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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우주 Oct 21. 2023

첫 회의에 참석했습니다.말걸지 말아주세요.

오늘 회의 내용 잘 적었나요? 뭐라고 했는지 요약해보세요.







사수를 따라서 회의실에 가기 전에 깜빡한 것이 있다. 수첩을 왜 안 가져왔냐는 말에 헐레벌떡 뛰어가서 수첩을 가져왔다. 물론 내가 회의의 정식 참석 인원은 아니었으나 회의 분위기를 보라는 사수의 말을 따라 첫 회의에 참석했다. 어색한 공기가 흐르고, 나는 무엇을 어찌할 줄 몰라서 어색해했다. 나만 어색해했다.


내 사수는 안된다면 안된다고 이야기하는 스타일이었다. 이건 이렇게 안되냐는 요청에는 안 되는 근거를 정확히 들며 거절했다. 나는 이런 모습이 신기했다.  거절 자체보다는 그 '근거'가 신기했던 것이다. 얼마큼의 노련함이 있어야 생각하지도 않고 바로 근거를 댈 수 있는 것일지 궁금했다.

자신보다 높은 사람이 회의에 참석해도 할 말을 다 하는 사수가 부럽기도 했다.







생각해보면, 나는 내 의견을 피력한 적이 별로 없다. 학창 시절 내내 반장 한번 한적 없다. 나는 시키는 것을 잘하는 학생이었고, 그 이상은 바라지 않았다.

그건 대학생 때도 마찬가지다. 교수님이 시키는 과제는 정말 잘하고, 학점도 잘 받는다. 하지만 내 의견은 이렇게다고 수업시간에 이야기해본다거나 발표해본 적이 거의 없다.  그래서 나는 공식적인 자리에서 나의 의견을 정리해서 단호하게 말하는 것이 어려웠다.

첫 회의를 마친 후에 ' 아 이런 회의를 계속해야 하는 게 회사인가. 나 어떡하지'라고 걱정했던 기억이 난다.

걱정을 가득 안고 어떻게 쓴지도 모르는 수첩을 보면서 자리에 앉았다.

사수가 나를 불렀다.

 "오늘 회의 어땠어요? 오늘 회의 내용이 뭔지 요약 좀 해볼래요?"


순간 머리가 하얘졌다. 분명 회의는 이렇고 저렇고 해서 잘 마무리됐지만, 나는 머릿속에 하나도 남지 않았다.

가끔 큰소리를 낸 담당자의 표정만 기억날 뿐이다.

수첩을 뒤적이면서 정리되지 않는 말을 했던 것 같다. 결론은 잘 모른다는 것으로 귀결됐다.

그때 이후로, 회의에 정식으로 참석하기 전까지 ( 적어도 3개월 ) 그날의 회의 내용을 정리하는 것을 가장 먼저 했다.




시간이 지나고 나니 회의 내용을 명확하고 간단하게 정리할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깨닫게 되는 순간도 왔다. 그리고 애써 정리하려고 노력하지 않아도, 중요한 것은 적게 되고, 기억하게 되었다. 기억하는 이유는 내가 그 업무를 해야 하기 때문이었다. 방어해야 하는 이유는 방어하지 않으면 내가 해야 하기 때문이었다.

신입사원이었던 나는 그 단순한 원리를 몰랐다.

모든 회의는 '그래서 결국 이 일을 누가 하냐?'의 문제였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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