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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우주 Sep 25. 2023

회사에서 우는 거 아니에요

김사원은 독한 것 같네. 울지도 않고 말이야.


"왜 저한테만 그러세요? 이러시면 안 되죠" 고객사의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업무를 맡은 IT 회사 사무실에는 하루에도 몇 번 큰소리가 오갔다. 프로그램을 이용하면서 뭐가 안된다 싶으면 바로 전산실에 전화를 하기 때문에 전화기가 울리면 팀원들은 항상 긴장했다. 그리고 그 전화의 끝은 항상 "이 사람은 매일 이래. " "말이 안 통해"라는 하소연이었다. 고객사 담당자를 잘못 만나게 되면 고생을 많이 한다고 선배들이 말해줬다. 무턱대고 요구하는 사람, 말을 바꾸는 사람, 마감기한을 너무 촉박하게 말하는 사람 등 사람을 괴롭히는 유형도 다양했다. 그럴 때 울지 말고 졸지도 말라고 말해주시기도 했다. 하지만 사실 나는 고객은 무섭지 않았다. 나는 우리 팀이 가장 무서웠다.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개발하는 것보다 '신입사원답게' 해야 하는 잡무를 처리하는 센스 있는 직원이 되는 게 더 어려웠다.


출근 이틀차에 선배가 알려준 첫 업무는 사무실을 세팅하는 업무였다. 식물에 물을 주고, 신문을 회의 탁자 위에 올려다 두는 것, 그리고 탕비 공간에 있는 과자를 정리해 놓고 채워놓는 일이었다. 업무가 시작하는 9시 전에 해야 하는 일이었기 때문에 신입사원은 8시까지 사무실에 도착해야 했다. 8시 40분쯤 도착하는 선배들보다 늦게 오면 크게 혼났다. 하루는 같은 팀 동기가 8시 50분쯤 도착한 적이 있었는데, 사수보다 늦게 온다고 대놓고 꾸지람을 들었다. "이런 식으로 기본적인 것도 안 지킬 거예요? " 옆에서 보다 보니 조금이라도 늦으면 나도 저렇게 혼날까 봐 겁먹고 꼬박꼬박 8시에 맞춰 왔었다.

하지만 마음속으로는 사실 엄청나게 분노가 치밀었었다. 어렸을 때부터 마음에 들지 않은 일이나, 억울한 일이 있으면 표현을 하는 편이었던 나는 이런 시스템에 불만을 가지고 있었다. 특히 마음에 들지 않는 일은 '식물에 물 주기'와 '과자 채우기'였다. 내가 가지고 키우는 식물도 아닌데, 식물이 마르기라도 하면 그건 내 탓이 되는 게 싫었다. 그리고 과자도 다 같이 먹는 건데 그건 당연히 신입사원이 해야 하는 것처럼 느껴지는 것도 짜증이 났었다. 그러나 이곳은 회사기 때문에 하기 싫다고 안 할 수는 없었다. 당연히 해야만 했다. 그때 처음으로 드라마에서 나오는 '어른'이 된 기분이 들었다. 짜증이 나지만, 해야 하는 일은 그냥 하면 되는 것이었고 퇴근 후에 친구를 만나거나 집에 가면 회사 험담을 하기 시작한 어른이었다. 드라마를 보면 많이 나오는 직장인의 모습이 오버랩되었다. 

팀원들은 싹싹하게 잡무를 처리하는 신입사원을 원했으나 그렇지 못한 나는 눈치를 많이 보기도 하고, 핀잔 어린 잔소리도 들었다. 그럴 때는 눈물이 나기보다는 마음속으로 분노하는 정도로 그쳤다. 그래서인지 선배들은 혼내도 울지 않는 나에게 이렇게 말했다. "가만 보면 김사원은 독한 것 같아. 이렇게 혼나도 울지도 않고 말이야." 






너가 담당자 아니야?


