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제히 Jun 25. 2024

날 가장 힘들게 하는 것

1차 성공이 로또인 이유 


난임 치료의 고단함


난임 치료는 어렵고 힘들다. 1차 이식에서 임신이 된 사람들을 흔히 로또 맞았다, 라고 표현을 하는데 그게 1차에 성공할 확률이 확률적으로 낮기도 하지만 차수가 더해질수록 추가되는 주사와 약물들을 시도하지 않아서 그게 부러워서 그렇게 부르는 것 같기도 하다. 실제로 난임 치료가 힘든 이유 중에 하나는 어마어마한 주사와 약물, 병원 스케줄 때문이다. 나는 7번의 채취와 9번의 이식을 했다. 그 기간 동안 내가 맞은 주사는 진짜 어마어마했고 내 배는 늘 멍투성이였다. 


병원마다, 의사마다 과배란을 위해 사용하는 약은 저마다 다르다. 직접 주사약을 조제해서 맞아야 하는 주사에서부터, 펜 형식으로 만들어진 주사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주사들이 존재한다. 그런데 사실 과배란을 위해 맞는 주사는 그래도 맞을 만하다; 기간 상 그리 길지가 않고 또 이식 만큼 결과가 부담되는 과정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치만 이식은 얘기가 좀 다르다. 



신선이 아니라 냉동 배아를 이식하는 경우에는 이식을 앞두고 프롤루텍스를 맞기 시작한다. 이걸 질정으로 대체하는 경우도 있지만 나는 고차수였고 질정은 일정 시간 누워있어야 하기 때문에 불편해서 주사로 처방을 받는 편이다. 경우에 따라서는 주사와 질정을 다 쓰기도 한다. 경험상 이게 최악이었다 ㅠㅠ 하루에 질정을 세 번씩 넣고 아침저녁으로 주사까지 맞으면 정말 삶의 의욕이 사라지는 기분이랄까.... 게다가 출근을 하는 입장에서 주사가 차라리 낫지 질정은 정말 죽을 맛이었다. 결국 질정에 질린 나는 차라리 주사를 맞겠다며 주치의 선생님에게 징징거렸고, 주치의 선생님은 다들 질정으로 달라고 난린데 주사로 괜찮겠냐고 걱정하시면서 모든 처방을 주사로 바꿔주셨다. 프롤루텍스는 주사 바늘로 주사 병에서 약을 꺼내 맞으면 되는 비교적 간단한 주사이지만, 하루에 몇 번을 맞느냐가 관건이다....! 나는 하루에 2번씩 프롤루텍스 주사를 맞았다. 


시중에 주사를 천천히 놔주는 장비도 팔고, 유튜브에 보면 안아프게 맞는 법, 이런 영상들도 많지만 결국 이것도 경험치가 중요하다.... 가령 마리아 병원은 바늘침을 두꺼운 걸 주는데, 이거 진짜 너무 아프다 ㅠㅠ 다행히 나는 그 전 병원들을 다녔던 이력이 있어서, 얇은 주사침을 개인적으로 구매해서 얇은 바늘침으로 바꿔서 맞았다. 


병원에서 알려주는 방법은 배꼽을 기준으로 위 아래쪽에, 지방이 많은 부분을 골라서 두툼하게 꼬집고 그 위에 90도로 주사기를 넣어라, 이게 정석인데 사실 말이 쉽지 처음 주사를 맞을 때는 진짜 얼마나 호들갑을 떨었는지 모른다. 어쨌든 두툼하게 꼬집었을 때 최대한 뱃살을 노려보면서, 혈관이 없는 것처럼 보이는 곳을 찔러야 피나는 걸 막을 수 있고 최대한 천천히 놔줘야 아프지 않다. 


이식을 하고 보름 이상 주사를 맞다보면, 그리고 나처럼 연속해서 이식을 많이 하다 보면 주사를 맞을 곳이 없어지기 시작한다. 그냥 멍이드는 게 아니라 살이 뭉쳐 딱딱하게 변해서 주사실 선생님들이 안쓰러워하며 주사를 놔주기도 한다. 나중에는 허벅지나 다른 살 많은 곳으로 옮겨서 놔줄 수도 있다고 하시긴 했지만, 어쨌든 딱딱한 부분을 피해서 점점 옆으로 주사 맞는 부위가 넓어지고 있다. 



막막함, 옹졸해지는 마음 


주사도 날 힘들게 하지만, 그래도 역시나 몸보단 마음이 더 힘들다. 시험관 시술이 10번을 넘었을 때 남편을 붙들고 정말 오열을 했던 것 같다. 사실 3, 4번 하면 임신이 될 줄 알았고 나보다 나이가 많고 몸도 안좋은 시누도 4번 만에 쌍둥이를 임신했기 때문이다. 도대체 뭐가 문제일까. 의사도 이번엔 될 것 같다고 했는데. 의사가 보장했던 성공확률 60%의 배아가 착상에 실패했을 때, 나는 정말 임신을 포기해야 하는가 심각하게 고민을 했었다. 나는 원인불명의 고차수 난임환자, 전원을 해도 반기지 않는 환자가 되어가고 있었다. 


자꾸 반복되는 실패, 그로 인한 우울감은 엄청났고 방향을 잃은 분노와 원망은 늘 나에게로 돌아왔다. 내가 그 때 자궁 수술을 해서 임신이 안 되는 걸까, 내가 평소에 건강 관리를 너무 안 했던 걸까. 사실 전혀 무관한 일들인데도 나는 나 스스로를 괴롭혔고 의사와 상담을 할 때마다 울었다. 너무 힘들었던 나는 종교의 힘이라도 빌리고 싶어서 시험관 시술을 하면서 세례를 받기도 했다. 이식을 하고 온 날, 실패를 확인 받고 온 날, 성당에 가서 초에 불이라도 붙이고 오면 그래도 마음이 조금 위로 받는 기분이었다. 


그렇지만 옹졸해지는 마음을 해결하긴 어려웠다. 사실 내가 제일 힘든 건, 점점 옹졸해지는 나 자신이었다. 내가 임신이 안 되니, 다른 사람의 임신 소식을 듣는 게 너무 괴로웠다. 성당에서 태아축복식을 하는 날은 슬그머니 성당을 안 가거나 일부러 새벽 미사를 다녀오거나. 그거보다 더 부끄러운 일은 사촌동생의 임신 소식을 듣고 연락을 끊기도 했었다. 


내 머리와 다르게 계속 옹졸해지는 마음은 일단 인정하기로 했고 막막함을 이겨내기 위해 다른 사람들에게 성공의 비법을 열심히 물어봤다. 인터넷 난임카페에도 글을 올렸고 의사에게도 물어보고. 그래서 할 수 있는 시술은 다 해보자고, 그렇게 스스로를 위로하는 방법 밖에는 없었다. 




이전 09화 감자 배아와 눈사람 배아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