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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제히 Jun 16. 2024

감자 배아와 눈사람 배아

: 60%의 배신


감자? 눈사람? 


난자와 정자의 수정을 통해 만들어진 수정란은, 체외에서 세포분열의 단계를 거친다. 중고딩 생물 시간에 열심히 배웠던 것처럼 수정란은 분열을 시작하는데, 이렇게 분열이 시작된 수정란을 배아라고 부른다. 처음에는 2개, 그 다음에는 4개, 8개… 점점 많은 갯수의 세포로 분열을 한다. 


열심히 분열한다


이렇게 자란 배아는 착상 직전에 배아를 둘러싸고 있는 투명대를 뚫고 나와 자궁 벽에 자리를 잡고 그렇게 태아로 자라기 시작한다. 3일 배아를 이식한다면 분열 중에 있는 배아를 이식하게 되는 거고, 5일 배아를 이식한다면 착상 직전까지 자란 배아를 이식하게 되는 셈이다. 



눈사람을 지나 감자로 향하고 있는 배아


재밌는 건 착상 직전의 배아 모습인데, 투명대를 막 까고 나온 배아와 투명대가 붙어 있는 경우 그 모양이 눈사람을 닮았고 다 까고 나와서 시간이 조금 지나면 감자처럼 울퉁불퉁한 배아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그래서 흔히 이런 배아들을 눈사람 배아, 감자 배아라고 부른다. (차병원에 있던 예전 주치의 선생님이 새로 개원한 병원 이름이 감자와 눈사람이었다. 잘 모르는 사람들은 엥? 왠 감자와 눈사람? 이런 반응이겠지만 병원 이름을 듣자마자 남편과 나는 무릎을 탁 쳤다! 난임 환자들이 모두 갖길 원하는(?) 감자와 눈사람이 병원 이름이라니!)


감자 배아와 눈사람 배아가 될 때까지 수정란을 기르려면 일단 배아가 분열을 멈추지 않고 잘 커줘야 하고 적절한 타이밍에 투명대를 까고 나와줘야 한다. 그런데 그 투명대가 너무 두꺼우면 자궁벽에 착상하는 과정을 방해하기 때문에 병원에 따라서는 투명대를 깎아서 이 과정을 도와주는 시술을 하기도 한다. 그리고 배아의 성장을 실시간으로 모니터링하는 시스템을 구축한 병원들도 있다. 


이쯤되면 정말 놀랍지 않은가? 그 작은 배아의 투명대를 깎아주고, 실시간으로 모니터링 하다니. 처음에 나도 이런 기술들을 들었을 때는 정말 의학기술의 발전이 엄청나구나!와 같은 생각을 했다. 하지만 사람 욕심이 끝이 없는게, 자꾸 실패를 하다보니 아니 이럴 바에는 녹아서 없어지는 카메라 같은 게 있어서 이식 할 때 배아에 붙여서 같이 넣고 싶다, 도대체 내 배아는 뭐 하느라 자꾸 착상에 실패하나! 와 같은 어이 없는 생각까지 이어지곤 했다. 그도 그럴 게 실제 1회 시험관 시술의 임신 성공 확률이 그리 높지 않은 걸 보면 아이를 갖고 낳는 건, 진짜 신의 영역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0으로 수렴 


모든 난임 환자가 감자 배아나 눈사람 배아를 갖고 싶어하는데, 그 이유는 단순하다. 착상 확률이 높기 때문이다. 실제로 나는 차병원에서의 이식을 모두 감자 배아, 눈사람 배아를 넣었는데 심지어 6번째 이식 때는 성공 확률이 60%가까이 될 것이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나중에 쓰겠지만, pgt-a 검사까지 모두 통과한, 검증된 아이들이라 주치의 선생님은 성공을 엄청 기대하시는 듯 보였다. 하지만 그런 확률은, 나에게는 모두 0으로 수렴했다. 


난임 카페의 글을 보면 3일 배아와 5일 배아의 확률에 대한 이야기들이 많다. 병원에 따라서, 주치의의 의견에 따라서 3일 배아와 5일 배아의 성공률에 의미를 두는 경우도 있고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다. 배아를 무리하게 5일까지 길러서 끌고 가는 것보다 3일 배아를 만들어서 여러개 이식하는 것이 유리하다고 판단할 수도 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확실한 성공을 위해 5일 배아를 기르는 것이 더 효과적이라고 볼 수도 있는 것이다. 그리고 시험관보다 엄마 뱃속에서 크는 게 제일 좋지! 라고 말해주는 의사 선생님들도 있다. 


전원한 차병원에서의 첫 채취는 내 기대와 조금 다르게 흘러갔다. 나는 4개 정도는 냉동배아를 얻을 수 있지 않을까, 기대를 했지만 5일 배양 냉동배아가 2개 만들어졌다. 로컬병원에서의 실적과 거의 차이가 없었던 셈인데, 그럼에도 냉동으로 이식을 하는 것에 희망을 걸어보았다. 


내가 진료를 받던 시점을 기준으로, 차병원의 시스템은 난자의 채취갯수, 수정란의 갯수, 냉동배아의 갯수를 따로 알려주지 않는다. 채취를 하고 며칠 기다리면 배양실에서 문자를 넣어주는데 워낙 환자가 많은 큰 병원이다 보니 문자가 늦어져서 진료실에 가서야 냉동 갯수를 들을 수 있는 경우도 있었다. 주치의 선생님도 굳이 나에게 그 과정을 설명해주지 않았고 나는 그저 8개 채취, 4개 수정, 2개 냉동 정도의, 일반적인 수준을 유지하고 있겠거니 생각했다. (다시 생각해보면 이 때, 조금 더 꼼꼼하게 과정을 살폈어야 했다) 아무튼 그렇게 힘들게 얻은 5일배아였지만, 차 병원에서 진행한 4번의 이식은 모두 실패로 돌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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