뽑고 뽑고 또 뽑고
9번째 이식은 나에게 남다른 이식이었다. 일단 10번째 이식이라는, 두 자리 숫자가 주는 압박이 커서 이번에는 꼭 성공하고 싶은 마음이 컸다. 10번째 이식을 하게 되면 다잡고 있는 마음이 무너져 내릴 것만 같았다.
또 하나는, 정자 성숙도 검사를 통해 냉동배아를 4개 얻게 되어서 내심 기대가 컸다. 선생님은 분명 미성숙 정자가 착상에도 영향을 줄 수 있다고 하셨기 때문에 이걸로 문제가 해결이 되었다면 분명 착상률도 올라갈 테니까. 물론 이론적으로는 모든 문제를 교정했다고 했을 때, 세 번 중 한 번 착상이 되는 것이 확률적으로 맞긴 하지만 그래도 이번에 되면 얼마나 좋을까. 그런 마음이었다.
이식을 하고, 잘 참고 지내다가 3일배아 이식 10일째쯤 테스터기에 손을 대고 말았다. 12일째에 병원을 가니까 11일에 테스트를 했어야 했는데 너무너무 기다려지는 마음에 결국 손을 대고야 말았다. 그리고 결과는..... 단호박 한줄!
너무 속상하고 화나고 슬픈 나머지 마라탕과 꿔바로우를 시켜서 남편과 배터지게 먹었다. 맥주도 먹고 싶었지만 차마 그것까진 너무 한 것 같아서 탄산수나 좀 마셔주고, 울었던 것도 같다. 그래도 냉동이 2개 있으니까, 라고 위로하면서. 그리고 11일 새벽. 새벽 미사를 가기 위해 일어나서 나는 또 습관적으로,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임테기에 손을 댔다... ㅋㅋ 임테기 노예는 이런식이다.
임테기는 소변을 적셔놓고 3~5분 정도 기다려야 결과가 나온다. 보통 임신호르몬 수치가 높을 때는 소변에 테스터기가 닿기만 해도 결과가 나오지만 아주 초기일 때는 매직아이 수준으로 한참 테스터기를 쨰려봐야 두 줄이 보일랑말랑한다. 어쨌든 11일차 새벽에도 테스터기를 했지만 바로 두줄이 뜨지 않길래 단념하고 양치하고 옷을 입고 성당에 갈 준비를 했다. 그리고 테스터기를 버리려고 다시 집어 들었는데.....?! 흐리긴 하지만 두 줄이 떴다!
혹시 내가 헛 것을 보나 싶어 자고 있는 남편을 깨워서 봐도 두 줄. 불 빛 아래 비춰 봐도 두 줄. 3일 배양 11일 차에 아주 흐린 두 줄이 나타난 것이다. 전 날 맥주를 마셨다면 정말 나는 나 스스로를 용서하지 못 했을 것 같다.
임테기가 두 줄이 되었지만 내 걱정은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나는 몇 차례의 화학적 유산 경험이 있었고, (화학적 유산이란 임테기나 피검사로 임신을 확인했지만 아기집을 보지 못 하고 종결되는 것) 그 경우는 대부분 이렇게 흐린 두 줄로 임신을 확인했기 때문이다. 몇 번 화유를 경험하면 사실 임테기만 봐도 피검 수치가 예상이 가능하다. 이건 빼박 50 아래일 것이다...! 이런 예감이 스쳤다. 그리고 피검 결과 26.07.
시험관 카페에 가면 낮은 피검에 관한 글이 상당히 많다. 그 글들을 찾아보면 알겠지만 낮은 피검의 예후는 매우 안좋다. 병원에 따라 기준이 다르긴 한데, 어떤 병원은 50 아래이면 아예 모든 치료를 종결하고 자연 배출을 기다리는 경우도 있다. 내 주치의 선생님은 10을 기준으로 보고 있었고 따라서 나도 주사약 유지가 결정되었다.
