착상도 타이밍이 있어요
ERA 검사를 위해 전원을 했기 때문에 주치의 선생님과 첫 상담부터 해당 검사에 대한 이야기를 본격적으로 나눌 수 있었다. 선생님 설명에 따르면 사람마다 배아가 착상이 되는 환경이 조성되는 타이밍이 다를 수 있는데, ERA 검사는 이걸 확인할 수 있는 검사였다. 이식 할 때 처럼 프로기노바를 먹어 자궁 내막을 기르다가 착상을 위한 내막 두께에 도달하면, 프롤루텍스 주사를 시작하는데 이 주사의 시작 시간을 기준으로 착상의 타이밍을 측정하는 방식이다. 따로 시술실에 가야되는 건 아니고 진료실에서 초음파를 보는 것과 같이 누워서 세포를 채취하게 된다. 따끔하는 정도의 통증이 있긴 하지만 너무 아파서 힘들 정도는 아니고, 그럭저럭 받을만 하다.
난임카페에는 ERA를 통한 성공담이 꽤 있는 편이다. ERA 결과 착상문이 열리는 시간이 정상보다 6시간 늦은 편이라 늦게 이식했더니 임신이 되었다, 와 같은 이야기들이 전해져 내려온다. 하지만 ERA를 환자가 원한다고 무조건 할 수 있는 건 아니다. 난임 병원 방침에 따라 ERA 검사를 하지 않는 병원도 있고 주치의들 마다 이 검사 결과의 신빙성에 이의를 제기하기도 한다. 따라서 일반적으로 시험관 차수가 낮은 경우에는 추천하지 않는 시술이기도 하다.
그리고 무엇보다 결정적으로 너무 비싸다... ERA는 스페인에 있는 아이지노믹스라고 하는 회사? 연구소? 에서 개발한 시술이어서 세포를 떼서 그쪽으로 보내 검사를 해야하는데 그 가격이 무려 150만원이 넘게 든다. 내가 ERA 검사를 했을 때는 코로나가 한창 창궐하던 시기... 나도 해외 여행을 무서워서, 비싸서 못 가는데 내 세포는 기꺼이 보내줬다....!! 그리고 이 검사를 할 무렵 나는 반복되는 실패로 두려울 게 없었고 돈을 얼마나 쏟아붓든지 간에 성공만 할 수 있다면 못 할게 없을 것 같다는 심정이었다.
몇 주뒤. 검사 결과를 확인하러 가던 날 얼마나 설렜는지 모른다. 사실 나는 이때까지만 해도 ERA 정도 하면 내 문제가 해결될 거라고 생각했었는데 정말 큰 착각이었다. 주치의 선생님은 웃으며 아무 이상이 없고 지극히 정상이라는 검사 결과를 들려줬다. 내가 너무 실망한 표정이었는지 선생님은, 애초에 ERA 결과 이상이 있는 사람은 극히 드문 편이며(사실 이런 이유로 많이 추천하지 않는 검사이기도 하다), 나는 충분히 임신이 될 수 있음에도 임신이 안 되는 원인불명 난임환자로, 난임의 원인을 하나씩 지워나가는 데에 의의를 두어야 하기 때문에 선생님은 오히려 기쁘다는 이야기를 해주셨다. 선생님 말씀을 머리로는 이해했고 또 지금은 너무 맞는 말씀이라고 생각하지만 그때 나의 실망감은 정말이지 땅으로 꺼질 것 같은 기분이었다.
ERA 검사와 함게 자궁 내막 미생물 검사, 자궁 내막염 세균 검사가 함께 진행이 되는데 두 검사에서도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그렇게 나는 또 다시 난임의 원인을 찾기 위해 다른 방법을 모색해야만 했다.
난임 환자들을 위한 지원이 많이 늘고는 있지만 사실 턱 없이 부족하다. 나는 지금까지 난임 지원을 계속 받아왔는데, 한 번은 남편 회사에서 월급 주는 시스템이 꼬여 어느 한 달만 유독 소득이 너무 높게 나온 적이 있었다. 그때는 난임 지원을 소득을 기준으로 해주던 때라 나는 결국 기준 소득을 근소하게 넘기는 바람에 지원을 받지 못 하고 채취와 신선이식을 진행한 적이 있었다. 현재 소득 기준이 없어지고, 고차수가 되면 지원금이 깎이는 것도 사라져서 그건 정말 다행한 부분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난임 시술은 돈이 많이 든다. 지원금으로는 병원비 일부만 해결할 수 있고 시험관 시술을 위해 복용해야 하는 약이나 주사 등은 오롯이 환자가 부담을 해야하는 상황이다. 시험관으로 임신에 성공해도 일반 임산부보다 훨씬 많은 돈이 든다. 보통 시험관으로 임신에 성공을 해도 안정적으로 태반이 조성되는12주까지는 주사 등의 약을 유지해야 하는데, 그때까지의 병원비와 약제비는 오롯이 환자의 몫이다. 그러니까 아무리 지원이 많아졌다, 좋아졌다 하더라도 난임 환자들 입장에서는 부족하다고 느낄 수 밖에 없는 부분이다. 또 나처럼 pgt나 era 같은 검사들이 추가되면 병원비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다.
나와 남편은 난임 시술을 시작하면서 아이를 위해 모아두었던 돈을 헐어 쓰기 시작했다. 남편은 내가 경제적인 문제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아 시술에 영향을 받을까봐 걱정하는 눈치였다. 또 남편은 시험관 결제를 내 카드가 아닌 본인 카드로 하게 했고 영수증을 보며 계산하는 것을 못 하게 했다. 내가 숫자에 집착하기 시작하면 한도 끝도 없다는 것을 알았겠지... ㅋㅋ 아이를 위한 돈을 먼저 헐어쓰는 게 마음이 편치는 않았지만 그래도 당장 한달 생활비에서 몫돈이 나가지 않으니 스트레스는 한결 덜 했다. 실제로 주변 시험관 시술 환자들을 보면 경제적인 문제 때문에 시험관 포기를 고려하기도 하고 시술을 이어가더라도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기도 한다. 가뜩이나 몸도 힘든데 이런 문제들이 마음을 너무 힘들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