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20일은 곡우다. 24절기 중 6절기인곡우는 본격적인 농사철로 접어든다는 절기다. 그래서 곡우에 비가 내리면 백곡이 윤택해지고 반대로 비가 오지 않으면 그해 농사를 망친다는 옛 속설이 있다.
그 속설이 맞고 그렇지 않고를 떠나 농사를 시작하는 시점에 비가 온다면 그건 당연히 좋은 일이지 결코 나쁘지 않지는 않을까, 따라서 이번 곡우에도 비가 흠뻑 내려 '올 한 해 농사도 풍년이었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가져 본다.
얼마 전 전북 남원에 사시는 매형이 지금 농촌은 농사 준비로 한 참 바쁘다고 했다. 볍씨의 싹을 틔워 모내기 준비도 해야 하고 상추와 시금치 등 봄 채소의 파종도 해야 한다고 했다. 모든 일에는 시기가 있는 법이니 때를 놓치지 않기 위해 부지깽이도 필요할 만큼 바쁘다는 것이다.
시골을 떠나 도시에 정착한 지 오래인 나는 올해에는 옥상에 자그마한 텃밭을 가꾸어 볼까 마음먹었다. 그래서 '채소 중에서 비교적 관리하기 쉽고 잘 큰다는 상추를 키워 볼까' 하는 마음으로 동네 마트에서 적상추씨와 청상추씨를 각각 한 봉지씩 사들었던 게 바로 2주 전의 일이었다.
당시 씨앗봉투에 기재된 상추 재배작형 표를 보니 중부지방 기준으로 2월 말에 파종했을 경우 수확은 4월 중순경부터, 4월 초에 파종을 했을 경우 수확은 5월 중순경부터라고 되어 있었다. 이기준으로 보면 적기에 파종을 했던 셈이다.
옥상에 자그마한 텃밭을 만들어 상추 모종을 심었다.
사실 아무 때나 씨앗을 뿌리는 게 아니다. 파종시기와 방법이 매우 중요하다.예를 들어 보리는 10월 중하순에 씨앗을 뿌리고 겨울을 지나 6월 상순이나 7월 초순에 수확을 한다. 마늘도 9월부터 10월까지 파종을 하고 겨울을 지나 5월 중순부터 6월 하순에 수확을 한다. 파종 방법도 씨앗을 뿌리는 것이 대부분이지만 감자와 마늘은 씨앗이 아니라 감자와 마늘 자체다. 고구마는 싹을 틔워 키워 줄기를 심는다.
이처럼 농사라는 게 제때에 맞춰 올바른 방법으로 씨앗을 뿌리거나 심을 줄 알아야 하고 제때에 수확을 할 줄 알아야 한다. 달리 말해 자연의 시간표에 따라 파종하고 관리해야 하는 등은 기본이고, 그에 따른 상당한 지식과 노력도 필요하다.
그런데 주위에 하는 일이 잘 풀리지 않거나 또는 하는 일이 힘들면 '다 때려치우고 시골 가서 농사나 지을까?'라고 하는 사람들이 더러 있다. 농사를 몰라도 너무 모른 사람들의 농사를 업신여기는 발언으로 쉽게 꺼낼 말은 아니라고 본다.
아무 일도 아닐 것 같았던 상추씨 파종도 실제 해보려니 고민이 많았다. 어떤 토질의 흙을 사용해야 하고 어떤 방식으로 파종을 해야 할지 나름의 고민이었다. 결국 텃밭용 퇴비와 일반 흙을 반반씩 섞어 담은 배달용 일회용 용기에 파랗게 나올 새싹을 기대하며 정성껏 파종을 했지만....
그 후 1주일 정도가 지나자 싹이 올라오기 시작했다. 정말 신비스러웠다. 그리고 2주가 지난 지금 조금만 텃밭으로 옮겨 심을 정도로 훌쩍 컸다.
사실 그냥 모종을 사다 심었으면 좀 더 쉽게 키울 수도 있었다. 하지만 굳이 씨앗으로 파종을 했던 이유는 싹이 올라오는 기대와 희망 때문이었다. 인생에서 기대와 희망만큼 삶의 활력소가 있을까, 나는 그런 기대와 희망으로 상추를 정성껏 가꾸고 키울 작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