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이 옷으로 주세요.
신입사원으로 회사에 입사한 후에 내가 가장 많이 한 것은 바로 '옷' 사는 것이었다. 그중 가장 옷을 사러 많이 들린 곳은 인터넷 쇼핑몰이나 백화점이 아니었다. 내가 가장 많이 옷을 사기 위해 들린 곳은 바로 홈플러스다.
집 주변에 있는 홈플러스는 적당한(?) 여성복 브랜드가 많았다. 난 거기서 비즈니스 캐주얼이 뭔지 잘 모른 체, 나에게 어울리는 옷이 뭔지 모른 체 옷을 무작정 사기 시작했다. 옷이 이뻐서 사는 게 아니라 '무난하면 ' 샀다. 검은색 슬랙스, 남색 슬랙스를 여러 장 구매하곤 했다.
회사에 입사한 후에 걱정됐던 요소 중 하나는 '옷'이었다. 대학생 시절에는 인터넷 쇼핑몰에서 옷을 자주 사곤 했었다. 하지만 아무래도 대학생 시절 자주 들린 쇼핑몰은 학생티가 났다. 그리고 배송이 늦는 경우도 허다했다. 회사는 오늘도 가고 내일도 가야 하기 때문에 느긋하게 인터넷 쇼핑을 기다릴 수 없었다. 그래서 조바심과 함께 옷을 사야 한다는 의무감으로 옷을 샀던 기억이 있다.
그때 이상하게도 옷을 사고, 입을 때 설레거나 행복하진 않았던 것 같다. 분명 소비는 즐거운 일인데 말이다.
나는 어울리지도 않아 보이는 옷들을 무난하다는 이유만으로 구매하는 게 마음에 들지 않았던 모양이다. 타고난 패션 센스가 없던 나는 슬랙스에 어떤 상의가 잘 어울릴지도 고민하곤 했다. 그런 나에게 주 5일 옷을 돌려가며 입어야 하는 건 또 다른 업무 정도의 부담감을 주었다.
신입사원일 때 옷을 구매하며 중요하게 본 포인트는 두 가지였다. 안에 밴딩이 있는지와 하나로 뽕을 뽑을 수 있는지 여부였다. 바지나 치마 안쪽에 허리 밴딩이 있는 옷을 입은 후 올레! 를 외쳤었다. 하루 종일 앉아있기에 이렇게 편할 수가 없었다. 허리 밴딩이 있다면 우선 30점 정도는 먹고 들어갔다.
거기에다가 무채색에 이 바지에도 저 바지에도 어울릴만한 상의라면 더더욱 환영이었다. 이번 주 월요일에 입고, 다음 주 월요일에 다시 입으면 되는데 얼마나 좋은가!
그런 시절을 지나 회사에 입고 갈 옷 걱정을 하지 않게 된 지 근 2년 정도 된 것 같다. 처음 회사에 입사할 때만 해도 비즈니스 캐주얼로 입고 갔어야 했다. 하지만 조금씩 문화가 바뀌면서 지금은 청바지를 입고 출근해도 그 아무도 신경 쓰지 않는다. 집에 있던 블라우스는 어디 장롱 구석에 박혀있을 것이다. 청바지에 후드티, 맨투맨을 입고 회사에 출근하는 길이 어색하지 않다.
옷이 주는 무게감을 안다. 옷을 단정하고 차려입으면 확실히 몸에 긴장이 된다. 적당한 긴장감은 업무 할 때 좋은 영향을 줄 때도 있다. 그렇지만 반대로 또 옷이 편해지면 회사를 가는 부담감도 조금 줄어드는 것 같다. 밥벌이하러 가지만, 마음은 조금 더 편해진다. 지금의 나는 살짝 편안한 이 옷이 주는 무게감이 좋다.
가장 좋은 것은 억지로 옷을 사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