그러나 내가 언제 우는지 알게 되는 순간은 금세 다가왔다. 아무리 크게 분노해도 잘 울지 않았는데, 서운할 때는 그렇게 눈물이 나는 것이라는 걸 말이다. 사수 옆에서 업무를 하나하나 배우면서 일을 하던 일 연차였다. 그 당시에 나는 아무리 해도 해도 실력이 늘지 않는 기분이 들었다. 매번 하던 업무는 조금씩 쳐낼 수 있었지만, 새로운 전화 문의가 오거나 나의 의견이 필요한 회의의 순간에는 얼음이 되었다. 다행히도 평상시에는 70% 정도만 알아도 되는 업무가 대다수였고, 나는 이 정도면 되지 않을까라고 생각하며 편하게 업무를 하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내가 운영하던 프로그램에서 에러가 나서 확인을 해야 하는데 도무지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혼자 끙끙 앓다가 선배를 찾아가며 조심스럽게 말씀드렸다. "책임님 이걸 어떻게 해야 할까요? " 그리고 약간 화가 난 목소리의 대답이 돌아왔다.  "너가 담당자 아니야? 이 정도면 너가 담당자인데 잘 알아야 하지 않겠냐. 언제까지 이렇게 알려주고 물어보고 해야 하냐 "

말 자체만 보면 맞는 말이었었다. 그러나 그 목소리에 담긴 다그침이 그 당시에는 서운했던 것 같다. '서운함'이 밀려오니 갑자기 눈물이 밀려오기 시작했다. 선배들이 아무리 혼내도 아무렇지 않았던 감정이 갑자기 요동쳤고, 아무렇지 않은 척 자리에 돌아갔지만 화장실에 가서 눈물을 훔쳤다. '아니 나 정도면 그래도 다른 신입보다는 열심히 하는 거 아니야? ' '그 것좀 알려주는 게 그렇게 힘든 건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다행히도 눈물을 한 바가지 흘리고 나서 보니 별 일이 아니었다. 서운했지만 나는 다시 할 을 해야 했다. 아무렇지 않은 척 자리로 돌아가서 알려주신 대로 업무를 처리하고 마무리했던 회사 첫 눈물의 순간이었다. 





대학생 때까지는 내가 선택한 인간관계와 환경에 놓여있었다면 회사는 그런 자비로움이 없다. 선배들에게 혼나기도 하고, 사람들에게 화내기도 하고, 서로 싸우기도 한다. 말 한마디에 서운한 순간도 많다. 하지만 그런 감정들이 생겨난다 해도 섣부르게 사직서를 제출할 수 없는 공동체다. 그 공동체 안에서 회사 생활을 하다 보면 그 안에서 평상시에 돌아보지 않았던 나의 감정을 자주 마주치게 된다.  신입사원으로 업무를 배우며 나에게 '서운함'이라는 감정이 나의 마음을 요동치게 하는 1순위라는 걸 깨달은 것처럼 말이다. 

이제는 직장인 8년 차가 되었다. 신입사원에 울었던 그때 이후로 회사에서 운 기억이 없다. 시간이 지날수록 '서운함'이라는 감정이 많이 사라졌던 것 같다. 점점 선배다 다그치는 상황이 줄어들었고, 그건 반대로 알아서 자신의 몫을 해내라는 말과 똑같기도 하였다. 돌이켜보면 나에게 모진 말을 했던 그 선배의 마음이 어땠을지, 쉽지 않았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100% 는 아닐지 몰라도 '애정'이 들어가 있다는 걸 조금이나마 이해하게 됐다.

지난주 매일 지각하는 신입사원에게 이런 이야기를 조심히 말했다. 이 말 도 할까 말까 하다가 괜히 다른 선배에게 크게 혼날까 봐 용기 내서 한말이었다. 내각 그랬던 것처럼 서운해할까 봐 이렇게 이야기를 시작했다.  "서운해하지 말고 들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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