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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빅이지 Dec 04. 2023

조금 손해 보고 사는 인생이면 어때

<다시 쓰는 성장일기> by 빅이지

얼마 전 지인과 점심 식사를 했다. 뉴욕에서 일할 때 알게 된 분으로, 이 분야에서는 상당히 성공한 커리어 우먼이었다. 뉴욕에 있는 동안 일 뿐만 아니라 인생을 사는 데 있어서도 많은 조언을 주셨기에 뉴욕에 온 김에 인사드릴 겸 해서 만나게 된 것이었다.


우리는 회사 근처 다이너에서 만났는데, 점심을 먹으면서 그동안의 근황과 앞으로의 계획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그러던 중 인간관계는 서로의 이해관계에 따라 주고받으면서 유지되는 것이므로 다른 사람에게 이유 없이 잘해줄 필요가 없다고 하셨다. 즉 서로에게 도움이 되지 않는 관계는 한쪽에서 일방적으로 잘해준다 하더라도 오래 유지되기 힘드니, 굳이 내가 손해 보면서까지 그 관계를 유지하려고 애쓸 필요는 없다고.


물론 맞는 말일 수도 있겠지만, 한편으로는 이 세상에 살고 있는 모든 사람이 손해를 보지 않는 적당한 선에서 서로 주고받는 식으로만 인간관계를 맺는다면 이 사회가 유지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익을 보는 사람이 있으면 손해를 보는 사람도 있어야 균형이 맞아지는 것은 아닐까?




이 세상에 크게 두 부류의 사람이 있다고 하자. 자기 손해는 보지 않으려는 사람과 타인을 위해서라면 자기 손해도 기꺼이 감수하는 사람.


나는 굳이 따지자면 후자에 속하고자 하는 사람인데, 천성이 착해서라기보다는 살면서 이타적인 성향이 학습된 것이다. 즉 크기가 다른 두 개의 사과를 가지고 있을 때 본능적으로는 더 큰 사과를 먹고 싶지만, 큰 사과를 타인에게 주면 내가 더 행복할 수 있다는 걸 깨닫고는 의식적으로 더 큰 사과를 타인에게 주는 사람 말이다.


이렇게 살아오다 보니 남편은 늘 내게 불만이 많다. 남들한테 너무 아낌없이 베푼다는 것인데, 일 예로 나 자신을 위해서는 돈 아깝다고 사지 않는 것들을 남을 위해서는 망설임 없이 산다는 것이다. 사실 맞는 말이긴 하지만, 행복의 기준은 모두에게 다른 것이다. 누군가는 내가 그 물건을 가짐으로써 행복하고 나는 그 물건을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 받고 기뻐하는 것을 보는 것에서 더 행복을 느낀다.


남편은 사람들이 이런 나의 성향을 이용하고, 내가 이로 인해 상처 입지는 않을까 늘 걱정한다. 이 때문에 나에게 가장 많이 하는 말이 “사람 너무 믿지 말라”는 것이다. 물론 모두에게 좋은 사람이고자 했던 20대 시절에는 나 자신을 갉아먹고 있다는 걸 알면서도 끊어내지 못하고 끝까지 그 관계를 유지하려고 노력했었다.


그러나 나도 살면서 많은 사람들과 부딪치고 간혹 상처를 받는 일이 있다 보니, 모두에게 좋은 사람이 되기보다는 나를 진정으로 아껴주고 사랑해 주는 사람에게 더 좋은 사람이 되자는 것으로 목표를 바꿨다. 덕분에 인간관계에서 오는 스트레스가 거의 없어졌다. 물론 지금도 내가 맺고 끊는 모든 인간관계에 있어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긴 하지만 이제는 나와 성향이 맞지 않는 사람, 나를 불편하게 하는 사람들과의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애써 노력하지 않는다. 모든 사람에게 사랑받고자 하는 "좋은 사람" 콤플렉스를 버리고 나니, 한결 사는 게 편해졌다. 


그리고 참 행운인 건 나는 인복 하나는 타고난 듯싶다. 언제, 어디를 가든 항상 좋은 사람들이 가득하니 말이다. 내가 손익을 따지면서 인간관계를 맺었다면, 지금처럼 좋은 사람들이 내 곁에 많지 않았을 것 같다. 이해관계로 맺어진 관계는 언제든 그 목적을 상실했을 때 신기루처럼 사라져 버리는 것일 테니. 그러므로 나는 조금 손해 보는 인생이라 할지라도, 지금 내가 살아온 것처럼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 내가 가진걸 주변과 나누는 인생을 살고 싶다.




얼마 전 책을 읽다가 마음에 와닿는 구절이 있어서, 혹시나 내가 사람 너무 믿다가 상처받을까 봐 걱정하는(특히 우리 남편) 사람들께 공유해 주고 싶다.


<호구처럼 퍼주는 사람이 제일 무서운 이유> 

-한 번뿐인 인생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中-


밥을 먹고 늘 먼저 계산을 하는 이유는 돈이 많아서가 아니라 밥값보다 관계가 더 소중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고, 일도 과제도 궂은일을 앞장서서 하는 이유는 힘들지 않은 것이 아니라 책임감이라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다툰 뒤에 먼저 사과하는 이유는 자존심보다 관계를 지키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고, 힘들 때 나서서 도와주려 하는 건 오지랖이 넓어서가 아닌 자기 사람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고, 늘 먼저 배려해 주는 건 착해 빠져서가 아닌 그만큼 상대방을 아끼기 때문이다.


만일 친하다는 이유로 소홀하고 무례하게 대했음에도 여전히 웃으며  받아준다면 이유는 딱 하나다. 인연을 소중히 여길 줄 아는 어른스럽고 성숙한 사람이기에 본인이 조금 참고, 배려하며 희생하더라도 관계를 지키려는 것일 뿐이다.


그렇기에 그들의 배려와 호의를 권리로 받아들이고 당연하세 생각해선 안된다. 익숙함에 속아 소중함을 잃지 말라는 말이다. 최선을 다한 만큼 만약 네가 선을 넘는다면 언제든지 미련 없이 떠날 사람들이니까.



11월 19일 뉴욕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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