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일상이 어땠더라...?
이식 이후 병원에서는 몇 가지의 주의사항을 알려준다. 복압이 높아질 수 있는 무거운 물건은 들지 말고 경우에 따라서는 통목욕이나 수영을 금지하기도 한다. 하지만 대부분의 병원에서는 그냥 '일상생활을 하세요' 라는 지침을 준다. 그런 지침을 듣고 나면 한 번쯤 고민을 해보게 된다. 아, 내 일상이 어땠더라...?
난임카페에는 착상을 도와주는 다양한 민간요법들이 넘쳐난다. 착상 전에 몸이 따뜻해지도록 한의학의 도움을 받기도 하고 좌욕, 반신욕, 족욕 등을 하기도 한다. 그리고 착상에 좋은 여러가지 음식에 대한 정보들도 넘쳐난다. 추어탕이 대표적인 음식일거고 포도즙과 같은 각종 즙류부터 지중해식 식사까지. 분명 나는 추어탕을 먹는 일상을 보내지 않았던 것 같은데, 이식 후에는 추어탕을 사다 쟁여놓는 나 스스로를 발견하게 된다.
그리고 음식이나 민간요법 만큼 중요하게 강조되는 것들이 '눕눕'. 그냥 누워있는 것을 의미하는데, 5일 배양 배아를 이식한 경우에는 빠르면 하루 이틀 사이에 착상이 일어나기 때문에 최대한 누워서 지내라는 이야기들도 많이 들려온다. 하지만 전문의들은 이런 것들이 전혀 필요 없다고 얘기한다. 물론 이식 후에 너무 과로하거나 영양분을 부족하게 섭취하거나, 뭐 이런 것들은 당연히 안좋겠지만 그 외에는 평소처럼 지내라는 게 중론이다.
사실 착상을 도와주는 다양한 민간요법들을 그대로 따라했다가는 오히려 컨디션이 더 안좋아질 수도 있다. 나는 3, 4번 이식 했을 때까지만 해도 착상 전에 한의원에 주 3일씩 다니며 몸이 따뜻해지는 침과 뜸을 시술받았고 족욕기를 사서 집에서 좌욕, 족욕을 해줬다. 하지만 모두 실패. 심지어 여름에 이식하고 와서 배를 따뜻하게 해준다고 배 워머를 하거나 수면 양말을 신는다는 사람들도 있는데, 사실 이건 더위를 많이 타서 시도조차 해보지 못 했다.
그리고 음식도 문제다. 이것 때문에 남편하고 시험관 초반에는 참 많이 싸우기도 했다. 나는 착상에 좋다는 건 아침 점심 저녁, 3끼 챙겨 먹고 싶어했고 (그렇게라도 해야 할 것만 같았으니까), 남편은 그럴 필요가 없다는 이성적 발언으로 나를 속상하게 했다. (남편, 너 T니...?) 어떤 날은 혼자 울면서라도 아침에 꾸역꾸역 추어탕을 먹었던 것도 같은데 그조차도 고차수가 되면서 그만두게 되었다. 오히려 이식 후에 과도하게 기름진 음식들은 속을 안좋게 하고 컨디션을 더 저조하게 만들곤 했으니까.
마지막 성공했던 차수에서는 추어탕도 먹지 않았고 아침도 잘 챙겨먹지 않았다. 아이스크림도 먹었고 빵도 많이 먹었던 것 같은데, 양심상 커피만 디카페인으로 바꿔서 마셨다. (나는 하루에 2~3잔의 커피를 마신다) 그마저도 편두통이 심한 편이라 가끔은 카페인 커피를 먹기도 했다. 스트레스 받으면 믹스도.... ㅋ 그러니까 나의 일상생활을 갑자기 다 뜯어 고치는 건 너무 힘들기도 하거니와 오히려 그런 것들이 독이 되니, 하나씩만 건강하게 바꿔보자, 이런 마음을 먹는 게 중요했던 것 같다.
채취부터 이식까지 달려온 후에도 시험관은 끝이 아니다. 이식을 한 후 약 10~12일 후에 피검사를 통해 임신 여부를 확인해야 하고 사실은 그 이후의 과정도 굉장히 길고 험난하다. 첫 번째 위기는 임테기의 유혹에서 시작된다. 보통 3일배양 배아는 8일쯤, 5일 배양 배아는 6일쯤 얼리 임테기로 임신 확인이 가능하다고 한다. 하지만 사람 마음이라는 것이 그 며칠을 기다리는 게 진짜 시간이 너무너무너무 안 간다. 유혹에 넘어가서 임테기를 했다가 결과가 좋지 않으면 피검사를 가는 날까지 주사 맞는 게 너무 고역이고, 또 그 다음날 혹시나 기대해서 임테기를 또 하고, 또 하고, 또 하고!! 의 반복이 된다. 임신이 확인이 되도 사실 시약선의 진하기가 진해져야 하기 때문에 임테기 지옥에 빠지는 건 매한가지.. ㅋㅋ 그러니까 사실 정답은 피 검사날까지 마음 편히 기다리는 것, 인데 결코 쉽지 않다.
