상점마다 술 마시는 사람으로 지나갈 틈 없이 가득 찼다. 부활절이라는 이름이 무색할 만큼 레온의 젊은이들에게는 놀고먹어 재끼는 축제에 가까운 듯 보였다. 술도 들어가고, 배도 불렀겠다. 잠이 쏟아졌다. 우리는 더 놀고 싶어 하는 몇몇 친구들과 작별하고 숙소로 돌아왔다. 

거실방에 배정된 나는 독일 삼총사 중 한 명인 토비아스와 나란히 누워 잠을 자게 되었다. 토비아스는 내일 아침 바로 다음 도시로 떠날 예정이었기에 오늘 나와는 마지막 날 이었다. 우리는 이런저런 이야기를 많이 나누었다. 토비아스는 약간 괴짜미가 있는 과학자 스타일 친구였는데 그날 우리는 아주 깊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아직 20대 초반인 토비아스의 꿈. 토비아스가 순례길에서 경험한 것들에 대한 인상. 나의 인생이야기. 뜬금없이 토비아스가 내게 '넌 좀 깊이가 있는 사람인 것 같아'라고 했다. 그래서 이렇게 대답했다. 

'내가 실패를 많이 해서 그렇게 느끼나 보다.' 

'열심히 살아왔고 되도록 최선을 다했지만, 정말 정말 끝까지 최선을 다하지 않았던 건 아닐까 하는 후회 같은 게 마음을 멍들게 했던것 같아. 근데 그런 실패들이 결국 나를 만든거니까 받아들여야지.'

우리는 새벽이 올 때까지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토비아스는 내가 눈을 떠보니 이미 짐을 챙겨 나가고 없었다. 우리는 언제 또다시 만날 수 있을까? 독일 삼총사가 무사히 순례길을 마쳤기를. 


순례길 DAY 21. Leon 

이날 우리는 늦은 아침에 일어나 간단한 아침을 먹고 레온 시내로 나섰다. 청명한 날씨와 축제를 맞이하는 사람들의 밝은 기운 때문에 우리는 이날 왠지 들떴었다. 하루 동안 레온시내에 사는 사람들은 다 만난게 아닐까 싶었다. 오늘 우리는 순례자라기보다는 관광객에 가까운 마음으로 푹 쉬고 거리를 둘러보았다. 야외 주점에서 상그리아로 낮술을 몇 잔씩 마시면서 따듯한 햇살아래서 여유를 만끽하며 수다를 떨었다. 순례길을 걸으며 도시에 하루 정도 머물다 가는것도 좋다고 어디선가 읽은 기억이 난다. 나에겐 특히 레온이 하루 더 머물기 적당한 도시라는 생각이 들었다. 다른 도시보다 특별해서라기보다는 20일이 넘는 순례길 일정동안 지친 몸을 쉬어가고 짐도 재정비하기 용이하기 때문이다. 물론 레온 자체도 매우 매력이 있는 도시이기도 하다.  

오늘은 세마나산타의 하이라이트인 종려주일을 기념하는 날이다. 종려주일은 나사렛 예수가 자신을 따르는 제자와 무리들과 함께 예루살렘으로 입성하는 것을 기념하는 주간을 말한다. 이날부터 7일 뒤에 예수가 십자가에 못 박히고 다시 부활하는 과정인 고난주간 기간까지 부활절 행사는 이어진다. 유럽에서 부활절은 큰 명절중의 하나지만 내가 살았던 네덜란드에서는 그냥 휴일이나 방학같은 느낌이였지 스페인처럼 뻑쩍지근한 축제는 없었다. 이날은 예수의 예루살렘 입성을 축하하는 성상의 행렬이 이어질 예정이었다.  우리는 레온시 광장 터 좋은 곳에 자리를 잡고 성상 행렬들을 구경했다. 대낮에 보니 성상들은 밤에 보는것보다 더 화려했고 성상을 메고 걷는 사람들의 의복은 기괴했다.   

가톨릭 색채가 너무나 강렬한 스페인이라서 그렇게 느끼는 건지, 일반적으로 그런 건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성모마리아의 존재감이 참 대단하다는 생각을 했다. 이날도 마찬가지였다. 뭐랄까. 예수와의 관계가 역전된 느낌이랄까. 어린이 예수를 안고 있는 마리아 그림부터 스페인 성당에서 숱하게 보게 되는 아기예수를 돌보거나 눈물 흘리고 있는 마리아 성상 등에서 그런 모습을 발견한다. 예수는 인간의 몸을 입은 신이고 마리아는 한낱 인간에 불과할 텐데 예수가 지나치게 마리아를 의존하는 존재로 그려지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아무리 마리아가 예수의 어머니이고 최초의 성인이라고 하지만 신격화의 정도가 지나친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정도였다. 아무래도 나의 개신교적인 종교 배경에서 마리아에 대해 거의 다루지 않는 데다가 마리아의 신성을 전면적으로 부정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이런 의문점을 유럽 친구들에게 질문하면 원래 그래왔던 거라서 한 번도 마리아와 예수의 관계나 그려지는 모습에 대해 궁금증을 가져 본 적이 없다는 대답이 대부분이었다. 

