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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거창 신부범 Sep 06. 2021

나는 돈 꿔 주는데 너무 인색했다

한 번의 신의로 모든것을 판단하고 재단했던 나

지금으로부터 5년 전 우리 부서에 신입사원 한 명이 소개되었습니다. 서류전형과 면접에서 다른 지원자들에 비해 우수한 점수를 받았던 그는 업무능력이 뛰어나 회사 입장에서도 탁월한 선택이었다는 평가였습니다.


그에 능력은 비단 업무에만 그치지 않았습니다. 준수한 용모에 성격도 싹싹해 팀원들과의 관계도 매우 좋았습니다. 간혹 업무능력은 나무랄 데 없으나 대인관계에서는 원만하지 못해 부서 화합에 부정적 요소로 작용하는 경우가 있는데 그는 업무능력과 대인관계, 두 박자를 두루 갖춘 참 좋은 신입사원이었습니다.


그렇게 그가 부서  존재감을 키워 나가며 2년 정도 지난 어느 퇴근 무렵이었습니다. 나에게 다가온 그는 저녁에 중요한 약속이 있는데 지갑을 집에 두고 와서 그렇다면서 돈 좀 빌려 달라는 것이었습니다. 평소의 품행과 인격으로 봤을 때 의심의 여지가 없다고 판단한 나는 그에 사정을 들어줬습니다.


그렇게 빌려간 돈을 내일 당장 갚겠다고 했던 그는 두 달이 가까워지도록 갚을 기미가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것도'이렇다, 저렇다' 말 한마디  말도  없이 말이지요, 하는 수 없다고 판단한 나는 그에게 혹시 '돈 빌려간 것 잊지 않았지요'라며 간접적 의향을 물습니다. 그는  '죄송하다'는 말과 함께 내일은 꼭 갚겠다'라고 약속했습니다.


그런데 그 약속 또한 한 달이 지나도록 지켜지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어느 날은 그에게 대놓고 한마디 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내가 돈을 꼭 되돌려 받으려고 그런 것이 아니다, 돈을 제때에 갚아야 다음에 필요할 때 돈을 빌릴 수 있는 신뢰가 생기지 않겠는가,


그리고 대인관계에 있어 금전적 신뢰는 매우 중요하다. '사람이 살아가는 데 있어  돈이 전부는 아니다'라고는 하지만 그래도 돈이 차지한 비중은 무시할 수 없다. 그래서  웬만한 신뢰가 형성되어 있지 않으면 그 누군가에게 돈을 빌려주기란 쉽지 않다.


나의 이 말을 어떻게 받아들였는지는 몰라도 그는 그 이후 빌려간 돈을 갚았습니다. 하지만 금전적 신뢰에 상당한 내상을 입어버린 후였습니다. 그래서 혹시 있을지 모를 그와의 금전거래를 고민하고 있던 어느 날 그가  또다시 돈 얘기를 꺼냈습니다.


"ㅇㅇ님, 죄송하지만 돈 좀 빌릴 수 없을까요"


어쩌죠, 빌려주고 싶은데, 지금 가지고 있는 이 없어서...


일도 잘하고 성격도 좋은 그에 사정을 들어주고 싶었습니다. 나도 한때 돈이 필요 한데, 정말 돈이 없어, 도움이 절실할 때  누군가가 내밀어 준 손의 고마움이란 이루 말할 수 없음을 너무 잘 안 나였기에 그럴 생각도 들었습니다. 하지만 그의 금전적 신용을 이미  이상 그에게 돈을 빌려주고 싶지 마음은 더 이상 생기지 않았습니다.


그런 그가 지난해 말쯤 개인적 사정이라며 퇴사를 했습니다. 부서에 필요한 인재였지만 한번 마음먹은 그를 설득할 순 없었습니다. 그렇게 그가 퇴사를 하고 서너 달 정도 지날 즈음, O과장이 나에게 다가와 그 친구의 사정으로 돈을 빌려 줬는데 아직까지 되돌려 받지를 못했다면서 'OO님께서도 혹시 돈 빌려 준거 있냐'라고 묻는 것이었습니다.


 ' 친구 역시 금전적 신용이 좋지 않군' 


그렇게 속으로 되뇌는 것으로 세월은 흘러 지난주 목요일, '그동안 사정이 있어 이제야 돈을 갚게 되어 대단히 죄종 하다 그때는 정말 감사했다'는 전화통화와 함께 그에게서 돈을 입금받았다는 O과장의 말을 들었습니다. 그러면서 O과장은 돈도 돈이지만 그 친구가 믿음에 배신하지  않아 무엇보다 고맙다고 말했습니다.


O과장의 이 말에  한 번의 신의로 그에 모든 것을 판단하고 재단해버린 내가 너무 옹졸하고 속 좁은 사람은 아니었을까, 그래서 그에게 돈을 빌려주는 일에 너무 야박하고 인색했던 것은 아니었나 싶어 괜히 그에게 미안해지기도 했습니다.



사진: 픽사 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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