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기라기보다는 외상에 가까운...
처음 두 편의 글을 쓰고 많이 괴로웠다. 이미 다 극복된 오래전의 이야기라고 생각해서, 그것을 되뇌고 쓰는 것이 쉬울 줄 알았다. 개요를 짜고 목차를 만들 때만 하더라도 즐거웠었다. 하지만, 지난 일주일 동안 2014년 당시를 생각할 때마다 나는 다시 쭈굴쭈굴 해져서 왕십리로 돌아갔다. 긴장되고 몸이 굳는 것이 느껴졌다. 그래도 힘을 차리고 계속 써보려고 한다. 이런 육체적인 반응도 언젠가는 극복되겠지.
처음 간 정신건강의학과는 꽤 명쾌했다. 나 같은 사람을 많이 상대해 본 것 같았다. 사실 나는 남들 다 잘 이겨내는 상황에서 나만 예민하게 반응하고, 그래서 이런 병적인 상태에 빠진 건가 했었다. 그런데 의사의 차분한 반응은 내가 유별나게 이상한 상태가 아니라는 안도감을 느끼게 해 줬다. 호랑이의 외양을 한 그 의사는 나의 상황과 증상을 다 듣고 깊이 공감하는 따스한 눈빛을 발사했다. 내가 가스라이팅을 당하고 있는 것, 그리고 그 상황에서 당장 벗어날 수 없는 현실적인 조건 같은 것들을 이해했다. 그러고는 약에 대해 자세히 설명했다. 분홍형광펜을 보여주면서, ‘이런 색깔의 알약을 줄 테니 꾸준히 빼먹지 말고 복약하는 것이 좋겠다’고 권유했다. 그것은 세로토닌이라는 물질이 뇌에서 생성, 분비될 때에 그 물질이 뉴런과 시냅스에 노출되는 양과 시간을 조절해 주는 약이라고 했다. 그 약을 먹는다고 해서 우울한 생각이 싹 없어지는 것은 아니고, 긍정적인 방향으로 생각을 전환할 수 있는 힘을 길러주고, 그쪽으로 사고의 물길이 새로 날 수 있도록 도와준다고 했다. 한 방에 기분을 전환시켜 버리는 약은 효과가 센 만큼 부작용도 있다고 했다. 답답하더라도 이 약을 복용하면서 천천히 약효가 몸에 쌓여 힘을 발휘할 수 있도록 하자고 했다. 그래서 일단 내가 의지적으로 생각을 전환하고 우울감을 떨쳐버리려고 할 때에, 이 약이 보조적이지만 유의미한 힘을 줄 수 있도록 하는데 목표를 두자고 했다.
나는 투약에 동의했고 신기하게도 병원에서 바로 약을 조제해 주었다. 의약분업이 되었지만 정신건강의학과는 정신병에 대한 사회적 인식과 환자들의 특성을 고려해서 병원에서 직접 조제해 주는 것 같았다. 행정에 있어서 이런 세심함이 놀라웠다. 그리고 정말 이 병원의 탁월했던 점은 수납하시고 약 조제하시는 간호사님이 두 번째 방문 때부터 벌써 내 얼굴과 이름을 이미 외우고 있었다는 것이다. 지금 가도 알아보실까 궁금하다.
병원비는 첫 진료 때 MMPI-2라는 검사를 해서 좀 비쌌고, 두 번째 진료부터는 상담 시간에 따라 Charge가 붙는 것 같았다. 대략 회당 3만원~5만원 정도 나왔던 것 같다. 선교단체 간사가 무슨 돈이 있겠는가? 그때에 누가 보건소 정신건강복지센터라도 소개해줬더라면 좋았을걸, 내겐 조언을 받을 곳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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