레온대성당 내부의 마리아, 예수 성상

나는 어떤 이유로 가톨릭과 개신교에서 마리아를 바라보는 차이가 이렇게나 다른 건지 매우 궁금해졌고 한국에 돌아가면 관련 책을 좀 더 읽어보고 싶어졌다. 만약 로마시대의 그리스도 공회의에서 마리아를 신격으로 인정한다는 논의가 있던 시절에 어떤 급진적이고 정치적으로 유망했던 한 여성의 능력이 작동해 이 모든 일이 이뤄진 거라면, 페미니즘 역사를 새롭게 쓰는 꽤나 멋지고 흥미진진한 이야기가 될 수 있지 않을까라고 상상했다. 한국에 돌아와 이 점에 대해 좀 더 알아보니 궁금증이 어느 정도 해소 되었다. 

4세기경에 로마 카타콤에 그려진 성모자 성화 

초대교회 전승에 마리아는 지상에서 생애를 마친후에 육신과 영혼이 예수에 의해 천국으로 들어 올림을 받았다는 이야기가 전해 내려온다고 한다. 그리고 초기 기독교 박해시기인 2-3세기부터 로마 공동무덤에 성모마리아와 아기예수를 그린 그림이 있는 것으로 보아 초기 그리스도인들은 마리아가 고통받는 인류와 예수를 중개하는 연민적 존재로 인식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다신교가 일반적이었던 당시 로마사람들의 정서적 종교관도 이러한 인식론에 영향을 미치지 않았을까? 313년 기독교가 공인된 이후 제3차 세계공의회인 에페소 공의회에서 정식으로 성모마리아의 신성을 인정하는 '테오코토스'라는 교의가 선포되었다. 이를 토대로 성모 마리아 축일이 로마 전례력에 포함되는 등의 과정을 통해 마리아는 실질적인 '신적 존재'가 된 것이다. 하지만 16세기 종교개혁 과정에서 마리아론에 대한 전면적 비판과 옹호가 대립했다. 개혁파는 마리아론의 미신적 요소와 비성서적 내용을 비판했고 이후 마리아론은 종교개혁파와 반대파의 정체성으로까지 발전했다. 이후 가톨릭과 개신교의 마리아관은 돌아갈 수 없는 강을 건너게 된다. 가톨릭은 20세기 들어 성모승천을 교의로 선포하였고, 제2차 바티칸 공의회에서는 마리아에게 '교회의 어머니'라는 호칭을 헌정했다. 성모승천이 마리아 사후 거의 1900년 동안 로마 가톨릭에서 정식 교의가 아니었다는 점도 놀라운 사실이다. 

한편 기독교에서는 마리아는 신학적 분야를 인정하지 않고 모순을 지닌 인간이며, 단지 신실한 여인으로 예수의 어머니로서 여기는 견해를 기초로 한다. 칼뱅과 루터의 개혁교회에서는 마리아를 주님의 어머니로서의 존재를 인정하지만 공경하거나 기도, 찬양을 전면 부정한다. 


기독교 사회에서 마리아를 어떻게 바라보느냐의 시선도 중요하지만 안타깝게도 가톨릭이나 개신교나 여성 그리고 성평등을 바라보는 보수적인 시각은 큰 차이가 나지 않는다. 과학발전과 새로운 성개념, 그리고 여성지위의 향상은 이 두 거대 종교에게 부담처럼 느껴진다. 비단 기독교와 천주교만의 문제가 아니다. 이슬람도 마찬가지다. 가부장적 제도, 낙태문제, 양성애, 권위적인 사제들, 여성사제서품 불용, 페미니즘과의 충돌 등등.. 

안타깝게도 종교는 단 한 번도 여성의 얼굴을 한 적이 없다. 하지만 그나마 마리아론은 어찌 보면 중세와 르네상스를 거쳐오며 일말이라도 유럽사회의 여성지위 향상에 기여한 바가 있지 않을까? 나는 왠지 그랬을 거라고 상상해 본다. 에페소 공의회에서 활약한 어떤 멋진 여성정치인 혹은 유력 정치인의 현명한 아내의 영향력을 상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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