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전원을 주치의가 알까?
내가 다니던 노원구 난임병원은 그 지역에서 꽤 유명한 병원이었고, 삼신할배 원장님은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난임병원 출신의, 매우 실력이 좋은 의사였다. 앞선 글에서도 언급했지만 선생님은 손기술이 좋은 분이셨고 나는 이 병원에서 선생님의 시술로 불편했던 적이 거의 없다. 그리고 난임병원을 다녀본 사람들은 알겠지만 난임병원 엄청 불친절한데, 삼신할배 원장님 병원은 진짜 친절했다... 말이 속사포처럼 빠르시긴 하지만 이건 대부분 난임병원 선생님들이 그렇고; 무엇보다 병원 전체가 가족같은 분위기랄까?! 게다가 주차도 발렛으로 해주고 집에서 가깝고, 장점이야 엄청나게 많았다. 하지만 그럼에도 2차 실패 이후에 나는 마음이 조급해지기 시작했다. (3차까지는 의학적으로 정상이다. 원래 시험관 성공확률이 100이 아니기 때문에 3번 중에 1번 임신 되는 게 정상인데, 그래도 사람 마음이란 게.......)
1차 실패 후에 다음 시도를 언제 하는가는 의료진의 판단에 따라 달라진다. 호르몬 수치 등을 종합적으로 판단해서 한 두달 쉬어가는 경우도 있고, 난임 환자들은 대부분 고령이기 때문에 시간이 금이다, 라는 지론 하에 바로 다음달에 다음 시술을 이어가기도 한다. 어쨌든 2차 실패를 하고 한 달 정도 쉬는 시간이 있었는데 그때 나는 전원을 본격적으로 결심하게 되었다.
흔히 난임카페에서는 차병원과 마리아병원을 메이저 병원으로, 그 외 병원들을 지역 병원 정도로 분류를 한다. 대부분 집과 가까운 곳에서 첫 시험관을 시도하고 조바심을 느끼기 시작하면 나처럼 메이저 병원으로 전원을 하는 것이 일반적인 것 같다. 몇 차례 전원을 하면서 느낀 건 사실 난임 병원의 전원은, 딱히 병원에 문제가 있어서라기 보다 환자가 난임의 원인을 찾아가는 과정에서 결정을 하게 되는 문제라는 것이다.
나의 경우 냉동배아가 너무 갖고 싶었다(!) 사람들은 8개 채취하면 4개는 갖게 된다고 하던데, 아무리 내가 자궁 수술후라고 해도 단 2개가 전부라니 너무하지 않은가! 게다가 난 법으로 정한 고령 임산부도 아닌, 만 35세 미만의 여성인걸. 누군가는 나에게 냉동배아를 만들어주지 않을까, 라는 실낱같은 희망이 나를 전원의 길로 들어서게 했다.
수정기술이 거기서 거기 아닐까, 라는 입장과 수정기술이 절대적이야, 라는 입장. 사실 나는 고차수 환자임에도 불구하고 여기에 대한 답을 내리지는 못 하겠다. 지역 병원에서 냉동 배아가 2개 나왔던 사람이 메이저 병원에서 12개 나왔다는 기적 같은 이야기들이 난임카페에 넘쳐나지만, 나에게는 전혀 해당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이런 건 모두 진리의 케바케. 물론 메이저 병원들은 지역 병원보다 시설에도 많은 투자를 할 것이고, 그에 따른 차이는 분명 있을 거라고 생각은 하지만 이것마저도 절대적인 정답이 있다고는 말하지 못 하겠다. 2개에서 12개가 되었다는 기적 같은 스토리 안에는 환자의 히스토리, 처방된 주사약의 차이 등등 정말 많은 변수가 있을 테니까.
아무튼 2차 실패 이후 나는 전원만이 살 길이다!를 외치며 병원 서치에 들어갔다. 사람들이 많이 가는 메이저 병원 중에서 내가 선택한 병원은 서울역 차병원이었다. 앞 서 언급했던 그 기적 같은 이야기에 넘어간 탓이 컸다... ㅋㅋ 그리고 수많은 의료진 중에서도 예약이 가장 어렵고 가장 무섭다는 선생님을 제 발로 찾아가기로 했다.