나는 출퇴근과 휴가가 자유로운 직종이었고, 내 사무실의 많은 동료들이 시험관으로 아이를 낳았다. 그래서 사실 이식을 하면 며칠을 눈치껏 쉴 수 있었고 내가 사무실에 나타나기라도 하면 다들 얼른 집에 가라고... ㅋㅋ 그런 감사한 환경에서 일을 했었다. 배부른 소리이긴 한데 일이라도 하면 기다림을 잊을 수 있는데 출근을 안하고 집에 있으니 더 미칠 것만 같았다. 그래서 이식 기간에 나는 여러가지 취미 생활을 만들었는데 맛집투어, 색종이 접기, 꽃꽂이 같은 것들을 했다. 맛있는 거 먹고 예쁜 거 보고, 그런 것들로 일상을 채우려고 노력했다.
맛집 투어도, 색종이 접기나 꽃꽂이 같은 것들도 생전 안 해 본 것들이었다. 다이소에 그렇게 다양한 종이접기가 있는지 처음 알았고, 집 근처 꽃 시장이 그렇게 큰지 처음 알았다. 기다림의 시간을 견디는 건 누구에게나 쉽지 않지만 이 시간들을 잘 다스려야 내가 지치지 않고 끝까지 갈 수 있지 않을까, 그게 내가 그때 했던 생각이었다. 어느 순간 그렇게 최대한 잔잔하게, 최대한 아기자기하고 즐겁게 보내보자, 그런 마음으로 매 이식을 맞이했다.
(하지만 여기서부터 그렇지 못 했던 일화들...!)
그런데 문제는 가족이었다. 시험관 하는 사실을 가족에게 알릴 것인가, 고민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일단 나는 양가 부모님께 모두 오픈을 했다. 우리 부모님들은 시험관에 대해 별다른 거부감이 없으신 분들이었고, 아침 드라마처럼 시험관의 원인이 누구에게 있는지를 꼬치꼬치 따지시는 분들도 아니었다. 우리 부부가 시험관을 한다는 건 부모님의 기도 내용에 한 가지 내용이 더 추가 되는, 그 정도의 일이었다. 사실 어른들은 시험관 과정을 잘 알지 못 하시고 힘들다고는 하지만 그래도 많이들 성공하니까 잘 되지 않을까, 정도의 생각을 하시는 것 같다. 고차수가 되면서부터 조금 염려하시긴 했지만 뭐 남편은 시댁을 잘 케어해줬고 나는.... 친정을 잘 컨트롤 하지 못 했다...!
엄마와 나는 유난히 친하게 지내는 편이다. 나는 K 장녀라 부모님에 대한 책임감이 강하고, 엄마는 나에게 많이 의지하는 편이지만 아들이 세상 최고인, 뭐 그런 관계다. 엄마는 속상한 일, 좋은 일, 귀찮은 일, 부탁하고 싶은 일, 등등 다양한 이야기를 나한테 하는 편인데 시험관 이식을 하고 기다릴 때마다 엄마가 나에게 안 좋은 소식을 전해줬다. 한 번은 외할머니가 돌아가면서 남기신 반지를 잃어버렸다든가, 다른 한 번은 뭐가 깨졌다든가.. 사람 마음이 참 이상한 게 그게 별 거 아닌데, 그냥 엄마에게 운이 안좋은 일이 생긴 건데 그 소식을 듣는 순간 아, 이번에 왠지 실패할 것 같다, 라는 마음이 강하게 들고 어김 없이 이식이 실패로 끝나곤 했다. (역시 난 미신을 믿는 건가.....)
결국 두 번이나 같은 일이 반복되자 화가 날 대로 난 나는 폭발, 엄마에게 이식 이후 나에게 연락하지 말라는 엄포를 놓고 말았다. 나 화났으니까 건드리지마, 이런 중학생 멘트 같은 말을 해놓고 며칠 마음이 불편하긴 했지만 진짜 엄마 연락을 계속 받다가는 내가 미쳐버릴 것만 같았다.
마지막 이식 때 엄마는 몇 주간 연락 금지를 당했고 그렇게 나는 잔잔한 이식 기간을 보낼 수 있었다... 사실 다시 생각해도 엄마에게 미안하긴 한데 돌아가면 똑같이 할 것 같다. 시험관을 하면서 제일 중요한 건 나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