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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거창 신부범 Apr 17. 2019

미화원 명찰 패용이 서비스 차원이라고요?

 명찰 보다  진심에서 우러난 서비스 정신을 유도함이  더 낫지 않을까,

봄꽃이 지천에 만발한 요즘이다. 이럴 때 봄나들이도 좋지만 때론 '집에서 휴식을 취하며 심신의 피로를 푸는 방법도 괜찮지 않겠냐'는 생각이다. 지난 일요일 오후 집에서 휴식을 취했던 이유도 바로 이런 연유다. 소파에 비스듬히 누워 뭐 볼만한 프로그램은 없을까, 채널을 돌려보던 중 어느 영화 전문채널에서 방영되고 있는 '말죽거리 잔혹사'라는 영화에 채널을 고정시켰다. 


영화 '말죽거리 잔혹사'는 VOD로 혹은 TV에서도 이미 여러 차례 본 영화다. 내 머릿속에 '그 줄거리가 속속들이 입력되지 않았다'면 오히려 이상할 정도로 많이 봤다는 얘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또다시 그 영화에 채널을 고정한 채 화면 속으로 빠져 들 수밖에 없는 이유가 있다. 소위 말하는 586세대인 나는 1978년을 배경으로 한 그 영화에 동질감을 느끼고 볼 때마다 감회가 다르기 때문이다.


정치, 사회적으로 격동 기였기도 했던 그 당시 나의 학창 시절은 정말 잊지 못할 기억들이 많다. 우선 키 크고 덩치가 큰 3학년생 위주로 선발된 선도부 일원의 무소불위 권력을 앞세운 채 벌이는 선생님들의 교문 앞 등교 복장 검사와 그리고 위반 시 무자비한 얼차려가 가해지는 장면의 '말죽거리 잔혹사'에서 그때 그 시절 학생들의 인권 실태를 함축적으로 재연하는 대목이다.


그리고 영화 '말죽거리 잔혹사'에서는 군복을 입은 교련 선생의 무식한 학생 폭력 장면만 나왔을 뿐, 다루지 않았던 내용이지만 회색 바탕에 검은색 무니가 들어 있는 교련복에 나무로 깎은 소총을 들고 예비역 장교 출신 교련 선생의 지도 아래 군대 신병훈련소 못지않게 실시되었던 학생 군사훈련은 그 당시 남, 북 이념의 이데올로기가 얼마나 심각했는지를 보여주는 상징이기도 했다.


또한 하나같이 똑같았던 더벅머리, 일본 순사복을 연상시키는 검정 교복, 귓 안쪽에 채워져 있는 하얀 플라스틱 카라, 목부분을 단정하게 채울 수 있는 갈고리 모양의 호크, 높을 고(高) 자가 선명하게 새겨진 교복의 단추에서 당시 교육의 획일성을 말해 주고 있다. 특히 교복의 왼쪽 가슴에 하얀 바탕에 검정실의 재봉질로 선명하게 새겨놓은 이름표는 학생은 통제의 대상이었음도 간접적으로 엿볼 수 있다.

영화 말죽거리 잔혹사의  한 장면

영화 말죽거리 잔혹사를 통해 그때 그 학창 시절을 회상해 보고 당시 중고생들의 이름표를 얘기하다 보니 문뜩 우리 회사 빌딩에 근무하는 미화원 아주머니들의 왼쪽 가슴에 찬 이름표가 생각난다. 그리고 그 모습을 떠 올려 보며 생각을 해 본다. 비록 이름표의 크기와 모양은 달라졌지만 그때 그 시절 학생들의 명찰이나 지금 미화원 아주머니의 명찰은 '통제적 대상이라는 측면에서 어쩌면 같을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말이다.


어느 날 나는 미화원 아주머니에게 이름표 패용의 이유를 물어본 적이 있다. 그런데 돌아온 대답은 의외로 간단했다. 우리라고 달고 싶어서 다나요, 관리자들이 달라고 하길래 달고 다니는 거죠, 이 말이 끝나기 무섭게 옆에 계신 또 다른 아주머니가 한마디 거들고 나섰었다. 회사에서 명찰을 달고 다니라는 이유가 뭐 겠어요, 그만큼 책임감 있게 일하라는 뜻 아니겠어요,

아주머니 그 말을 들으니 일에 대한 통제 차원의 이름표 패용이라는 근거도 어느 정도는 일리가 있지 않을까, 라는 생각도 들었다. 그것은 이름표에 의해 신분이 간접적으로 노출되고 있는 만큼 일을 하는 데 있어 상당한 심리적 압박감으로 작용될 수 있고, 그래서 이를 이용하기 위한 '미화원 아주머니들의 이름표 패용은 아닌가, 라는 의문에서다.


이를 예상할 수 있는 있는 경우로 예를 들어 본다. 미화원 아주머니의 일하는 모습이 마음에 안 든다고 생각한 어느 누군가가 가슴에 찬 이름표를 볼 수도 있을 것이고 그 이름을 토대로 관리사무소에 민원을 넣기라도 한다며 관리소는 민원을 유발한 대상이 누구임을 단박에 알 수 있는 등 이름표 패용의 미화원에게는 여러모로 불리하게 작용할 소지가 있는 문제로 보기 때문이다.

인터넷 검색으로 불러온 이미지

이런 문제점에 명찰 패용의 긍정적이 측면도 없지 않을 텐데 너무 색안경을 끼고 부정적인 측면만을 부각하는 것은 아니냐는 일부의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만에 하나라도 미화원 아주머니들의 의견은 무시된 채 관리자들의 일방적인 생각만을 토대로 이름표를 패용하고 그것을 바탕으로 민원의 감시와 관리의 통제를 위한 활용이 이름표 패용의 진정한 의도라면 문제가 있다 라고 보는 것이다.


물론, 고객 서비스 차원에서 명찰 패용이 나쁘지 않다는 주장도 있을 것으로 생각된다. 생각의 차이는 있을 수 있고 그래서 그런 주장에 대해 전혀 일리 없다고 못 박고 싶지는 않다. 미화원 아주머니들이 이름표의 자부심으로 고객 서비스를 위하는 마음이라면 그럴 수도 있다는 생각에서다. 문제는 미화원들이 처한 열악한 현실을 감안할 때 그들 자신들이 '미화원 OOO'라는 이름표에 얼마나 자부심을 느낄지 의문이다.


진정으로 고객 서비스를 위한 마음이라면 반강제적인 명찰 패용이 아닌 진심에서 우러난 서비스 정신을 유도하는 것이 더 합리적이라는 생각이다. 열악한 노동환경과 처우등 자발적으로 일할 의욕을 고취시킬 수 있는 핵심 사안은 그대로 나 둔 채 오로지 '이름표 패용만을 앞세운 근시안적 서비스만을 강조한다'면 이는 '사람을 통제하고 감시하는 반인권적 행태라는 괜한 오해만 불러올 뿐 고객 서비스 진작에는 별 도움이 되지 않는다면 아니하는 게 더 낫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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