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검사 이후의 시간들
지난 번 글에서 밝힌 것처럼, 나의 임신 피검사 수치는 고작 26. 다른 사람들은 세자리 숫자를 기록하는 데 나는 그것에 훨씬 못 미치는 숫자였고 그 덕분에 수치가 제대로 오르는지 확인하고 싶어 이틀에 한 번 피를 뽑는 강행군을 (아무도 안 시켰는데 나 스스로!) 진행했다. 피검 수치가 3000이 넘는 날 아기집을 확인하고 임신확인서를 받았는데, 얼떨떨한 와중에도 사실 나는 그거면 다 오케이인줄 알았다.
처음 피검이 26이 나왔을 때 선생님은 나의 임신이 정상 임신으로, 출산까지 갈 확률은 10%라고 했었다. 임신확인서를 받으면 이제 100%이 된건가, 두근두근했는데 선생님이 제시한 숫자는 50%이 채 안되었다. 아니, 임신이라고 확인서까지 써줬으면서 도대체 왜???
그 동안 내 시험관 시술의 목표는 '착상'이었기 때문에 도무지 착상 외에는 정보를 검색해본 일이 없었다. 피검사 통과 이후의 과정은, 나에게는 정말 미지의 영역이었다. 게다가 낮은 피검 수치 때문에 에너지를 다 써버린 나는 그 이후 과정에 대해서는 정말 아무것도 모르는 맹탕인 상태였다. 그래서 선생님이 제시한 숫자가 그렇게 무섭고 겁이 날 수가 없었다.
보통 시험관 시술 환자들은 4주 0일~6일 사이에 1, 2차 피검사를 진행하고 5주에 아기집 확인을 통해 임신을 확인한다. 그리고 6주에 난황, 7주에 심장 소리를 통해 임신의 지속 가능성 여부를 판단한다. (이건 어디까지나 일반적인 기준이고, 사람마다 조금씩 늦게 이 과정들이 진행되기도 한다)
그런데 이 5주~7주 사이에 별 별 일들이 다 벌어진다. 아기집이 있어야 할 곳에 없다든지, 혹은 아기집 안에 아기가 없거나 혹은 심장이 느리게 뛰거나.... 즉 임신을 확인하고도 초기에는 워낙 유산의 가능성이 높고 그러다 보니 나 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렇게 낮은 확률에서 임신 초기를 맞이하는 것이다.
임신을 확인하고 나서부터 피말리는 초음파 검사가 시작되었다. 다행히 난황도, 아기도 빠르게 초음파로 확인이 가능했고 심장 역시 반짝반짝 열심히 뛰고 있었다. 매주 하나씩 통과 할 때마다 선생님은 성공 확률을 10%씩 야금야금(!) 올려주셨고, 8주쯤 되어서야 나의 확률은 98%가 되었다.
8주차 진료를 본 날, 선생님은 활짝 웃으시며 이제 태반이 완성되었으니 주사와 약을 모두 끊자고 하셨다. 이 얘기는 바꿔말하면 임신을 확인하고도 약 한 달간은 주사와 약을 그대로 유지한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이식 즈음부터 주사를 맞기 시작했으니 한 달하고도 보름 정도 주사를 매일 두 대씩 맞은 내 배는 멍투성이었고 더 이상 찌를 곳도 없는 수준이었다. 너무너무 반가운 말씀이셨지만 한편으로는 얼마나 무서웠는지 모른다. 그도 그럴게, 착상 이후에 나는 두 번정도 피가 비쳐 병원을 방문했었기 때문이다.
아기집이 자리를 잡아가면서 피가 나는 경우는 사실 흔하다고 한다. 생리대를 흠뻑 적실 정도의 피가 아니라면 그냥 누워서 쉬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고 하지만 걱정인형인 나는 아주 적은 소량의 피에도 병원으로 뛰어가길 반복했고... ㅋㅋ 선생님은 그래도 병원까지 온 나의 갸륵함을 인정하시어, 추가 주사 처방을 내려주시곤 했었다.. ㅋㅋ 아무튼 이런 걱정인형에게 8주차 선생님의 주사 중단 선언은 마냥 신나기만은 어려운 일이었다..!
시험관맘카페를 보니 나보다 먼저 약을 끊는 사람도 있었지만, 대부분은 비슷한 시기에 약을 끊는 것 같았다. 선생님이 보기에 괜찮으니까 끊으라는 거겠지, 이 말을 백 번쯤 되뇌이면서 주사를 끊었고 걱정과 달리 아~~무 일도 생기지 않았다. 그렇게 나는 지긋지긋한 주사로부터 해방되었다. 이제 정말 남은 건 난임병원의 졸업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