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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거창 신부범 Jan 19. 2023

그 시절 설 귀성 전쟁도 소중한 추억이다

이번 주말부터 시작되는 나흘간의 설 연휴 조금은 아쉽다면 아쉬운 연휴다. 하지만 연휴가 짧고 길고를 떠나 설날 같은 명절은 언제나 설레고 즐겁다. 그래서 비록 몸은 고향에 갈 수 없어도 마음만은 항상 고향을 향하게 된다. 


지금도 그렇지만 당시에도 명절 고향길 가장 편하게 갈 수 있었던 교통수단은 단연 열차였다. 그래서 설 열차표는 미리 예매를 했고 주로 서울역이나 용산역 등 현장에서 판매를 하다 보니 이를 사기 위해 역 앞에는 예매 전날부터 몰려든 사람들로 '인산인해'를 이뤘다.


귀성열차표는 한정되어 있는데 표를 사려는 사람들이 많아 벌어진 진풍경으로 남들보다 먼저 표를 구입하기 위해서는 차디찬 콘크리트 바닥 노숙도 마다하지 않았다. 그래서 웬만한 열정과 노력이 아니면 열차표 예매를 포기하고 관광버스로 귀성길에 올랐다.


당시 설이나 추석 등 명절이 다가오면 서울시내 전봇대나 담벼락에 등에는 몇 시에, 어디서, 어디로, 출발한다는 안내문이 나붙기도 했다. 그래서 그 시간에 맞춰 그곳으로 가게 되면 그 관광버스를 이용 고향길에 오를 수 있었다.


고향을 떠나 서울에서 직장생활 한지 얼마 되지 않았던 어느 해 설날 나 역시 그렇게 관광버스를 이용 설 귀성길에 올랐다. 그때 그 시절 열차가 아닌 버스나 자가용을 이용했던 분들이라면 '무릎을 탁~' 칠 정도로 공감이 가는 분도 계시겠지만 설 귀성길의 곤혹은 '뭐니 뭐니' 해도 주차장을 방불케 했던 고속도로 교통체증이었다.


그래도 시내만 벗어나면 그나마 조금은 낫겠지 하는 희망으로 참아 보기도 하지만 여기저기에서 타고 들어 온 차량들로 가면 갈수록 교통체증은 더욱더 심해져 갔다. 그래서 결국 얼마 가지를 못하고 품었던 희망은 절망으로 바뀌고 말았다. 그렇지만 '그리운 부모형제를 만난다'는 기대 부푼 마음은 또다시 희망을 품게 만들기도 했다


한숨 푹~ 자자~자~ 자고 일어나면 그래도 많이 도착해 있겠지!


뒷목이 뻐근하고 하품이 저절로 나올 정도로 지루하고 또 지루해 오지 않는 잠을 애써 청해 자고 일어나면 출발했던 시간은 수시간이나 흘렀는데도 아직도 가야 할 시간은 수시간 이상이나 남아있었으니 그야말로 6.25 때 난리는 그건 난리도 아닐 정도로 설 귀성전쟁은 잔혹하리만치 치열했다.


그런데 그때 하필 내가 탄 관광버스는 얼마 가지를 못해 난방 히터까지도 제대로 작동이 되질 않는 2중고를 겪어야만 했다. 두툼한 외투를 바짝 조이고, 몸을 최대한 웅크려 보아도 입김이 새하얗게 피어오르는 버스 안 냉기 앞에 속수무책 고통을 감내해야만 했다.


혹한의 강추위, 난방장치 말썽에 짜증스러운 교통체증까지 그야말로 고향길은 행길로 끝을 모른 채 이어졌다. 이에 지쳐 자다 깨고, 또 자다 깨고를 반복을 거듭한 끝에 드디어 광주터미널에 도착했고, 버스 안 승객들은 마치 전쟁터에서 승리한 병사들처럼 좋아라 환호성을 질러내는 것으로 길고 힘들었던 귀성길 전쟁은 막을 내렸다.


그 시간이 오후 1시 정도, 서울에서 광주까지 꼬박 16시간, 지금 생각해 보면 그야 말 두 번 다시 겪고 싶지 않은 끔찍스러운 설 귀성 전쟁으로 어찌 보면 썩 유쾌하지 못한 추억일 수 있다. 하지만 두 번 다시는 겪지 못한 그때 그 시절만의 그리운 추억이라면 내 마음속 깊이 소중히 담아두고 싶다.



커버이미지: 국가기록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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