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대방의 행위를 진실로 받아들이고 이해할 줄 아는 그에 전화
징~잉~징,
업무로 한창 바쁜 어느 날 월요일 오전이다. 책상 위의 핸드폰이 요란하게 진동하며 자지라 진다. 키보드를 두드리며 힐끗 쳐다보니 회사 거래체 간부다.
네~OO님,
전화를 받자 그는 "오늘 점심이나 같이 하려고 하는데 시간 어떠세요"라며 묻는다. 미리 정한 약속도 아니고 다짜고짜 갑자기 점심이라니 당황스러웠다. 더군다나 내 성격상 거래체 직원들과의 식사를 그렇게 좋아하지 않는 편이 아니던가,
나는 그에 갑작스러운 식사 제의가 순수한 의도가 아닌 뭔가 있을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그래서 될 수 있는 한 점심 자체를 피하려고 재차 물었다.
OO님, 무슨 일 있으세요?
별일 아니고요, 이따 점심 같이 드시면서 얘기하시죠,
내 마음 같아서는 정말 같이 하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그에 간곡한 요청에 마지못해 점심식사 자리를 같이 하게 되었다. 그런데 예감은 귀신같이 적중했다. 그는 이런저런 얘기를 하더니 결국 나에게 인사청탁을 하는 것이었다.
OO님, 부서 직원 한 명이 그만둔다는 소식을 들었는데 그 자리에 내 친구 자식 좀 받아 줄 수 없을까요?
나는 그에 말이 끝나기 무섭게 "죄송하지만 직원 채용은 내 권한 밖입니다" 라며 단호히 거절했다. 그에 입장에서는 정말 자존심이 상할 수 있을 정도로 그야말로 매정하게 뿌리쳐 버렸다.
하지만 그때 그러고 난 후 그에게는 미안한 마음이 전혀 없지도 않았다. 그에 나름대로는 정말 어렵게 꺼낸 부탁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나는 그에 이런 심정은 전혀 고려도 하지 않은 채 단 1초도 머뭇거림 없이 칼로 무를 자르듯 딱 잘라 버렸으니 말이다.
그렇게 서로 간 어색한 헤어짐을 하고 몇 달이 지난 어느 날 그에게 전화 한 통이 걸려 왔다.
그러면서 그는 그때 당시는 바늘로 찔러도 피 한 방울 나오지 않을 정말 냉혹한 인간이라고 원망도 많이 하기도 했지만 시간이 흐르고 지금에 와서 생각해 보면 그때는 제가 틀렸고 OO님의 처신이 참 올바랐다고.... 그래서 정말 죄송하다고 말한다.
그에 이 같은 말을 듣고 나니 나는 몸들 바 없이 한없이 작아지고 그는 오히려 태산같이 크게 느껴졌다. 그것은 바로 상대방의 행위를 진실로 받아들이고 이해할 줄 아는 참 용기 있고 훌륭한 사람으로 보였기 때문이다.
내 생애 가장 깨달음의 전화를 준 그에 앞날에 행운을 빌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