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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거창 신부범 Jun 05. 2019

세상에 이보다 더 어려운 결정도 있을까요?

13년째 뇌경색 투병 중인 엄마를 두고 해답을 찾기 어려운 고민에 빠졌다

지난주 미쳐 하지 못했던 중요한 일을 끝내고 나니 홀가분한 마음이 들어 의자 등받이에 몸을 기대며 눈을 살며시 감아 본다. 그리고 병상에 누워 계실 엄마는 지금쯤 어떤 모습을 하고 계실지 머릿속에 떠올려 본다. 컨디션이 괜찮았을 때처럼 눈을 감고 다소 편안한 모습을 하셨던 그 얼굴을 하고 계실까, 아니면 어디가 불편하기라도 하면 끙끙 소리 내어 앓으시며 고통스러운 얼굴을 하셨던 그 모습은 아닐까,


이렇게 편안함과 불편함이 교차하는 엄마의 두 얼굴에서 내 마음도 덩달아 냉온탕을 오간다. 그리고 이내 고민에 빠저 들고 만다. 만약 지금 이 시간에라도 엄마가 입원해 계신 요양병원에서 상태가 좋지 않다고 연락이 오면 나는 어떤 대답을 해 줘야 할까, 큰 병원으로 모시고 가야 한다고 말해야 할까, 아니면 '요양병원에서의 치료에 머물겠다고 해야 할까,


해답을 찾기 쉽지 않아 보이는 이 같은 고민은 지난주 토요일부터다. 그날 오전 나는 VRE 보균자인 엄마가 새롭게 입원한 요양병원에 엄마를 만나로 갔다. VRE균이란 반코마이신 내성 장알균에 의한 감염증으로 항생제 치료 및 반코마이신 장기투여 환자에게서 주로 발생하는 균이라고 한다. 올해로 13년째 입원 중인 엄마도 이 균에서 자유롭지 못하게 된 것이다.


그날도 엄마는 어느 날과 마찬가지로 침대에 비스듬히 누워 계셨다. 몸이 불편한지 얼굴 표정은 밝지 못했다. 이런 엄마의 고통의 나날이 무려 13년째라니 안타까운 마음뿐이다. 흐르는 시간만큼이나 그동안 엄마의 상태도 많은 변화를 가져왔다. 초기에는 아들딸들을 보면 알듯 모를 듯 옅은 미소는 지으셨던 엄마다. 그런데 어느 날부턴가 그런 웃음조차도 없으신 엄마고, 이젠 누가 왔는지 모르실 정도의 엄마가 된 것이다.


하루 이틀, 한 두 달도 아니고 13년째를 병상에만 누워 계신 엄마의 몸이 온전할 리 없을 것이다. 병원에서 체계적인 관리를 하고 있다고는 하지만 여기저기 생겨난 욕창에 피부병까지 엄마를 괴롭히는 것은 한두 가지가 아니다. 거기에 시간이 흐를수록 신체의 기능은 떨어지고 면역력도 저하되고 있다. 어쩌면 지금의 엄마는 죽지 못해 살고 계실지 모른다는 생각에 그저 가슴이 미어질 뿐이다.


엄마에게 주어지는 것은 비단 신체적 고통뿐만 아니다. 엄마를 더욱더 힘들게 하는 것은 엄마 몸이면서도 엄마 마음대로 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 가장 안타깝다. 목이 말라 물이 먹고 싶어도 정해진 시간까지 기다려야 하는 엄마다. 생리적인 해결을 한 그곳이 불편해도 간병인들의 도움의 손길까지 참아야 하는 엄마다. 어디가 불편해 말을 하고 싶어도 그렇게 할 수가 없으니 답답하기만 한 엄마이기도 한 것이다.


그날 엄마를 두고 이런저런 생각하고 있으니 마음 한편이 아려 왔다. 그렇게 무거운 마음으로 엄마 곁을 한참이나 지키다 나와서 간호사실을 인사차 들렀다. 그런데 간호사 한분이 나에게 다가와 말을 건네 온다. 만약 엄마의 상태가 지금보다 더 나빠지게 되면 대학병원으로 모시고 갈 것인지 아니면 그곳 요양병원에서 기존대로 치료를 계속할 것인지 가부간 결정을 해달라고 했다.


간호사의 이 같은 물음에 나는 선뜻 답변을 내놓지 못했다. 그런 어려운 결정은 그 자리에서 쉽게 내릴 사안은 아니라고 봤기 때문이다. 그것은 큰 병원으로 모시고 가고 그렇지 않고는 엄마에게는 생사의 문제일 수 있다는 점에서다. 대학병원 같은 큰 병원으로 모시고 가겠다는 것은 엄마를 놓아주지 않겠다는 의지이지만 반대로 요양병원에서의 치료는 이젠 엄마를 놓아 드리겠다는 의도일 수 있으니 말이다.


세상에서 이보다 더 어렵고 힘든 결정이 또 있을까, 이런 모진 선택을 나 혼자 결정할 문제가 아님은 자명했다. 형제들끼리 의논해 최종 결론을 말씀드리겠다는 것으로 일단 미뤄 왔다. 하지만 그 결정을 하고 병원 측에 알려 줘야 할 시간은 자꾸만 다가오는데 쉽지가 않아 고민 중에 있는 것이다. 그것은 둘 중 어느 것을 선택하더라도 후회가 남을 결정일 수밖에 없어 더욱더 해결하기 어려운 고민이다.


자식 된 도리로 엄마를 큰 병원으로 모시고 응급조치를 취해 엄마를 잠시 호전을 시킨다고 하더라도 지금의 엄마가 보내고 있는 고통의 시간을 오히려 연장만 시켜 드리는 것은 아닌지 그동안 수없이 많은 대학병원행에서도 가지지 않았던 고민이 이제 살짝 든 것이다. 그렇지 않고 요양병원의 치료에 머물자니 끝까지 엄마를 책임지지 못하고 결국 포기하는 불효자식들은 아닌지 이 또한  더욱더 어려운 결정인 것이다.


이래 저래 나는 지금 세상에서 가장 어렵고 힘든 결정 앞에 깊은 고민에 빠저 있다. 그리고 그 해답을 쉽게 찾지 못한 채 헤매고 있는 중이다. 그저 엄마에게 무슨 일이 없기만을 두 손 모아 기도하고, 병원에서 연락이 오지 않기만을 간절히 바라는 마음으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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