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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거창 신부범 Oct 19. 2022

그녀가 오늘 진정한 승리자입니다

저녁에 빨리 잠자리에 들고 아침 일찍 일어나는 생활습관을 가진 사람을 아침형 인간이라고 한다지요, 평균적으로 저녁 8시 30분 정도가 되면 눈꺼풀이 무겁게 내려앉고, 새벽 4시면 어김없이 잠에서 깨는 나는 아침형 인간의 범주에 든다고 볼 수도 있겠네요,


이런 나의 수면 패턴은 선천적 생체리듬과 나이에 따른 자연적 현상 등의 여러 복합적 요인이 작용한 것일 수도 있겠습니다. 하지만  결정적인 원인은 직장 때문은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나에게도 그럴 것이 집은 인천 가정동이고, 직장은 서울 강남, 지하철 두 번 환승 걸리는 시간은 대략 1시간 40여 분여 분입니다.


더욱이 8시 30분의 정상 출근시간보다 훨씬 이른 7시 이전에 회사에 도착합니다. 회사에 충성하기 위해서가 아닌 가장 큰 이유는 조금 일찍 일어나 출근하면 그만큼 편하기 때문이지요,


그 시간대 지하철은 승객들도 많지 않을 뿐만 아니라 자리 걱정도 없어 무엇보다도 좋습니다. 그리고 쫓기듯 출근을 하지 않아서 좋습니다. 승객들도 그렇게 많지도 않은 만큼 사람 간 서로 부대끼지 않아서도 좋습니다. 또한 잠깐의 수면까지도 보충을 할 수 있는 등 이것저것 좋은 맛에 길들여진 내가 소위 말하는 아침형 인간으로 변신했는지 모릅니다.



그러나 아침형 인간이라 말하기에는 부끄럽게도 지하철에 몸을 실게 되면 잠을 청해 가는 경우도 많습니다.  그런데 잠을 자다 가게 되면 한 가지 기묘한 점을 발견하게 됩니다. '쌕~쌕~' 세상모르게 잠을 자다 가다가도 내려야 할 목적지에 도착하기 전이면 어떻게 나도 모르게 잠에서 깨곤 하는지  나 스스로도 놀랄 때가 많습니다.


하지만 뇌도 때론 명령을 내리지 못할 만큼 피곤할 때가 있어서 그런지 그 임무마저 깜빡 잊고 내려야 할 역을 지나치는 곤혹스러운 상황도 간혹 발생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오늘 아침은  이와는 반대로 내려야 할 역보다 한참 앞 역에서 잠에서 깨고 말았습니다. 바로 주위에서 일어난 '왁자지껄' 소란 때문이었습니다. 스르르 눈을 떠 그쪽을 쳐다보니 20대 후반으로 보이는 어느 여성과 30대 중, 후반쯤의 여성이 주위의 따가운 시선에도 아랑곳없이 서로 간 언성을 높이고 있었습니다.


'왜 몸을 밀치고 그래요, 


"내가 언제 밀쳤다고 그러세요"


그때까지만 해도 오고 가는 고성으로 보아 실랑이는 오래갈 것 같았습니다. 자칫 잘 못하다가는 서로 간 몸싸움으로까지 번질 험악한 기세로까지 보였습니다. 하지만 이런 우려는 기우로 끝났고 싸움의 기세는 얼마 못가 금방 사그라들고 말았습니다.


죄송합니다. 어찌 됐건 제가 잘 못 했습니다. 


두 여성 중 어느 한 여성의 이 같은 한마디가 바로 출근길 지하철의  험악하게 번질 수도 있는 싸움을 끝내 버린 결정적인 한방이었던 셈입니다. 그녀가 정말 잘 못해서 그런 말을 했는지는 잘 모릅니다. 하지만 본인이 잘 못했다면 자기 잘 못을 깨끗이 인정할 줄 아는 양심 있는 행동입니다. 본인이 잘 못을 하지 안 했는데도 불구하고 그렇게 말했다면 그것 또한 지혜로운 여성으로 보입니다.


따라서 잘잘 못을 떠나 이 싸움을 빨리 끝낸 그녀가 진정한 승리자는 아닌가 싶습니다. 그래서 오늘 아침 나는 그녀에게 마음속 박수를 보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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