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토요일 저녁 9시가 넘어서자 출출함이 밀려왔다. 간단히 라면이라도 끓여 먹을 요량으로 라면을 찾았다. 하지만 그날따라 라면은 없었다. 그냥 참을까도 생각했지만 출출함이 참을 인(忍)을 압도하고 말았다. 곧바로 집 근처 조그마한 마트로 향했다.
평소 좋아했던 봉지라면은 물론, 컵라면과 과자 몇 봉지를 골라 손에 들고 상품의 가격이 얼마나 되는지 포장지 여기저기를 살펴보았다. 그러나 아무리 찾아도 상품에 대한 가격표시는 없었다. 그렇다고 별도로 해당 상품에 대한 판매 가격 표시를 해 놓지도 않았다. 나는 어쩔 수 없이 주인에게 물어볼 수밖에 없었다.
"이거 가격이 얼마예요"
하지만 그 주인도 계산대 기계에 대 봐야 확실히 알 수 있다고 했다. 결국, 계산을 다 마치고 영수증을 손에 쥐고서야 해당 상품들의 가격이 얼마인지 알 수 있었다. 그런데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서야 나는 그날 라면이나 과자 그리고 아이스크림 같은 일부 공산품에 붙는 권장 소비자 가격 표시가 없어진 제도를 깜빡 잊고 있었음을 알게 되었다.
아시다시피 라면이나 과자 아이스크림 같은 일부 공산품에 붙었던 권장 소비자 가격 표시를 없앤 것은 지난 2010년 7월부터 '오픈 프라이스'라는 제도를 도입하면서부터다. 이 제도는 유통업체 간 경쟁을 촉진하고 가격 인하를 유도하며 불공정거래를 미리 방지하기 위한 취지로 소비자를 위한다는 명분으로 도입된 제도였다.
그런데 이런 취지와는 달리 오픈 프라이스 제도는 소비자들의 알 권리를 침해하는 부작용도 만만치 않음을 생각해 보지 않을 수 없다. 운영 체계가 잡혀 있는 대형마트의 경우에는 상품에 대한 가격이 제품 밑에 일일이 표시되어 그 불편함을 해소시켜 줄 수 있지만 그렇지 못한 일반 영세 마트에서는 가격이 표시되지 않아 일일이 물어보거나 계산대 기기에 접촉해 봐야 하는 번거로움이 있다.
일례로 시장조사 전문기관 트렌드모니터(trendmonitor.co.kr)가 기획하고 이지서베이(ezsurvey.co.kr)가 진행하여, 성인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오픈프라이스 제도에 관한 조사를 실시한 바 있었다. 그런데 대부분의 소비자들이 공통적으로 권장 소비자 가격이 붙지 않아서 물건을 싸게 사는 건지 비싸게 사는 건지 판단하기 어렵다고 응답한 점은 오픈프라이스 가장 큰 폐단이 무엇인지를 알 수가 있는 대목이다.
그리고 다른 하나는 오픈 프라이스 제도가 공정한 거래로 가격 인하를 유도해 소비자를 위하기는커녕 오히려 기업들의 담합 등 불공정거래로 악용되어 편법적 가격 상승이 이루어질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도 있다. 오픈 프라이스가 제도가 도입되지 마자 일부 마트에서는 아이스크림이나 과자 라면 등의 가격이 오히려 상승했다는 소비자들의 불도 많았음도 생각해 볼 일이다.
가격을 인하하기 상품에 대한 권장 소비자 가격 표시를 없애는 것도 좋다. 하지만 소비자의 입장에서는 상품 선택에 있어서 가격표시가 가장 큰 기준 중의 하나라는 것도 간과해서는 안된다. 그렇다면 상품에 대한 정확한 가격을 제시함으로써 소비자의 알 권리, 선택할 권리를 충족시켜 소비자가 보다 더 합리적인 소비생활을 할 수 있도록 가격표시제도의 보완책이 고민해 봐야 할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