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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우주 Dec 03. 2022

주목해주세요. 건배사 올리겠습니다!

 '신입사원'으로 건배사 올리겠습니다. 선창 부탁드립니다!



아직도 잊히지 않는 첫 회식의 기억은 바로 건배사다. 선배들로부터 단단히 준비를 하라고 들어서 하루 종일 긴장이 됐다. 사람들 앞에서 발표밖에 해본 적이 없는데, 유머러스하게 건배사를 할 자신이 없었다. 며칠 전부터 인터넷에 '신입사원 건배사'를 검색해봤다. 내가 들어도 유치한 건배사 밖에 없었다. 가끔 센스 있어 보이는 글도 있었지만, 난 그걸 잘 소화해낼 자신도 없었다. 드디어 회식 당일, 같은 팀의 동기와의 메신저 대화 주제는 건배사 이야기뿐이었다. 동기는 랩을 할 예정이라고 했다. '랩을 한다고?' 그 동기의 속을 도무지 알 수 없으나, 그 속을 알아도 랩을 하는 건 달라지지 않으니 굳이 물어보지 않았다. 나는 나의 살 길을 찾아야 했다. 그나마 가장 무난하고 단순한 것을 찾아야 한다. 팀장님이나 선배들에게 개성 있다고 칭찬받고 싶은 생각은 없었다. 난 그저 그날을 무사히 넘기고 싶었다.


그래서 결국 선택한 건배사는 이것이었다. '신입사원'으로 만든 건배사였다. 물론 인터넷에서 가져온 것이었다. 너무 촌스러워보이지도 않고, 외우기에도 어려움이 없어보였다. 회식으로 삼겹살을 먹었는데 고기가 목구멍으로 넘어가지를 않았다. '언제 건배사를 하라고 시킬까?' '노래를 시키면 어떡하지?' 등 오만가지 생각이 다 들었다. 그렇게 1차 회식이 끝나갈 때 쯤 팀장님이 일어나셨다. "이번에 들어온 신입사원 2분이 건배사를 하려고 합니다. 다들 주목해주세요." 그 때부터 내 심장은 미친듯이 요동쳤고, 걱정할 시간도 없이 일어나서 건배사를 시작했다.


신! 신입사원입니다

입! 이쁘게 봐주세요.

사! 사랑합니다 선배님

원! 원샷


후들후들 목소리는 떨렸고, 소주 잔을 든 손도 어찌할 줄 을 몰랐다. 그래도 팀원 모두 웃으면서 적당한 반응을 해주셨고, 나는 쑥스러운 표정으로 자리에 앉았다. 그다음 차례인 동기는 알 수 없는 랩을 했다. 몽환의 숲으로 기억하는데, 기억에 남진 않았다. 아직 쿵쾅거리는 가슴을 진정시키느라 나는 정신이 없었다.


회식에서 건배사만 준비하다보니 막상 고려하지 못했던 부분이 튀어나왔다. 바로 '술문화' 였다. 팀장님이랑 선배들에게 어떻게 술잔을 돌려야 하는지 몰랐다. 부모님은 술을 드시지 않았고 그러다 보니 나도 자연스레 술을 멀리 했다. 대학생 때 친구들과 마신 적은 있지만 취할 정도로 마신 적은 없었고, 술은 어떻게 따르는지도 헷갈렸다. 어설퍼하며 어버버 하는 나와 달리 동기는 "술 한잔 따라 드려도 될까요? 잘 부탁드립니다! " 하며 당차게 술잔을 들고 다녔다. 능숙하게 돌아다니는 동기의 모습을 보며 위축되었다. 당차지 못한 신입, 쭈뼛쭈뼛한 신입은 다른 사람과 비교되기 마련이다. 원래 차분하고 조용조용한 성격이었지만, 회사에서는 처음부터 당차고 활기찬 신입을 원하는 것 같았다. 회사에서 사랑받지 못할 성격을 가졌다는 괴리감에 괴로워한 적이 많다.




