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다상량

문을 열고...

만나를 기대하며

by 곤 Gon

아침부터 소란스럽다. 나의 거주지는 시골이라서 주변에 전답 빼고는 아무것도 없다. 아침마다 뻐꾸기, 까마귀 소리에 깨기도 하고, 딱따구리가 나무를 쪼는 소리에 깨기도 한다. 오늘 아침은 채소 장사 트럭인 것 같다. 잠결에 뭘 파는 트럭인지 정확히 듣지 못하고 분간도 못한 채 신경질적으로 창문을 걸어 잠갔다. 우리 집 창호는 무슨 브랜드의 좋은 샷시여서 이중창을 걸어 잠그면 밖과 완전히 단절이 된다. 거기에 암막커튼까지 치면 외부와 시공간이 완전히 분리된다.


창문은 안과 밖을 연결하지만 넘나들 수는 없다. ‘창문을 넘어 도망친 100세 노인’이라는 서적 제목이 떠오른다. 읽어보지는 못했지만, 그냥 제목만 가지고 상상해 본다. 왜 문이 아닌 창문을 넘었을까? ‘도망친’이라는 것을 보면 이 노인이 밖으로 나가지 못하게 하는 어떤 외부 요인이 있을 것이고, 노인이 밖으로 나가지 못하게 하는 그 감시권력은 본래 넘나드는 용도로 만들어진 ‘문’만 감시하고 있었던 것 같다. 그 허점을 이용해 영리한 ‘100세 노인’은 본래의 용도를 비틀어 ‘창문’을 통해 바깥으로 탈출한 것이라고 생각해 본다. 어떻게 보면 노인은 창문을 통해 바깥 풍경을 바라보며, 외부와의 진정한 만남을 원했던 것 같다.


창문은 안과 밖을 연결하는 측면에서는 문 같지만, 넘나들지는 못하게 하는 면에서는 벽 같기도 하다. 어떤 때에는 커튼을 쳐 둠으로써 외부에 내부의 단절의 의사를 명확하게 표시한다는 측면에서 벽보다 더 단호한 단절을 의미하기도 한다. 참으로 그렇다. 창문을 열고 닫는 권력은 내부에서만 발동한다. 외부에 있는 사람은 창문을 여닫을 수 없다. 그러므로 창문은 평등한 소통의 통로가 아니다.


기안84가 주인공으로 나오는 예능프로 ‘태어난 김에 세계일주’를 보았다. 기안 일행은 남아프리카 동쪽에 있는 마다가스카르 섬에 갔다. 수도 도시에서 다른 도시로 넘어가가기 위해 버스를 탄다. 에어컨이 시원찮은 버스에 탄 일행은 창문을 열었고, 곧 과자와 과일, 주전부리를 들고 온 보따리장수들이 버스 창가에 밀집한다. 기안 일행은 난처해하면서 창문 너머로 과자 한, 두 가지를 구입했다. 그리고 일행 중 하나가 단호하게 문을 닫았다. 순간 단절이 일어난다. 내부의 권력은 일방적으로 교류를 차단했고, 바깥의 장사꾼들은 망연자실했다. 하지만 반전이 일어났다. 잠금장치가 부실했던 창문을 장사치 중 하나가 억지로 열어젖혔다. 물론 충분히 주전부리를 구입한 일행은 ‘No!’를 외치며 창문을 다시 닫았지만, 그 순간 잠시나마 단절과 연결의 권력 구도에 흠결이 발생하며 내부의 안전이 살짝 흔들리는 긴장감이 흘러나왔다.


어쨌든 창문의 소유권은 내부자에게 있다. '여행을 간다'는 말의 의미에는 두 가지 갈림이 있다. 하나는 여행(Travel), 또 다른 하나는 관광(Sightseeing)이다. 이는 여행자의 태도에 달려있다. 문을 열고 나가 그곳을 거니는가, 아니면 높고 안전한 버스에 타서 창문 바깥의 이색적인 풍경을 감상하는가. 여행을 하게 된다면 그곳의 더위와 추위, 냄새와 식중독의 위험, 소매치기와 치안 공백 등을 몸소 체험하는 모험이 되기도 한다. 반대로 관광은 내가 원하는 곳에 내려서 내가 원하는 경험을 하고, 맛을 보고, 불쾌할 수도 있는 경험들은 최대한 미리 차단하며, 자기를 지킨다. 맞다. 문을 열고 나가 그곳에서 뒤섞이는 여행은 내부에 있던 사람을 변화시키지만, 창문을 통해 보기만 하는 관광에는 그런 힘이 없다. 오히려 관광은 내부에 있는 사람의 권력(소비권력)이 과시됨에 따라 외부가 여행지에서 관광지로 변질되는 경우가 많다.


특별히 이 글을 쓰면서 결심한다. 창문을 닫고, 문을 열고, 일단 나가자. 어떤 환경을 마주하게 될까? 어떤 풍경, 날씨, 음식, 사람들의 말투, 환대 또는 텃세, 그리고 시련과 성가심과 놀라움이 나를 기다리고 있을지 모르니. 그것에 나를 던지고 그에 반응하는 나를 바라보자. 나와 대화하기로 했다. 누군가 블로그에 미리 써놓은 이야기들을 헐레벌떡 좇아다니며, 무엇 하나라도 놓칠까 전전긍긍하고, 먼저 뿌려놓은 경험들을 주워 먹기를 거부한다. 하늘에서 떨어지는 만나(Manna)를 기대하는 마음으로 고개를 젖히고 입을 크게 벌리고 서 있으리라. 만나는 어떤 맛일까? 무엇을 만나느냐에 따라 맛이 다르겠지 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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