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자 성숙도 검사
나는 사실 고분고분한 환자여서(?) 채취와 냉동 사이의 과정에 대해 별다른 궁금증이 없는 편이었다. 선생님이 알아서 잘 판단하셨겠지, 선생님이 알아서 잘 확인하셨겠지, 라는 주의였고 알려주시는 결과만 잘 챙겨서 기억하면 된다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이게 시술 횟수가 늘어나기 시작하면서 스물스물 나의 집요함이 불붙기 시작했고 나는 과정 하나하나를 꼬치꼬치 캐묻기 시작했다.
지금 생각해도 스스로가 너무 이상한 것 중에 하나가, 나는 수정률에 대한 궁금증이 별로 없었다. 그냥 막연하게 8개 채취하면 4개 정도 수정되고 2개 정도 냉동되겠거니, 그리고 실제로도 8~10개 정도 채취되고 2개 냉동되니까, 인터넷에서 냉동하면 반타작 정도 된다고 하니까 그냥 그러려니 했다. 집요한 내가, 도대체 그 때는 왜그랬는가.. 아직도 미스테리다.
좀 이상하다고 생각이 든 건 마리아의 어플을 보기 시작하면서부터였다. 보통 차병원에서는 선생님 진료 시간에 냉동 갯수를 확인하는 것이 원칙이고 그 전에 미리 문자를 주기도 한다. 하지만 차병원이 너무 바쁘다 보니 냉동 갯수 연락이 안오기도 하고 진료 직전에 간호사님이 확인하시는 경우도 있었다. 그럴 때마다 타들어 가는 내 마음. 아무튼 진료 시간에도 2개 밖에 냉동이 안되었지만 상태가 좋다, 뭐 이런 위로를 해주셔서 별다른 문제점을 감지하지 못 했던 것 같다. 그런데 마리아는 수정란 갯수, 수정 갯수, 냉동배아의 갯수를 중간중간 어플로 확인할 수가 있다! 그때 처음 수정률에 대해서 고민을 하기 시작했던 것 같다.
그도 그럴 것이 나는 수정률이 현격히 떨어지는 환자였다. 처음 채취를 했을 때는 정자 상태가 좋아보여서 자연수정을 시켰더니 2개밖에 수정이 안되었고 충격받은 주치의 선생님은 다음 번에는 반드시 미세수정을 하겠노라 하셨다. 그리고 그 다음에는 13개 채취했는데 2개 수정이라는 처참한 성적이 나오고 말았다. 게다가 마리아에서는 3일 배양으로 냉동을 했기 때문에 2개씩 써버리고 나면 그 다음엔 다시 채취해야하는 강행군의 반복이 시작되었다.
2번의 채취와 2번의 이식이 실패로 끝나고 심각함을 감지한 선생님은 나에게 정자 성숙도 검사를 권하셨다. 이 검사 역시 일반적인 환자들이 모두 받는 검사는 아닌데, 아주 간혹 나처럼 수정률이 너무 낮은 환자들에게 권하는 검사라고 덧붙이셨다. 난임 치료를 시작하면 남편의 정자들도 검사를 하는데 이 때 정자 검사는 모양이 정상인지, 활동성이 너무 낮지는 않은지 정도를 체크한다. 하지만 정자를 크게 확대해보면 덜 큰 아이들이 존재하는데, 당연히 미성숙한 정자들이기 때문에 수정과 착상에 영향을 줄 수밖에 없다.
검사 결과, 남편은 정상 수치보다 3프로 정도 정자 성숙도가 떨어졌고 그 정도면 수정 확률에 크게 영향을 줄 수 있는 유의미한 수치였다. 조금 억울한게 남편의 문제는 대부분 손쉽게 교정이 가능하다. 영양제로 대부분 회복이 가능하고 성숙도의 문제는 고배율 현미경을 통해 해결이 가능하다. 그러니까 일반 미세수정의 경우 정자를 200배 정도 확대해서 보면서 수정을 시키는데, 내 경우에는 특수 현미경으로 6000배 이상 확대해서 보고 수정을 시킨다.
그 결과, 나는 난자 9개 채취 - 7개 수정 - 4개 냉동이라는 엄청난 쾌거를 이룩했다.. ㅋㅋ
내가 원인불명 난임환자라는 딱지를 떼는 순간이었다.
정자 성숙도 검사 이후 후련함, 원망, 기쁨, 슬픔 등 이상한 감정이 휘몰아쳤다. 그동안 난임 원인을 찾아 얼마나 헤맸던가! 사실 몇 년간 원인불명의 난임환자였던 내가 난임의 원인 중 하나를 찾았다는 것만 해도 너무 감사한 일이었고 후련한 일이었지만 한 편으로는 왜 세 번째 병원에 와서야, 네 번째 주치의를 만나고 나서야 이 간단한 검사를 나에게 했는가, 의문과 원망이 많이 들었다.
물론 선생님의 설명처럼 정자 성숙도가 떨어지는 경우는 아주아주 드문 경우이고 간혹 한 명씩 있는 경우라고 하지만, 내가 받았던 150만원짜리 era와 pgt 검사, 90만원어치 피뽑기에 비해 남편의 검사는 10만원 정도 드는 아주 간단한 검사였기 때문이다. 이걸 나는 왜 2년이라는 시간을 허비하고 나서야 하게 되었을까. 그동안 만났던 주치의들은 왜 이걸 신경써주지 않았던걸까.
수정률이 떨어진다는 사실을 확인하고 인터넷을 검색했을 때, 이와 관련된 제대로 된 정보가 많지 않았다. 정자 성숙도 검사에 대해 병원 블로그에 소개가 되고는 있지만 인터넷 카페에 그 검사를 받았다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래서 내가 그렇게 인터넷을 검색해도 정보를 몰랐던 게 컸던 것 같다.
무엇보다 수정률이 낮았을 때 이걸 난자의 문제로만 이야기하는 사람들이 꽤 많았다. 내가 왜 나는 동결이 2개밖에 나오지 않는가, 라는 질문을 했을 때 내가 거쳐갔던 의료진들은 난자질의 문제를 언급했다. 그러면 나는 또 내가 그 때 왜 난소 수술을 해서, 부터 시작해서 끝없이 스스로를 원망하는 일을 반복해야만 했다. 그런데 사실 수정은 정자 질이 매우 중요한 과정이다. 난임 치료 과정에서 원인을 찾기 위해 진짜 온갖 검사를 하고 다양한 방법을 시도하는데, 정작 이 과정이 오롯이 여성에게만 집중되고 있다는 건 안타까운 일인 것 같다.
난자의 질이 향상될 수 있는가. 이 질문에 대해서 노, 라고 대답하는 의사들도 있다. 식단, 운동을 통해 개선했다는 사람들도 있지만 기본적으로 의료진들은 이에 대해 비관적이다. 그런데 환자의 난임을 너무 손쉽게 난자의 질 때문이라고 대답하는 건, 너무 하지 않은가. 환자들은 포기하지 않고 개선하려고 노력하는데 그렇다면 적어도 자연적인 나이 때문에, 난자의 질 때문에, 라는 대답은 정말 최후의 최후의 대답이 되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