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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거창 신부범 Dec 27. 2022

그곳의 편지는 꽃보다 아름다웠다

그 이유가 뭘까요?

어느 해 인가, 서랍을 정리하다 아주 오래된 편지를  발견한 적이 있었다. 누렇게 색이 바랜 편지 봉투에 어디선가 낯익은 이름이 내 시야에 들어왔다. 이게 무슨 편지일까, 서둘러 편지 내용을 읽어 보니 80년대 군복무 시절, 어느 여고생이 보내온 위문편지였다.


그 당시 경기도 연천 최전방 GOP의 힘든 군대생활에 조금이나마 힘과 위안을 주기도 했던 그 여고생의 편지를 다시 한번 천천히 읽어 내려가는 동안  나도 모르게 그때 그 아련하고 아름다웠던 추억 속으로 스르르 빠저 들었다.


그녀가 보내온 편지를 반가운 마음으로 읽어보고, 나 또한  군대생활의 이모저모를 적어 그녀에게 보내는 등 그렇게 몇 번의 편지를 주고받다 어느 순간 끊어지기는 했지만 하나같이 군생활 견디고 무사히 제대하라는 내용의 고마웠던 편지를 보내왔던 그녀는 지금  어디서 무얼 하며 어떻게 살있을지 문뜩  궁금해진다.

그로부터 수십 년의 세월이 지난 지금  우리는 손편지 대신에 최첨단 모바일로 문자를 보내거나 아니면  SNS로 소통하거나, 그것도 아니면 E-Mail로 문서나 소식을 전하는 등 참 편리한 세상에 살고 있다. 그래서 빠르고 편의적인 측면에서는 우리에게 큰 혜택이 바로 모바일 인지 모른다. 


그러나 예쁜 봉투와 편지지를 고르고 밤새워 글을 지우고 쓰기를 반복, 우체통에 넣고 답장이 오기만을 손꼽아 기다리는 셀렘과 낭만은 손편지만이 가질 수 있는 큰 장점인 것이다. 그래서 좀 더디고 힘들지만 사랑과 정성이 가득 담긴  손편지를 쓰는 사람들이 많아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갖게 되는데 그만한 진짜 이유가 있다.


인천가족공원에 모셔져 있는 부모님 봉안당을 찾게 되면 꽃다발 대신에 조그만 메모지에  '누구누구 사랑합니다. 그곳에서는 행복하게 사셔야 해요' 등과 같이 정성스럽게 눌러쓴 손편지를 고인의 유골함에 예쁘게 붙여 놓은 경우를 가끔씩 볼 수 있다. 


그런데 그 조그마한 매모형 손편지가 어느 유골함의 꽃보다도 화려하게 빛난다. 그만큼 꽃보다 그 손편지가 아름다웠기 때문은 아니었을까, 그래서 나 또한 이번 주말 꽃다발 대신에 사랑과 정성이 가득 담긴 손 편지를 써 들고 부모님 곁으로 달려갈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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