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거창 신부범 Jan 25. 2024

아랫집 할머니는 우리 엄마였다

토요일 오후,  요일이 주는 편안한 만큼이나 고즈넉한 시간이다. 커피를 마시기 위해 올려놓은 주전자에서 '뿌~우~웅~뿌~우~웅~' 기관차 소리를 내며 새하얀 증기를 내뿜는다. 펄펄 끓는 뜨거운 물을  커피잔에 붓는다. 달달한 믹스커피를 한 봉지 뜯어 '스르륵' 떨어 뜨리고 휘~휘~ 몇 번 젓어 한 모금 음미를 해본다.


그리고 창문 쪽으로 다가가 슬며시 문을 열어본다. 이날 날씨는 평년보다 조금 온화한 날씨었다. 그래도 겨울은 겨울이다. 얼굴에 부딪히는 공기가 제법 차갑게 느껴진다. 그 찬바람을 맞으며 마신 커피 한잔이 더욱더 감미롭다.


맑은 날씨, 저 멀리 하늘을 쳐다보니 제법 푸르다. 새하얀 뭉게구름이 유유자적 떠 있는 모습도 토요일 오후만큼이나 평화롭다. 어떨 때는 시커먼 비구름에 천둥번개 폭우가 쏟아지고, 오늘 같은 날에는 맑고 푸른 하늘이다. 그러고 보니 날씨도 우리 인생과 많이 닮았다.


이번엔 커피 한잔을 마시며 아래를 내려다본다. 여름 내내 초록색 신록의 푸르름으로 뽐냈던 은행잎들은 온 데 간데없고 갈색의 앙상한 뼈대만 을씨년스럽게  남아 있다. 그 나뭇가지 사이로 부화해 나간 이름 모를 새둥지가 한눈에 들어온다.

부화해 나간 새 둥지

주인 없는 텅 빈 둥지와 엮어놓은 낡고 색 바랜 비닐이 바람에 살랑거리는 모습이 차가운 겨울바람만큼이나 내 마음을 움츠려 들게 한다. 


그런데 묘하게도 새둥지 높이와 비슷한 아랫집에도 현재 사람이 살지 않고 텅 비어 있다. 그 집에 홀로 사시던 할머니께서 얼마 전 돌아가셨다. 다리가 좀 불편하기는 했으나 대체적으로 건강하셨던 분이셨는데 갑자기 세상을 떠나신 것이다.


사실 미안하게도 같은 빌라이면서도  할머니가 언제 그 집에 입주해 사셨는지는 정확히는 잘 모른다. 다만 몇 년 전부터 할머니가 그 집을 드나드시는 것을 보았고 오고 가다 몇 번 마주친 적이 있어 그 집에 홀로 사시는 것만 알았다.


그런데 가끔씩 보아 온 그 할머니 나이는 팔십 중 후반쯤으로 보였다. 자그마한 키에 마른 체형으로 항상 지팡이를 들고 다니셨다. 얼굴에는 굵고 깊은 주름이 패어 있어 고생한 삶을 사신 흔적이 역력해  꼭 우리 엄마와 닮았다

돌아가신 할머니가 사셨던 현관문

이렇게 우리 엄마 같으셨던 할머니는 특별히 외출해야 할 일이 생기거나 먹거리를 위해 시장에 갈 일이 아니면 좀처럼 밖으로 나오지 않으셨다. 그런 할머니집 현관문 앞에는 일주일에 한두 번 정도 택배상자가 꼭 놓여 있다가 없어지곤 했다.


여타 택배 상자와는 특이해 보여 나름 궁금했었다. 그러던 어느 날 할머니와 마주친 적이 있다. 그 상자에 대해 여쭈었다. 부업거리가 들어 있는 상자라고 하셨다. 몸도 성치 않으신데 무슨 부업을 하세요?라고 했더니 무료함을 달래기 위해 그냥 하신다고 하셨다.


그냥 무료해서라고 말씀은 하셨지만 액면 그대로 믿을 수는 없었다. 무료함도 무료함이겠지만 진짜 이유는 생활에 조금이라도 보탬이 되고자 하셨던 것은 아니었을까,


요 며칠사이에 영화 14도의 매서운 한파가 몰아쳤다. 작년 이맘때도 마찬가지였다 그때 우리 집 싱크대 수도꼭지가 얼어 물이 나오지 않을 정도로 강력한 한파였다. 최소한 밥을 지을 물이 필요했고 할 수 없이 아랫집 할머니집을 찾은 적 있다.


엄마의 일바지

자초지종을 설명드리고 방에 들어서니 여기저기 부업거리로 가득했다. 무료해서가 아닌 돈을 벌기 위한 부업거리임을 한눈에 봐도 짐작할 수 있을 정도로 할머니께서는 돌아가시기 전까지 열심히 일만 하셨던 분이셨던 것 같다.


돌이켜 보면 우리 엄마도 평생을 일에만 파묻혀 사셨다. 가난한 집에 시집와 8남매를 낳고 오로지 자식들만을 위한 헌신적 삶을 사셨던 엄마이셨다. 사진 속 어여쁜 엄마의 한복이 낯설을 만큼 평생을 거의 일바지만을 입다시피 하셨다.


그렇다 엄마 역시도 아랫집 할머니와 똑같았다. 그래서 결국 할머니가 사신 아랫집에 엄마가 사신 거나 다름없지 않을까 싶다. 그런데 그 집이 부화해 나간 새 둥지처럼 현재 텅 비어 있음에 내 마음이 더욱더 아리고 쓸쓸한 이유다.


아울러 자식의 마음으로 할머니의 명복을 빈다.



커버이미지:게티이미지뱅크(어제 작성했던 글을 수정 보완 한 것입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그놈에게 당할 뻔 한 사연을 공개합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