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리님 여기 자리 있습니다. 여기로 오세요
회사 사내 식당의 자리 경쟁은 치열했다. 12:00 , 12:30 이렇게 시간대를 나누긴 했지만 소용없었다. 은근슬쩍 점심시간이 되기 전에 올라간다거나, 한 명이 미리 가서 자리를 맡아 놓는 장면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었다. 나도 마찬가지였다. 식당 문을 열자마자 전체적인 분위기를 파악했다. '오늘은 사람이 좀 적네' 하는 날은 기가 막히게 월급날이었다. 월급날에는 많은 사람들이 나가서 점심을 사 먹었고, 그때는 조금 여유롭게 먹을 수 있었다.
점심 식사를 사수랑 같이 먹어야 하는 분위기는 요즘 들어서 많이 사라졌다. 혼자 점심을 먹는 사람도 많고, 나처럼 몇 명이서 메뉴 취합을 해서 배달을 시켜 먹는 경우도 많다. 하지만 신입사원이었던 당시에는 같이 일하는 그룹끼리 점심식사나 회식, 커피 타임을 가지는 '공동체'가 되는 경우가 많았다. 그리고 나도 자연스럽게 그 공동체에 속해 있었다. 내가 속한 공동체는 소소한 모임 같았다. 나까지 포함하여 총 3명이었다. 3명이서 같이 점심을 먹고, 산책을 하고, 커피를 마셨다. 팀 전체 회식이 아닐 경우에는 각 그룹 별로 회식을 했고, 그때마다 3명이서 회식을 하러 갔다.
점심시간이 되면, 나는 우리 공동체의 자리를 찾기 위해 눈을 열심히 굴렸다. 세 자리가 이쁘게 딱 나오면 좋지만 그럴 가능성은 희박했다. 두 명이 먹고 있는데 거의 다 먹었으며 그 옆에 한 자리가 빈 경우, 그 경우가 적당했다. 슬며시 그쪽으로 가서 조금 기다리다가 "대리님 여기로 오세요!!"라고 외치곤 했다.
첫 점심시간에는 어색한 분위기를 없애기 위해 정말 이런저런 사소한 이야기를 던졌다. 나는 주말에 무엇을 했고, 오늘 오전에는 어떤 일이 있었으며, 남자 친구와 먹었던 음식이 정말 맛있었다는 이야기와 같은 것이었다. 평상시에 굳이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지 않는 성경이었음에도, 그때는 필사적으로 대화 주제를 꺼냈던 것 같다. 그러나 대화 주제는 금세 고갈됐고, 결국 업무의 연장선으로 변했다. 점심시간 전에 오전에 했던 업무에 대한 이야기를 주로 했기 때문이었다.
같이 점심을 먹는 것이 항상 불편한 것만은 아니었다. 평상시에 업무를 하면서 할 수 없는 이야기도 많이 했다. 물어보고 싶은 업무가 있으면 그때 슬며시 물어보기도 했다. 업무를 하면서 느꼈던 '고충' 이런 게 적절한 주제가 됐다. " 저 대리님이 이렇게 대답하니깐, 정말 난감한 상황이 많았어요" 이런 식으로 업무 할 때 있었던 일화를 꺼낼 수 있었다.
이직을 한 이후에는 점심 회식을 제외하고는 팀원들과 다 같이 점심을 먹어본 적이 없다. 코로나 때문에 다 같이 먹는 분위기가 많이 사라진 것도 한몫한다. 그리고 이직한 회사의 분위기는 가까이에 앉아 있는 사람들끼리 편하게 먹는 분위기였다. "전 오늘 따로 먹을게요"라고 말해도 전혀 이상할 게 없는 분위기라, 나는 어느 순간 쓰윽 빠져 배달을 시켜먹고 있다. 거의 1년간 배달만 시켜먹었더니 배달의 민족 VIP가 되었다. 이렇게 소수의 인원과 점심을 편하게 먹고, 남은 시간에 쉬다 보니 점심시간이 이렇게 길었다는 걸 느끼게 된다. 가끔 왁자지껄 했던 점심시간이 생각나긴 하지만, 지금은 편안하고 조용한 점심시간도 즐겁다.
직장인에게 주는 잠깐의 자유, 점심시간이니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