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관문, 기형아 검사
병원마다 조금 다르지만, 보통 전문 난임병원의 경우에는 산과가 없다. 즉 난임병원에서 아이를 낳을 수 없다는 의미다. 그래서 일반적으로 난임환자들은 아기집과 난황, 심장 반짝임과 아기까지 확인한 뒤 아이를 낳을 수 있는 병원으로 전원을 하는데, 이 과정을 '졸업'이라고 부른다.
졸업의 시기는 병원마다, 주치의마다 가지각색이다. 환자 나이가 어리고 피검사 수치가 안정적인 경우, 아기집을 보자마자 졸업이 결정되기도 하고 또 임신유지를 위한 약을 오래 써야 하는 경우에는 졸업이 그만큼 뒤로 밀리기도 한다. 그래도 대략 8주~12주 사이, 태반이 완성되는 무렵이 졸업을 하는 일반적인 시기에 해당한다.
졸업을 앞두고 환자들은 또 중요한 '선택'을 해야 하는데, 그건 바로 기형아 검사다. 졸업을 앞두고 주치의 선생님은 나에게 기형아 검사의 한 종류인 니프티 검사(비침습적 산전 기형아 검사)를 권했는데, 나 말고도 난임환자들은 졸업 전에 이 검사를 많이 권유 받는다.
보통의 산모들은 11주 이후부터 1, 2차로 나누어 진행되는 기형아 검사를 한다. 초음파로 아기의 목덜미투명대 두께를 측정하고 콧대나 다른 신체적 이상 징후가 있는지를 확인한다. 이후에 쿼드검사라고 불리는 모체혈청선별검사를 통해 호르몬 농도 등을 통해 염색체 이상 여부를 확인하는 식이다. 많은 산모들이 받는 검사이기 때문에 비용 발생이 그리 크지 않지만 민감도가 조금 떨어진다. 95% 정도.
그에 비해 니프티 검사는 피 검사 한 번으로 결과가 나오는데, 산모의 혈액 안에 존재하는 태아의 DNA를 분리해서 분석을 진행한다. 10주부터 검사가 가능하고 다운증후군, 에드워드증후군, 파타우증후군 등에 대한 판정이 이루어진다. 기존의 검사에 비해, 민감도가 99%에 해당해서 훨씬 높은 편이지만 그 만큼 비용이 사악하다. 가격은 50~70만원으로 구성되는데 이 검사 한 방이면 정부 지원금 100만원이 훅 사라져버린다 ㅎㅎ 이미 주사 값으로 거의 바닥이 드러나버리긴 했지만...
출산일을 기준으로 난 고령 임산부였고 (만 35세가 기준이고 이 나이를 기점으로 기형아 발생률이 훅 올라간다), 게다가 내 생물학적 나이는 실제 나이보다 더 많은 상태였기 때문에 사실 검사를 망설일 이유는 없었다. 무엇보다 산과 병원으로 전원한 이후 기형아 검사를 하게 되면 만난지 얼마 안 된 주치의 선생님과 그 이후 과정을 고민해야 해서 불안했고, 임신이 될 때까지 함께 했던 난임병원 선생님과 기형아 검사를 하는 편이 조금 더 심적으로 안정이 될 것 같았다. 그리하여 10주 0일이 되자마자 기형아 검사를 진행하고 결과가 나오기 까지 약 2주의 시간이 걸렸다.
그리고 검사 결과는 매우 안전. 추가로 신경관결손 검사를 해야하지만 큰 고비는 넘었다.
그렇게 난임병원에서의 모든 과정이 끝났다.
드디어 졸업
오지 않을 것 같은 날이 왔다. 니프티 검사 결과를 확인하던 날, 주치의 선생님은 내게 졸업을 선언하셨다. 20년 여름 처음 난임 시술을 시작하고, 22년 가을 졸업할 때까지 나는 단 한달도 쉬지 않고 시험관 시술을 했다. 채취와 이식의 반복, 3개의 병원, 4명의 주치의를 거친 결과였다.
난임 환자들은 대부분 우울증을 겪는다는 연구 결과를 어디선가 본 기억이 있다. 나도 예외는 아니었다.씩씩한 척 일상을 보내려고 노력하지만 아주 사소한 부분에서 우울감은 사람을 무너지게 만들곤 했다. 나는 그 우울감을 자주 울음으로 표출하는 환자였다. 3번째 주치의 선생님을 만났을 때부터 나는 상담만 하면 그렇게 눈물이 났다. 결과가 좋지 못 할 때는 수납 데스크에서 병원비 수납하면서도 울고 초음파 대기하면서도 울고.. 온 병원 사람들이 나에게 휴지를 건네 주었더랬다.
그래서 졸업하는 날은 얼마나 눈물이 날까, 얼마나 눈물의 대환장파티를 열까, 내심 걱정도 했었는데 의외로 졸업의 과정은 덤덤하게 진행되었다.
처음 만날 날, 이렇게 두꺼운 전원 서류를 가지고 왔냐고, 고생많았다고 위로해줬던 주치의 선생님은 마지막까지 따뜻한 사람이었다. 고맙다는 나의 말에 선생님은 엄마가 열심히 했기 때문에 아가가 찾아와줬다는 말과 과 그동안 정말 고생많았다는 인사를 해줬다. 그 순간 알았다. 내가 잘못 했기 때문에 아기가 안 생겼던 게 아니라, 내가 포기 하지 않았기 때문에 아기가 찾아왔다는 것을. 사실 한 끝 차이인데 난임 환자들은 전자의 생각으로만 가득 차 있다. 난임의 우울함은 모두 여기서부터 비롯된다. 나 때문이라는 끝없는 자책이 그 동안 나를 그렇게 괴롭혔구나. 선생님의 한마디는 고통스러웠던 난임 과정 속의 모든 나에게 큰 위로가 되었다.
선생님은 악수를 권했고, 동생 만들어주고 싶으면 오라는 말, 아기를 낳으면 꼭 연락 달라는 말을 덧붙이셨다. 그렇게 나는 애증의 난임병원을 졸업했다.