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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거창 신부범 Mar 15. 2019

이승복 어린이 죽음에 이제 자성할 때다

시대적 상황에 불가피하게 어린이들에게까지 반공 의식화 교육을 시켰다고 할지라도 이제는.. 

울산 강남초등학교 교정에 설치 된 이승복 어린이 동상. 지난해 11월 노옥희 울산 교육감이 "이승복 동상은 시대에 맞지 않아 이른 시일 안에 없앴으면 좋겠다"고 철거 의사를 밝혀었다.하지만 보수진영의 격한 반발로 결국 철거하지 않고 그대로 유지하기로 했다고 한다.


'나는 공산당이 싫어요.


이승복 어린이의 일화는 당시 조그마한 산골에도 동상이 세워질 만큼 유명했다. 이승복은 1968년 강원도에 침투한 무장공비에게 '나는 공산당이 싫어요'라는 말 한마디에 무참히 살해당했다. 당시 조선일보는 이승복 어린이를 입이 찢어져 죽임을 당할 정도로 공산당에 항거한 반공 위인의 어린이로 표현해 전국으로 발행했다.


당시 조선일보 보도 지면

이 사건을 계기로 '나는 공산당이 싫어요'라는 말이 새겨진 이승복 어린이 동상이 전국의 국민학교 교정에 일제히 세워졌다. 어린 학생들의 반공교육 도구가 되어 공산당에 대한 적개심과 증오를 키우는 데 결정적 역할을 했다. 그러나 군사정권 종식과 더불어 반공 이데올로기 시대가 저물자 '이승복 어린이의 죽음이 사실과 다르게 조선일보에 의해 조작이 되었다'는 논란이 제기되었다. 대법원은 사실 여부에 대해 조선일보의 손을 들어 주었지만, 깔끔하게 정리되지 않은 채 여전히 의문은 남아 있는 상태다. 

우리는 사실 여부를 떠나 이념대결의 희생양인 이승복 어린이의 죽음을 자랑스러워할 일인지 되돌아봐야 한다. 1968년 당시 이승복 어린이의 나이는 고작 9살이었다. 그저 부모 품에 안겨 밥투정을 부릴 철없는 나이였다. 정상적인 9살 어린이라면 총을 든 무장공비 앞에서 '무서워요. 살려주세요'라고 해야 한다. 그러나 이승복 어린이는 9살 나이에 맞지 않은 행동을 보였다. '북한이 좋냐, 남한이 좋냐'는 총을 든 무장공비 앞에서도 전혀 굴하지 않고 '나는 공산당이 싫어요'라는 거침없는 용기를 부린 것이다.

당시 국가의 반공 의식화 교육이 얼마나 철저했으면 9살 어린이가 죽음의 무서움을 뒤로하고 '나는 공산당이 싫어요'라고 외쳤을까? 소년의 무모한 용기 밑에는 결국 국가의 과도한 반공 의식화 교육이 자리 잡고 있지는 않았는지 되돌아 볼 일이다.이승복 어린이의 죽음은 성숙한 비판 능력에 기인한 반공 저항이 아니라 '박정희 정권의 반공 의식화 교육에 따른 희생'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님을 의미할 수 있기 때문이다.

당시 반공과 방첩이 국시가 되었던 시대적 배경이 이를 뒷받침한다. 한국전쟁이 끝난 지 얼마 되지 않아 반공 이데올로기가 극심한 시대, 박정희는 학생들에게 반공 영화 시청과 웅변대회 글짓기 등 각종 교육을 강화하며 반공 의식화를 고취시켰다.


 2004년 9월 7일 서울 세종로 교보빌딩앞  원로교사 반공교육 참회선언 기자회견의 원로교사들이 "반공교육 시대를 떳떳하게  살아 오지 못해 반성한다"고 했다. -오마이뉴스-

이런 점에서 '이승복 어린이는 국가의 의식화 교육의 피해자는 아닐까?'라는 추론을 해보게 되는 것이다.

2004년 9월 7일이다. 서울 세종로 교보빌딩 앞에서 열린 국가보안법 폐지를 위한 원로교사 반공교육 참회 선언 기자회견에서 원로 교사들은 '맹목적인 반공교육을 실시했던 자신들의 과거를 반성한다'고 했다. 국가가 9살 어린이에게까지 반공 의식화 교육을 꼭 해야 했었는지에 대한 자성의 생각을 하게 되는 대목이다. 

당시 시대적 상황에 따라 불가피하게 비판 능력이 없는 철없는 어린이들에게까지 반공 의식화 교육을 시켰다고 할지라도 시대가 바뀐만큼 이제 이승복 어린이 죽음에 대한 부끄러움 마음으로 되돌아볼 때가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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