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뇌요괴와의 투쟁기
요즘 유튜브를 틈날 때마다 즐겨보고 있다. ‘검은 신화 오공’이라는 플레이스테이션 게임을 4시간 분량의 플레이 영상으로 편집하여 소개하는 영상이다. 보다 보면 서유기에 대한 이해도가 자연스레 상승하게 된다. 어릴 때 보던 ‘날아라 슈퍼보드’나 ‘드래곤볼’ 같은 만화영화도 일종의 서유기에 대한 오마주였다면, ‘검은 신화 오공’ 역시 서유기의 변주곡이라 볼 수 있다. 이 게임은 원작 서유기 완결 이후의 스토리를 상상으로 설정해 놓고 플레이어로 하여금 그 세계를 누비도록 함으로써, 손오공의 흔적을 더듬어 따라갈 수 있도록 구성해 놓았다.
아무튼 서유기를 보면 손오공을 포함한 삼장법사 일행은 서역으로 불경을 구하러 떠나는 여정에서 수많은 난관을 헤치고 나아간다. 검은 곰, 과부 거미, 모래 왕국의 쥐, 관음보살의 시종 등등 번뇌와 자기 욕망에 천착해 요괴로 변한 이들이 삼장법사 일행을 위협한다. 그때마다 초월적인 힘과 각종 도술, 여의봉을 가진 손오공은 동료들을 구해내고, 요괴들을 혼내주고 부처님 앞으로 인도한다.
요즘 나의 과거를 죽 돌이켜보는 시간을 갖는다. 각 시기마다 겪었던 일들, 감정들, 상처가 되었던 말들, 실수들이 떠오른다. 마치 그것들은 관문을 지키고 서서 으름장을 놓고 있는 요괴들 같다. 이전의 나는 이런 요괴들을 어쩌다 마주치면 화들짝 놀라서 도망치기에 바빴다. 마주할 힘이 없어서 Pass를 외치고 관문을 돌아가거나 덮어놓고 떠올리지도 않는 경우가 꽤 많았다.
하지만 지금의 나는 지금 여의봉을 얻었다. 노트북 키보드가 나의 여의봉이다. 글쓰기를 하면서 나의 오랜 번뇌와 상처와 감정들을 하나하나 직면하여 두들겨 패다 보면, 해석이 된다. 이해가 된다. 치유가 된다. 날 괴롭히던 요괴 같던 과거를 극락왕생의 길로 인도하게 된다. 삼장 일행처럼 동료들도 있다. 매주 화요일 작은 서점에 모여 이야기를 나누고 글쓰기에 서로 힘을 준다. 수요일마다 상담을 받으며 조언을 얻는다. 수요일, 일요일마다 교회에 가서 영혼과 영원에 대해 깊이 고민하고 토론한다. 어디 이런 동료들 뿐인가? 오공이 여행길에서 신선들을 만나 도술들을 하나하나 습득하듯이 글쓰기를 하다 보니 자연스레 기술들도 늘어가는 것 같다.
그런 의미에서 글쓰기가 해석되지 못한 과거 나와의 치열한 전투라면, 그 과정에서 기록으로 남겨진 나의 글은 투쟁의 흔적들이 남아있는 일종의 ‘투쟁기’라고도 볼 수 있다. 요즘은 이 투쟁이 너무 재밌어서 일주일에 세 번 정도씩은 난투를 벌인다. 투전승불(싸우는 부처)이 되기 위해 일부러 나의 번뇌들을 찾아다닌다.
물론 지는 싸움도 있다. 그 기록도 있다. 덤벼들었다가 고민만 더 많아지고, 결론도 못 내고 일단 후퇴하여 놓아둔 파일이다. 날짜와 제목이 적혀 있지만 그 파일 안에는 아직 해석되지 못한 번뇌가 남아있다. 여의봉과 도술을 좀 더 잘 다룰 줄 알아야 한다. 내면의 힘을 기를 시간이 좀 더 필요하다.
어쨌든 이 치열한 투쟁을 통해 과거에 대한 해석과 이해가 되니 현재가 살아난다. 활력이 생기고 또 어떤 번뇌에 찬 요괴와 맞붙을지 두근거리고 무섭기도 하다. 서역이 그리 멀지 않게 느껴진다.
마침내 서유기에서 삼장은 서역에서 불경을 구해서 돌아와 수많은 군중을 구제했다고 한다. 나의 글도 그와 같은 치유의 힘이 있었으면 좋겠다. 많은 군중은 아니더라도 한 명도 좋으니, 내가 내 과거의 번뇌, 실수, 상처들과 싸워낸 기록을 보면서 힘을 냈으면 좋겠다. 수없이 죽기를 바라고, 죽음을 열망하며, 사망의 그늘에 앉아 있던 내가, 글쓰기를 통해 생의 기쁨으로 가득 차게 되었다. 이런 나의 글이 생명의 혈액 팩이 되어 누군가 필요한 이의 생명을 살리는 데 쓰이면 좋겠다는 바람이 요즘 생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