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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빅이지 Nov 16. 2023

백수로 쉬어보니 좋은 점

<다시 쓰는 성장일기> by 빅이지

일을 쉰 지 이제 막 3개월이 되었다. 처음에는 휴가를 온 것 같고, 이게 끝나면 다시 업무 일선으로 복귀해야 할 것만 같아 불안했다. 마치 휴가 중 첫째 둘째 날은 회사 일 따윈 잊어버리고 신나게 놀 수 있지만, 휴가가 끝나갈 때쯤 되면 다시 출근할 생각에 몸은 놀고 있어도 마음은 무거운 그런 기분이라고나 할까? 하지만 요즘 들어서는 내일을 맞이하는 게 전~혀 부담스럽지 않은 걸 보니 드디어 내 뇌도 회사에 더 이상 나가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을 받아들인 것 같다.




백수가 되어 가장 좋은 점은 하루를 온전히 내 마음대로 쓸 수 있다는 것이다. 회사를 다닐 때는 최소 오전 9시부터 저녁 6시까지. 대부분의 날들은 야근으로 늦은 밤까지 회사에 남아 일을 하다 보면, 정작 내가 하고 싶었던 일들은 뒷전으로 밀려 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나 이제는 몇 시에 일어날지, 뭘 하면서 오늘 하루를 보낼지, 누구를 만날지. 이 모든 것들을 내가 결정할 수 있다. 물론 그렇기 때문에 가끔은 나태해져서 아무것도 하지 않고 빈 둥 거리며 하루를 허비하기도 한다.


이 때문에 나는 봉사활동을 가는 화요일을 제외하고는 가급적 규칙적으로 하루를 보내려고 노력 중이다. 물론 매번 작심삼일이 되어, 다시 결심하고 새로 시작하길 반복해야 하지만, 계속 노력하면  언젠가는 이 루틴이 자연스럽게 몸에 배이는 날이 오지 않을까?




나의 아침은 운동을 하는 것으로 시작된다. 운동을 가장 먼저 하는 이유는 가장 하기 싫은 일이기 때문인데, 이런 건 나중에 해야지 하고 생각하면 거의 대부분 내일로 미루고 하지 않는다: 마침 지금 지내고 있는 곳이 센트럴 파크 근처이기도 해서 자주 조깅이나 산책을 하러 가는데, 파란 하늘, 빨갛고 노랗게 물든 단풍, 여기저기서 들려오는 버스킹 소리, 자유롭게 뛰어노는 날쌘 다람쥐 그리고 화기애애하게 웃고 떠드는 사람들까지. 따듯한 햇살을 받으며 그냥 걷고 뛰는 것만으로도 모든 우울한 감정들이 다 사라지고 그저 오늘 하루도 이렇게 살 수 있음에 감사한 마음이 든다.


운동을 하고 씻고 나오면 대략 11시에서 12시 사이가 되는데 이때 아침 겸 점심을 먹는다. 남편이 비행을 가지 않았으면 남편과 함께 아니면 혼자 점심을 먹는데, 예전 같았으면 귀찮아서 대충 냉장고에 있는 음식으로 때웠겠지만, 요즘은 나 혼자 먹더라도 간단하게 요리를 한다. 인터넷에 있는 레시피를 찾아 새로운 음식을 해보는 재미가 꽤 쏠쏠하다.


오후에는 글을 쓰거나 그동안 미뤄왔던 영어, 중국어, ChatGPT와 같은 생성 AI 활용 방법 등을 공부한다. 회사를 다니기 시작한 후부터 나는 업무에 필요한 것들만 공부해왔고 그러다 보니 어느새 나는 일 말고는 관심 있는 것도 좋아하는 것도 딱히 없는 사람이 되었다는걸 깨달았다. 그래서 요즘은 그냥 닥치는 대로 읽어보고, 흥미가 생기면 조금 더 파보는 식으로 공부하고 있다.


저녁 7시쯤 되면 출근했던 지인이 돌아와 다 함께 저녁을 먹는다. 저녁은 주로 나와 남편이 준비하는데 뉴욕에 보금자리를 내어준 지인에게 감사한 마음을 담아 정성껏 차리다 보니 매일 저녁이 늘 생일상처럼 한 상 가득이다. 이것으로 나의 다이어트계획은 또다시 물거품이 되지만, 오늘 하루는 어땠는지 이런저런 얘기를 하면서 웃고 떠들다 보면 어느새 두세 시간은 훌쩍 지나 있을 때가 많다.


자기 전에는 유튜브를 졸릴 때까지 보다 잠드는 습관을 고치려고 최대한 독서나 글쓰기로 하루를 마무리하려고 노력 중이다. 하지만 이미 수년간 고된 하루를 마무리하는 보상으로 유튜브를  보는 게 익숙해져서 그런지 매일 밤 침대에 누우면 유튜브를 켜고 싶은 유혹을 참기가 어렵다. 그래도 매일매일 노력하니 유튜브를 보는 시간이 조금씩 줄어들고 있는 것 같긴 하다.




그동안 너무 쫏기듯 앞만 보며 뛰어 오다 보니, 갑자기 찾아온 이 긴 휴식시간을 어떻게든 생산적으로 써야 한다는 무의식 중 압박 때문에 매일이 초조하고 불안했던 것 같다. 하지만 요즘은 내가 하고 싶었던 일들로 하루를 온전히 채워가는 게 너무 좋고, 또 그렇게 지내다 보니 생각보다 하루가 빨리 끝나 버려서 시간 가는 게 너무 아쉽기만 하다. 이래서 사람은 가끔 쉬어가는 때가 필요한가 보다.


2023년 11월 15일 뉴욕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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