선곡하겠습니다. 다비치의 8282 틀어주세요!


삼겹살로 기름칠을 한 이후에, 2차는 근처의 노래방이었다. 사원들은 주변 노래방에 자리가 있는지 탐색에 나섰고, 대리급의 선배들은 슬금슬금 눈치를 보면서 사라졌다. 이날 나는 유령처럼 스스르 사라지는 기술을 가진 선배들을 처음 봤다. 그건 분명 엄청 난 기술이었다. 

그렇게 팀장님과 신입사원 2명 그리고 노래방에 갈 운명에 놓인 몇몇 팀원들은 노래방으로 향했다. 도착한 노래방은 요즘 유행하는 깨끗한 코인 노래방과는 거리가 멀었다. 정말 어른들이 올것 같은 오래된 노래방이었다. 큰 방을 잡고, 맥주와 안주를 시켰다. 그곳에서 정말 오랜만에 떼창을 했다. 선곡은 다비치의 '8282'였다. 신입사원이 온 처음 회식에는 노래방이 필수 코스라고 직속 선배가 귀띔을 해줘서 인터넷 검색으로 미리 찾아놨던 성과를 발휘했다. 팀원들이 노래를 부를 때는 탬버린을 열심히 흔들었고, 그 다음 날 손바닥에 멍도 들었다. 서울에서 인천까지 가야해야 했기에 집이 먼다는 핑계로 밤 11시쯤 살짝 인사를 하고 나와 집으로 향했던 밤, 기운이 축 빠져 집에 돌아와 바로 잠에 들었다.


그리고 회식 다음 날, 한 선배는 나에게 이렇게 이야기했다.

"나 때는 말이야. 첫 회식 때 새벽 2시, 3시까지 집에 가지도 못하고 노래방에 있었어. 택시 타고 가고 다들 난리도 아니었지. " 나는 회식 날 끝까지 자리를 지키지 못하고 11시에 나온 것이 잘못된 것인지 고민했다. '죄송하다고 말씀드려야 하나?' 라는 생각과, 혹시 집에 갈 차편이 끊겨 총알택시를 타더라도 그때 남아있어야 했나 라는 후회도 했다. 이렇게 어떤 행동을 해도 선배들은 각 행동 하나하나에 코멘트를 남겨줬다. 그럴 때마다 나는 선배가 했던 것처럼 하라는 것인지 파악하기 어려웠다. 어떤 신입처럼 보여야 하는지 의도를 파악하는 것이 가장 어려웠던 것 같다. 

시간이 지나고, 이제 8년차 직장인이 되어 나도 신입사원을 볼 때면 예전 생각이 난다. 가끔은 갈피를 못잡고 허둥지둥 되는 신입사원을 보면 '이렇게 하면 좋을텐데. 나는 이렇게 했었는데.' 라는 생각도 한다. 하지만 왠만해서는 그 생각을 입 밖으로 꺼내지 않으려고 노력하고 있다. 나는 생각없이 말하는 그 한 마디에 신입사원은 얼마나 많이 고민을 할까. 자신이 틀린 것인지 얼마나 자책을 할까. 내가 그런 감정을 겪었기 때문에 더욱 조심하게 되나보다. 


다행히도 요즘 신입사원이 들어와도 예전처럼 건배사를 꼭 하지는 않는 듯하다. 그리고 2차를 무조건 노래방으로 가는 분위기는 더더욱 축소된 게 느껴진다. 누군가는 노래방이 큰 대수냐고 할 수 있지만, 나는 이렇게 조금씩 변해가는 회사의 문화가 얼마나 반가운지 모른다. 노래방은 친한 친구끼리 코인노래방을 가는 것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그나저나 첫 회식 날 아직도 생각나지 않는 동기가 부른 랩의 내용이 무엇이었을지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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