전원을 앞두고 준비해야 할 건 그리 많지 않았다. 일단 병원에서 그동안의 의료 기록을 복사하고, 내 경우에는 수술을 했기 때문에 관련 자료를 특히 꼼꼼히 준비를 했다. 이때까지만 해도 내 기억에 전원 서류가 그리 두껍지 않았다. 그 이후에는 정말 책 같이 두꺼워지는 나의 전원 서류들....
전원과 관련해서 난임 카페에 단골로 올라오는 질문들이 있다. 제가 전원하는 사실을 담당의에게 말해야 하나요? 전원할 병원에서 미리 진료를 보면 담당의가 알 수 있나요? 등등. 나도 전원할 때 괜히 삼신할배 원장님에게 다다음달에 꼭 올게요! 라고 백 번 말하고 나온 것 같다. 그리고 나서 데스크에서 서류를 떼면서 엄청 눈치를 봤던, 지금 생각하면 진짜 이해할 수 없지만 아무튼 그 때는 왠지 선생님을 배신하는 것만 같고 혹은 그거 아니어도 스트레스가 엄청 많은데 알게 되면 서로 불편하게 될 것 같고 등등 여러가지 생각이 들었던 것 같다.
난임치료를 오래 받으면서 느낀 건, 난임 병원 전원은 진짜 빈번하게 일어나는 일이고 그래서 선생님들은 그닥 관심이 없다...! 그리고 고차수 환자가 되면 심지어 나를 병원에서 부담스러워한다는 느낌을 받을 때도 있다. 그럴리 없겠지만 내가 전원하길 기다리는 건 아닐까, 내가 전원을 하는 걸 반기지 않는 건 아닐까, 등등. 오만 생각을 다 하게 되는데 역시나 이건 그냥 내 상상일 뿐이다. 난임 환자들은 정말 너무 많고, 의료진들은 정말 너무 바쁘다....ㅋ
냉동 배아가 있으면 사실 고민은 더 깊어진다. 배아도 내 새낀데(?) 두고 갈 수 없고, 데려가자니 과정이 복잡해지는 것 같고 괜히 불편하고.. 근데 절대 그럴 필요 없다. 전원은 당연한 권리이고 난임의 원인과 해결을 찾아가기 위한 환자의 노력의 일부다. 그러니 주눅들 필요 전혀 없다, 고 과거의 나에게 말해주고 싶다..........!!
내 맘대로 tip
전원을 하면 일단 담당의가 그동안의 히스토리를 모두 검토하긴 하지만 사실상 새롭게 바뀐 담당의와 호흡을 맞춰가는 과정이라고 이해하면 쉽다. 같은 병원 내의 손바꿈이 아닌 이상 한 번 실패했다고 전원을 결정하면 곤란하다. 첫 시도가 성공하면 좋겠지만 실패를 하면 그걸 토대로 다음 차수의 방안을 모색하기 때문에 2, 3번은 같은 의사와 시도해보길 권한다. 마음은 조급하겠지만 조금 여유를 갖고 일단 한 차례 전원을 한 뒤라면 조금 신중하게 다음 전원을 고민할 필요가 있다.
하지만 그럼에도 빠르게 전원을 결정해야 하는 경우가 있다. 가령 의사가 나랑 너무 안 맞는다든가, 혹은 다음 차수에 다른 방법을 제안하지 않고 같은 방법을 고집할 때가 그렇다. 나는 서울역 차 병원에서 만난 주치의가 너무 고압적이고 무서워서 두 차례 시술 이후 주치의 변경을 선택했다. 가끔 난임 카페를 보면 고압적인 주치의와의 치료 과정에서 스트레스를 받음에도 유명한 의사라서 참고 치료를 이어가는 경우들을 종종 만난다. 하지만 난임치료는 정말 진리의 케바케. 그 유명한 의사가 나에게도 성공을 가져다 줄 거라는 보장이 절대 없기 때문에 스트레스 받으면서 병원 다니는 일은 정말 없었으면 좋겠다. 난임 치료비 정말 비싸다. 그러니까 비싼 만큼, 치료 과정은 무엇보다 마음이 편해야 한다!
아울러 전원 전에 전원할 병원에 대해서 충분히 정보를 찾아보고 상담도 미리 받아보고 결정하길 추천한다. 유명한 병원이 반드시 나에게도 좋은 병원이란 보장이 없고, 병원마다 치료 방향도 다르고 시도해볼 수 있는 추가적인 시술도 다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