낮은 피검이어도 출산까지 가는 경우도 드물지만 물론 존재한다. 사실 낮은 피검은 분열이 조금 늦게 되고 있다는 의미인데, 시작점보다는 그 이후의 양상이 훨씬 중요하다. 이틀에 피검 수치가 1.66배 뛰어야 해요, 2차 피검에서 10배 이상 뛰어야 해요, 이런 기준들은 피검 수치가 오르는 양상이 중요하기 때문에 제시되는 기준들이다.
주치의 선생님은 고차수인 나의 불안과 초조함을 관대하게 이해해주는 편이셨다. 나는 12일 째 되는 날 피검사를 하고 바로 선생님 진료실로 들어갔다. 피검 수치는 병원마다 조금씩 다르게 나올 수 있어서 가급적 한 병원에서 검사를 하는 게 좋다. 주치의 선생님은 일주일 후에 2차 검사를 하자고 했지만, 나는 선생님에게 이틀 후에 또 피검을 하고 싶다고 말했다. 너무 불안하고 힘드니까 그렇게라도 확인하고 싶다는 말에 선생님은 그럼 마음 편한대로 하라고 하셨다.
그렇게 피검을 허락받고, 나는 이틀에 한 번씩 병원 출근 도장을 찍기 시작했다.
우울한 마음을 애써 달래고, 한달 같은 이틀이 지났다. 이틀 후 피검수치는 99.7이었다. 이쯤 되니까 사람 마음이 기대를 안할 수가 없었다. 더블링보다 훨씬 높은 수치니까 혹시 이번에는 괜찮지 않을까. 그렇게 또 이틀을 버티고 그 다음 피검은 427.4. 일단 100이 넘은 피검 수치는 처음이었고 두 배 이상 가파르게 오르고 있는 피검 수치가 자꾸 희망을 갖게 했다. 인터넷에는 임신주차별 평균hcg 수치 표가 돌고 있는데 여전히 그 표에 비해서는 낮은 수치라 불안하기도 하고 마음이 아주 널을 뛰었다.
이럴 때는 외국 사이트를 참고하는 게 도움이 좀 된다.
https://babymed.com/tools/hcg-calculator
그리고 며칠 뒤 피검은 3353...! 아기집이 보이는 수치였고 나는 마음의 준비가 되지 않은 상태로 아기집과 마주해버렸다. 임신확인서까지 받았지만 여전히 얼떨떨할 뿐이었다...! 선생님은 임신확인서를 써주면서 이제 피 좀 그만 뽑으라고 웃으셨다. 내 양팔은 며칠 동안 이어진 피검사에 멍투성이었는데, 사실 그런 건 하나도 신경쓰이지 않았다. 일주일을 그냥 생으로 기다리는 건 너무 힘든 일이었고, 좋은 결과든 나쁜 결과든 빨리 확인하는 것이 내 마음의 안정에 훨씬 도움이 될 것 같았기 때문이다.
물론 그 사이사이에 임테기도 꾸준히 매일 했다... ㅋㅋ 마지막에는 기준선보다 테스트 선이 더 진하게 나오는 는, 역전 현상도 경험을 했다. 매일 조금씩 진해지는 테스터기와 이틀에 한 번씩 했던 피검이 아니었으면 정말 이 시간을 버티기가 너무 힘들었을 것 같다.
나는 낮은 수치로 인한 화유와 임신을 모두 경험해봤다. 시험관 카페에 자주 올라오는 글 중에 낮은 피검인데 주사를 유지 해야 하는지 묻는 글들이 많다. 단호박인 임테기를 보면 그만 두고 싶은 마음을 너무 이해하는데, 절대로 그래선 안 된다. 느리긴 하지만 착실하게 배아가 크고 있을 지도 모르니 말이다. 너무 어렵긴 하지만 그래도 피검사로 확실하게 확인할 때까지는 배아를 믿어주는 일이 중요하다.
그리고 이틀에 한 번씩 피검을 해도 되냐는 질문도 많다. 나는 당연히 그래도 된다고 생각하고 주치의 선생님도 흔쾌히 그러라고 해주셨다. 시험관 시술은 불안과 혼란의 연속이다. 며칠을 불안할 바에야 나는 차라리 피라도 뽑는 게 나은 것 같다...! 너무 당연한 환자의 권리이니, 나 같은 경우라면 병원에 꼭 문의해서 피검을 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