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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거창 신부범 Jun 28. 2019

세상에서 가장 정성스러운 백일 떡을 받았습니다

요즘 우리집 현관문에 덕지덕지 붙어있는 각종 홍보 전단지들이 날이 갈수록 줄어들고 있음을 느낀다. 이런 현상이 언제부터 일어나고 있었는지에 대해서는 정확히 알 수는 없다. 하지만 손 안의 작은 세상 스마트폰이라는 통신 시설의 발달과 더불어 배달 앱 시장이 활성화된 시점부터는 아닐까라는 나름의 추측을 해 본다.


겪어본 누구나 다 그렇듯이 나에게도 현관문의 전단지가 반갑지만은 않을 때가 많았다. 떼어내고 돌아서면 또 붙어 있는 전단지가 짜증이 날 정도였다. '전단지를 제발 붙이지 마세요'라는 다소 호소적인 문구의 안내문을 붙여 볼까도 싶었다. 하지만 나는 그렇게까지는 하지는 못했다. 귀찮고 짜증스럽더라도 그냥 조용히 떼어 낼 뿐이었다.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 짧게나마 한때 각 집 대문에 전단지를 붙여 본 경험이 있다. 아주 오래 전의 일이지만 개인적인 사정으로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잠시 쉬던 때다. 딱히 할 일도 마땅치 않았던 나는 생활정보지를 통해 전단지 붙이는 일을 했다. 그때 당시 장 당 몇 원이었던가? 전단지를 대문에 그냥 붙이고 돌아다니기만 하면 쉽게 돈이 될 줄만 알았다.

현관문에 걸려 있는 작고 앙증맞은 포장백

하지만 이일을 너무나 쉽게 보고 덤벼들었음을 이틀 만에 깨달았다. 일일이 걸어 다니며 발품을 팔아야 하는 것 자체가 상당한 노동력이 필요한 일이었다. 어떤 이들은 전단지 붙이는 일을 운동 삼아 걸어서 좋고, 돈도 벌어서 좋다고들 한다. 하지만 운동 삼아 걷는 것과 돈을 벌기 위해 걷는 것은 분명히 다르다는 것을 몸소 체험을 했다.


전단지 붙이는 일이 산책하듯 평지만 걷는 것도 아니다. 엘리베이터가 없는 다세대 빌라는 4~5층 높이의 계단도 걸어 올라야 했다. 그래도 이것까지는 참을 만했다. 문제는 전단지를 붙이다 행여 주인에게 들키기라도 한다면 그때는 정말 난감했다. 그나마 좋은 사람 만나면 다음부터 '붙이지 마세요'로 조용히 끝나지만 그렇지 못한 사람일 경우 온갖 수모를 당해도 할 말이 없었다.


결국 이런 저런 고충을 겪은 끝에 얼마가지 못해 그 일을 그만두게 되었다.그 이후로는 집 대문에 전단지가 붙어 있어도 조용히 떼어낼뿐이었다.당사자가 되어봐야 속사정을 안다고 전단지 붙이는 일의 고충을 몸소 체험한 나는 '붙이면 떼어내면 그만이지'라는 다소 너그러운 마음으로 바뀌게 된 것이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대문에 붙어있는 전단지는 반갑지만은 않다. 떼어내는데 불과 1~2분이면 소요되는 별것도 아닌 사소한 일이지만 이마저도 귀찮은 게 대문에 붙은 전단지다. 그런 전단지가 날이 갈수록 붙어있는 수량이 적어지고 있음을 느끼고 있다. 이를 좋은 쪽으로 받아들여야 하나? 아니면 이것으로 생계를 유지해 온 사람들의 입장도 생각을 해야 하나?

예쁜 손글씨로 백일을 축하해 달라는 메모와 백일 떡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잠시 외출을 하고 집에 돌아오니 대문의 전단지보다 먼저 눈에 띄는 무엇가가 있었다. 앙증맞게도 작고 예쁜 포장백이 도어에 걸려 있는 채 나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이게 뭘까. 이런 경우는 처음이라 궁금한 마음부터 생겼다. 옆집을 보니 우리 집만이 아니었다. 색깔과 무늬만 다를 뿐, 똑같은 크기의 포장백이 걸려 있었다. 혹시 교회에서 다녀 간 걸까?...


그런데 포장백에는 예쁘게 쓴 메모도 적혀 있었다. 자세히 들여다보니 봉투만큼이나 앙증맞고 예쁜 손글씨로 '안녕하세요! 저희 아기가 100일이 되어 100일 떡을 했어요! 맛있게 드시고 100일 축하해 주세요~!  <-301호->라는 메모였다. 그러고 보니 301호와는 전혀 왕래가 없는 사이었다. 봉투 안을 들여다보니 먹음직스러운 떡이 두 개나 자리하고 있었다.


그것도  내가 아주 좋아하는 백설기였다. 서둘러 안에 들어 있는 떡을 보니 그 위에  포장백, 손글씨 메모와 딱 어울리는 '백일'이라는 앙증맞은 글씨가 새겨 저 있었다. 포장백과 손글씨 메모 그리고 그 안의 백설기까지 하나에서 열까지 세상에서 가장 정성 가득한 아가 탄생 100일 떡 앞에 '아가야~ 100일을 진심으로 축하해~라는 말이 저절로 나올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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